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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2월 세째주일예배 대표기도문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시간 우리를 이 은혜의 자리에 모이게 하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만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이 오직 주님만 찬양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이 회복되고 치유되고, 기뻐 춤추는 예배 되게 하시고, 하나님 지으신 모든 만물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한주간도 주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넘어지고 낙망하고 밟히고 억울함을 당하여도 붙잡을 곳이 없었을텐데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우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고난가운데서도 기쁨이 있고 참되고 진리되신 하나님을 붙잡으며 소망을 갖고 고난을 이겨내며 힘을 얻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의 삶이지만 우리가 숨쉬고 먹고 마시는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영광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고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시고 죄가운데서 했던 모든 잘못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정결케하시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이 잘못들을 끊어지게 하여주소서.

순전한 어린양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우리들의 삶이 흠없게 하여주시옵고

부족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제물이 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게 하시며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갈줄 믿습니다.

연약한 우리들의 믿음을 더 정결시켜주시고 날마다 새로운 양식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고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여 주시어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 민족에게 복을 내려주심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 이민족이 다시한번 세계정상에 우뚝 설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대통령에게도 지혜와 명철을 부어주시고 힘들고 어려울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통령 되게 

우리하나님 역사하여주시옵소서.

그리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국민을 잘 보호할수 있도록 세계에서 1위가는 우리나라 되게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함께하는 교회를 친히 돌보아 주시옵소서.

또한 단위에 세우신 서윤석목사님 말씀을 통하여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즉시 순종할 때 더욱 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충성스런 사명자로 세워주시고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마음에 주님을 더욱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수 있도록 주님, 갈망하는 마음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작은 불씨가 큰산을 태우듯 주님을 찾고 부르짖을 때 주님의 불과 같은 능력이 드러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기억하시고 이들의 삶이 부족함이 없도록 차고 넘치게 채워주시고 성령충만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더욱더 섬기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시간 주님의 귀한 말씀 듣습니다.

귀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열매 맺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는 늘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아시고 행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영광의 주님 오실 때까지 맡겨진 삶에 충실하며 칭찬받는 주님의 자녀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 주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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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굳게 믿고 굳게 서는 자

 

 


 

이사야7:1-9

유다 왕 아하스가 큰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와 그 아들을 보내어 왕이 굳게 믿어 굳게 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환경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어려움을 이기는 삶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입니다.

 

1.하나님은 두려움에 빠진 유다 왕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이사야와 아들 스알야숩을 보내어 은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3) 아하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에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포로가 됨으로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대하28:6, 8) 하나님은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의미의 이사야와 “남은 자가 돌아온다”라는 뜻의 이름인 아들 스알야숩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두려워하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힘이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4)고 하셨고, 에브라임은 65년 내에 패망하게 될 것이다.(8)라고 하셨습니다. 대적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마10:28)

하나님은 두려움을 이기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굳게 믿고, 굳게 서라고 하셨습니다.(9)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야 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굳은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홍해 앞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이었습니다.(출14:13-14)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굳게 믿을 믿음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실 때 그 이름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마1:21) 예수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를 직접 만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이 믿음의 대상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예수는 그의 권세로 마귀에 대해서 승리하셨습니다. 두려움을 주는 마귀는 실세가 아니라 허세입니다. 마귀는 예수의 권세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내어 쫓깁니다.(계12:9-10) 예수께서 죽으시는 십자가는 실패 같지만 오히려 승리의 과정입니다.(요16:33) 세상을 이기신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담대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는 믿음을 가르치고, 믿음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는 마르다에게 자신이 부활이고 생명임을 강조하며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요11:26) 부활의 주님은 부활을 직접보고서 믿는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욱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요20:29)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3.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굳게 믿고 굳게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들려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에 빠집니다.(마14:29-30) 예수께 집중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을 볼 때에 두려움이 생기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시121:1-2)

두려움을 주는 거짓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아하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을 무서워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단3:16-17)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롬8:31)

형제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믿음에 굳게 서서 다른 형제들을 굳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있는 베드로의 사명은 형제들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눅22:31-32) 이사야가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왕 앞에 서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증거하며, 보여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굳은 믿음이 없어서 환난에 늘 흔들린다면 세상의 조롱거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굳은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굳게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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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설교] 소통의 역사

 

 

 

제목 : 소통과 연결의 역사”,

말씀 : 사도행전(34) 10:44-11:18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적인 사건의 결론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이 성취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사도행전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계속 확인한 것 처럼, 인간적인 생각이나 힘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생명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파되는 것을 가능케 한 성령의 구체적인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시대, 신앙하는 우리들이 성령을 구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먼저, 소통의 역할입니다.

오늘 본문 44-4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무엇을 보게 됩니까? 먼저, 하나님과 철저이 단절되어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증거로 방언을 하며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몇 구절의 간단한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와 욥바에서부터 동행한 ‘할례받은 신자’들(사도행전 10:23절,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물론 이 시점에서는 주님을 영접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입니다.)이 감짝 놀란 이유입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이방인들은 결코 하나님과 통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방인들이 자신들 앞에서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결코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봅니다. 각기 욥바와 가이사랴에 있던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가 먼저 만나게 되었고, 고넬료와 함께 한 이방인들이 베드로에게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을 만남으로 스스로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유대인들과 구원의 은혜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소통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고통이 어디에서 옵니까? 단절에서 옵니다. 단절은 죄의 결과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단절됩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죄로 인한 홍수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보존된 인류가 바벨탑을 쌓아 또다시 하나님과 맞서