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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주일오후예배설교

 

 

 
 
제목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

말씀 : 벧전1:18~21

뉴욕의 한 교회에서 아주 오래전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할머니가 예배가 끝내 갈 즈음에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강단에 나가서 간증 좀 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목사님이 허락을 하자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1860년 9월 19일, 이 교회 바로 옆에 있는 한 노예시장에서 노예로 팔려가기 위하여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노예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이자 우리를 팔아넘기기 위하여 경매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는 어디로 팔려갈까, 내가 팔려 갈 집 주인들은 좋은 사람일까, 나를 학대하고 나를 짐승처럼 대하는 아닐까, 과연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하면서 불안과 초조 속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 교회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점잖은 신사분이 오시더니 나를 800불을 주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분은 나를 해방시켜주며 이제는 당신은 자유인이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이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그 날 예배시간에 우리가 지금은 노예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번 주일날 한 사람의 노예라도 해방시켜주자고 의논이 되어 노예 한 사람을 사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로 내가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 후로 나는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약 70년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교회도 너무나 감사하고 도무지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한 평생 이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름대로 섬겨왔습니다.

이제 저는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로 갈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미천한 사람이지만 이제 제가 하나님 품으로 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노예에서 해방되어 그 은혜를 도무지 잊을 수가 없어서 한평생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를 해방시켜 준 이 교회에 감사함으로 섬겼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고 다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잊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되는 것도 이와 같이 감격스럽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고 평생 잊을 수 없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일진대 죄와 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건짐 받은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하고 찬양하고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속 받았는지,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의 그 놀랍고 크고 영광스럽고 고귀함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세상의 헛된 것으로부터 대속 받음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 받았다. ‘헛된’이라는 말은 ‘공허한, 헛된, 효과 없는, 쓸데없는, 무가치한, 무익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헛된 행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세상의 헛된 사상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물질 등의 죄와 무지 속에서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과 종교를 따라 행하던 모든 행실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헛되고 무익하고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상과 가치가 완전히 무가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상까지도 100% 무가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온전치는 못하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거나 희망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헛된 것입니다. 혹시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 약간의 유익을 얻는다해도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음으로 인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가는 악한 행위에 불과한 것인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상과 자신과 육신의 욕망과 돈과 명예와 사람 등의 헛된 것을 섬기며 그걸 인생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죄와 사망과 지옥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고 다행스럽고 영광을 돌릴 일입니까? 사람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도 평생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할 텐데 하물며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구속되어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이 은혜를 어찌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람의 노예 생활하는 것도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일일진대 마귀사탄의 종노릇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은 얼마나 더 끔찍스러운 일인지를 기억하며 거기서 해방되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것이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를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격과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니 평생 이 은혜를 잊지 말고 다시는 세상의 것에 종노릇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감사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진정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자들로써 진정 거룩하고 아름답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2.우리의 대속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된 것임.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우리가 과거의 모든 헛된 것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금이나 은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도 아니고, 지식이나 과학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이나 성인군자나 선지자나 능력자가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전부터 하나님께 함께 계셨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물론 우선은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정결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고귀하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의 은총을 입은 우리도 너무나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구속 혹은 대속이 뭡니까? 한마디로 값을 지불하고 처벌을 면제받아 구원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예로 팔린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풀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구속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 고귀한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의 삯을 지불하시고 죄와 마귀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한 1,000억을 주고 산 물건이라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얼마나 애지중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천억 1조 100조가 아닙니다.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대속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존재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보다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복되고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 보다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평생을 감사와 기쁨과 감격과 은혜 속에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우리가 고귀한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는 정말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몸값을 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귀한 존재이니까 귀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귀한 몸을 함부로 굴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자와 거지와 어울려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아 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고 똥통에서 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과 모든 죄와 마귀 사탄으로부터 너무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그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입은 사람들, 너무나 고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을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벧전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래서 영광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우리 소망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온전히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세상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생명과 생명의 기쁨이 있는 양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고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죄와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사탄의 권세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헛된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나라가 있는 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고귀한 존재이니까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땅의 것을 좇아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몰라서 세상의 것을, 헛된 것을 좇아 살았는데 이제는 그걸 알았으니까요. 얼마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엄청난 은혜와 기쁨과 영광과 은혜가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그걸 안다면 왜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겠습니까? 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인생인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보다 천하보다 세상 모든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그 영광과 존귀와 거룩하고 기쁨과 은혜에 참여하게 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 찬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이 놀라운 신분에 걸맞게 거룩하게 아름답게 존귀하게 살아가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에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 풍성하게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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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예배 설교] 가장 큰 지식

 

 

 

제목 : 가장 큰 지식

말씀 : 벧후3:14~18

우리는 물론 가장 좋은 것, 가장 행복한 것, 가장 기쁨을 줄 수 있는 것, 가장 멋진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라본다. 그래서 금은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하게 되면 한 번 더 보게 된다. 멋지게 지어 놓은 집이 있어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차도 크고 멋진 차가 지나가면 보게 되고, 예쁜 꽃이나 예쁜 사람이 있어도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된다. 왜 그런가? 웬지 그런 것들이 좋아보이고, 또 뭔가 기쁨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 기쁨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 게 뭘까? 물론 주님이시다. 주님이 주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이다. 물론 세상의 것들도 기쁨을 주긴 하지만 그건 별거 아니다. 진짜 기쁨도 주지 못하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지도 못한다. 도리어 그런 것들 바라보다가 실망만 느끼고 거기에 얽매여 자유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와 질투에 빠지기 쉽고 그러다가 진짜배기는 놓치고 헛것만 따라다니다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기 십상이다.

1.인생의 궁극적 목적지, 목표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것을 바라보나니..’ 이것은 앞 절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가 오직 바라보아야 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 여기서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리다, 찾다, 기대하다.’는 뜻으로 진정한 목표와 소망과 기쁨이 되는 대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열심히 찾고 그야말로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목을 길게 빼고 소망하고 사모하고 기다리며 열심히 찾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이다. 당연하지 않나?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의 풍성함과 은혜와 기쁨과 감격과 평안을 줄 것이 무엇이 있겠나?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권세나 영광은 결코 우리에게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가지고 있는 동안도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 못하거니와 그야말로 다 쇠하고 썩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이다. 우리의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지도 못하고 온전한 평안과 기쁨과 은혜와 소망도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들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저 영광의 나라는 다르다. 그 나라는 시간적으로는 영원하고, 질적으로는 완전하고,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즉 전인격적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의 기쁨을 제공한다. 말 그대로 어떤 어둠도 아픔도 슬픔도 미움과 시기도 싸움도 죽음도 없는 곳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행복의 나라이다. 그래서 오직 이 영광의 나라만이 진정한 우리의 소망이고 희망이다.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도 평안과 기쁨과 위로 속에 살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모든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근심 걱정과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불평도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다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다가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의 삶.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새 하늘과 새 땅임을 말씀하신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흠없이 평강가운데 서도록 힘써야 함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주님 앞에 서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점이란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을 말하고, 흠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점은 더럽고 속되고 추한 것이 추가된 상태이고, 반대로 흠이란 책임과 의무와 사명과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100% 안하고, 해야 할 것을 100%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면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이나 풍조와 습관이나 문화에 빠져 할 일을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힘쓰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삶을 살도록 힘은 써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진실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주신 사명 감당해야 한다. 더럽고 추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생활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고 주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 앞에서 잘 했다 칭찬받고 상급 받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인내로 주님의 때를 기다려야 함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것은 주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물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재림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알라는 것은 앞의 9절 말씀처럼 주님이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빨리 오시지 않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바울도 그와 같이 썼고, 그 중에 풀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는 것은 바울 서신 들 중에서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들을 말한다.

실제로 바울은 살전후서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재림에 관하여 말씀했다. 특히 살전4:16,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주님의 재림은 너무나 분명한데 그 과정이나 방법 등은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고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라서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해서 혼자 연구를 하거나 무슨 이상한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냥 말씀 그대로 믿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천국과 지옥에서의 삶의 모습들, 이런 것들은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 밖에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떤 목사님들이 요한계시록을 그럴듯하게 해석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는데 그러나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는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경대로만 믿으면 충분하다. 공연히 영적 호기심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연구하다가 이단이 나오고 삼단이 나온다. 그래서 실족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들도 어떤 때보면 성경의 어떤 사건이나 말씀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따지기도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결코 성경에서 넘어가면 안된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전4:5,6절에서 말씀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때나 방법에 대하여 혹은 천국과 지옥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혹은 성경의 여러 가지 사건이나 말씀에 대하여 그냥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만큼만 그대로 믿으라. 그것으로 생명력 있는 믿음 생활하기에 충분하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공연히 자기 생각과 이성과 지식과 경험으로 억지로 풀어보려고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안 가르쳐 주신 것은 몰라도 된다. 몰라도 되기 때문에 안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순진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씀그대로 믿고 그러 성실하고 진실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감으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운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섦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세토록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3)미혹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엉뚱한 소리를 하여 자신도 멸망의 길로 가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왜곡된 뜻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다른 사람까지도 미혹시켜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런 미혹자들을 잘 분별하여 절대로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것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때로는 신학자들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사람들이 다 짜깁기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중에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것은 사람의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 운운하면서 성경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한다. 이단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어떤 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어떤 자들은 기도하다가, 어떤 자들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경도 제멋대로 해석하여 그럴듯하게 꾸며낸다. 그리고는 신비한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런 영적인 미혹 뿐 아니라 왜곡된 사상과 가치와 관습과 문화와 과학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한다. 마귀사탄은 한편으로는 온갖 음모술수를 꾸며 공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이좋게 놀자며 화전양면작전을 구사하며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는 믿지 말라. 성경에서 넘어가는 것은 배격하라.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서,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만, 성경의 내용 그대로 믿으라. 누가 어떻게 미혹하고 유혹하고 별의별 소리를 다해도,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믿어야할 건 오직 성경뿐이다. 성경만이 완전히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자이다. 유일한 법전이다. 유일한 인간 사용설명서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의 검증을 받고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믿고 따름으로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자.

4)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함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마지막 결론적 말씀이며 권면이다. 이것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하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하고, 무법한 자들이나 세상의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관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거짓 영들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의 은혜와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야 하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혹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가 가운데 자라라는 것은 더욱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하심과 인도하심과 지금까지 때를 따라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신 그 은총을 바르게 알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속에 주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맡기고 그 방법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은혜가 충만한 자의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 삶이 더욱 힘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열심이 있고 감사가 넘쳐나고 그렇게 되면 더욱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게 된다. 그 은혜와 능력으로 대적자들의 미혹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런데 은혜와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말씀 없이 은혜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단은 말씀을 가까이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올바른 믿음 생활이 가능해진다. 말씀 없는 은혜는 자칫하면 속을 수도 있다. 올바르지 못한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은사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의 신앙적 관점에서 은혜를 생각할 수도 있다. 마귀사탄은 이런 허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엉뚱한 길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 위에 든든히 선 상태에서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면 진정으로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분별력 있는 신앙인이 된다. 속지 않는다. 그래서 마귀 사탄이 감히 덤벼들 생각도 잘 못하고 혹시 덤벼들어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물리치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힘 있게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의 은혜와 말씀 안에서 자라나기를 힘써야 한다.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영광을 위하여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는 것보다 말씀의 바탕 위에서 은혜가 충만해지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 힘써야 할 일이고, 정말 영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더욱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힘씀으로 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남으로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주님 앞에 나타나기를 힘쓰고, 내 방법,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대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각자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여기서도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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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진정한 소망

 

 


제목 : 진정한 소망

본문 : 딤전6:17~19


1.진정한 소망


여러분,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정말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기대하며 사십니까? 부자 되는 것, 자식이 출세하는 것,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 그것도 기대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렇게 되면 무슨 뾰죽한 수가 생길까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고 날마다 싱글벙글하며 살아갈까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가보면 똑같아요. 뭐 많이 배우고 돈많고 출세하고 건강하면 맨날 좋아 죽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똑같이 걱정하고 불안하고 염려하고 싸우고 갈등하고 지지고 볶고 삽니다. 그래서 뭐 전직 대통령, 전직 총리, 장관, 재벌 총수, 무슨 팝의 황제니 골프의 황제니 하며 불리던 사람들이나 유명 연예인이나 할 것 없이 자살도 하고 잡혀 가기도 하고 가정불화도 겪고 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의 것은 죽을 둥 살둥 달려가서 얻었다고 하는 순간 이미 멀어지기 시작해요. 세상의 것으로 누리려는 행복은 잡았다고 하는 순간 저만치 날아가서 날 잡아봐라 하면서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좇아 다니다가 결국 인생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도 모르고 세상 것 좇아 다니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고 비참한 인생이 되겠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기대하고 기다리고 힘써 나아가야 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주님안에 만이 진정한 생명과 평화와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는 이세상에서도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평안과 은혜가 있으며, 더 나아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보장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영광과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속에서 사는 자들만이 완전히 후회없는 성공한 인생이 됩니다.

 

오늘 17절 말씀 보세요.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무엇에 소망을 두지 말라.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 무엇을 소망을 두라? 하나님께 두라.

 

왜요? 재물은 정함이 없으니까. 정함이 없다는 게 뭡니까? 정해져 있는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즉 불확실하다는 거지요.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거라는 거지요. 내께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 영원토록 내꺼다. 실컷 쓰고 누리고 살다가 죽으면 그게 내꺼지 누구꺼냐 그럴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생명도 돈도 내일을 장담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도 결국 놓고 가야하고 그거만 믿고 산 인생이라면 결국 영원한 고통 밖에는 남아 있을 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소망은 다릅니다. 주님께 있는 소망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온전합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기쁨과 소망과 위로와 평안을 주십니다. 그것만이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19절 보세요.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뭡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터를 쌓는 것이고,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생명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단순한 육체적 생명이 아닙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생명을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완전한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뜻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쌓는 지혜로운 인생이다, 그런 인생속에 영원한 생명의 은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정함이 없는 재물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세상의 즐거움을 기대와 기다림과 소망으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유일한 참 소망이신 주님을 소망께 대한 소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결코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세상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2.선한 사업에 부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소망이 다른 사람은 삶의 목적도 다르고 삶의 방향도 다릅니다. 돈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삶의 목적이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세상 즐거움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사용합니다. 그저 부자되고 건강하게 잘먹고 잘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그저 돈이나 모으고 제 몸 하나 잘 입히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고 거기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준비하며 삽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목적도 다르고, 돈과 시간과 재능과 육신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돈과 지식과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게 뭡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나 혼자 잘먹고 잘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그래서 결국 주님과 나와 이웃이 함께 기뻐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삶이 이생에서나 저생에서나 가장 복되고 기쁘고 아름답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깊이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솔직히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게 무슨 그렇게 의미가 있겠어요? 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게 무슨 큰 가치를 만들어 내겠어요? 그렇게 해서 자신이 무엇이 그렇게 크게 즐겁겠어요? 여러분,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 더 좋아지고 더 많은 가치가 있는 거예요.

 

자 여기 맛있는 음식이 있어요. 저 혼자 독차지하고 앉아서 먹으면 무슨 맛이 그렇게 있어요? 여럿이 같이 먹으면 얼마나 더 맛이 있어요. 너무 너무 좋은 일이 있어요.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웃고 축하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면 얼마나 더 기뻐요? 호화판 유람선이 있어요. 저 혼자 타고 다니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함께 타고 다니며 서로 웃고 즐거워하면 얼마나 더 기쁘겠어요? 좋은 집이 있어요. 저 혼자살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함께 살 때 즐거운 거지요.

 

여러분, 사람은 원래 관계적인 존재예요. 가족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거예요. 본래 그런 존재로 지음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절대 혼자 행복할 수 없어요. 혼자 배터지게 먹고 혼자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혼자 좋은 입고 하면서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러면서 행복하다면 그 인생은 죽은 인생이요, 병든 인생이요, 죄와 무지의 종이 된 인생이예요. 결국 영원한 지옥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예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자기만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18절 말씀 보세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선한 일이란 포괄적으로 좋은 일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와 갇힌 자를 돌아보고, 절망속에 있는 자를 위로하는 등 모든 어렵고 고통받는 이웃을 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사업에 부하라는 것은 그런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인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들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는데 인색하지 말고 넉넉히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라는 것은 억지로 마지못해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런 일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된 인생의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19절에 있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이다.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눌 때 그것이 결국은 자기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택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라는 뜻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너도 살고 나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너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주님도 기쁘고 결국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사는 거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런 삶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평안과 은혜도 없고요, 있다 해도 별거 아닙니다. 그런 삶은 죄와 무지속에 있는 인생의 모습이요, 영적, 정신적, 인격적, 체적 미숙아의 삶입니다.

여러분, 갓난아기 보세요. 갓난아기는 남을 모릅니다. 그냥 자기밖에 모르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올바르게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남을 배려하게 됩니다.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적, 인격적, 영적으로 자꾸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지금은 대강절 기간입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 속에 기쁨으로 거하시도록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심령속에 기쁨으로 거하시겠습니까? 어떤 심령속에 은혜를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기쁘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자는 부자가 아닙니다. 권력자가 아닙니다. 지식인이 아닙니다. 단순히 윤리적으로 깨끗한 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 무지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거기에 욕심을 두지 않고, 거기에 얽매이지도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기쁨으로 오십니다.

또한 그렇게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저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자에게 기쁨으로 찾아 오셔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평강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목적인 것입니다. 대강절은 바로 그런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세상의 별거 아닌 돈과 명예와 지식을 바라보며 거기에 소망을 두고 거기에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기쁨이며 영원한 생명의 은총과 더불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메시야라는 점을 기억하며 그저 겸손히 엎드려 그 분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정말로 주님을 기대하고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산다면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살피고 이웃을 돌아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 모든 것들을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여러분 심령속에 가득하여 주님과 이웃을 기쁘게 해드리며 여러분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축복이 가득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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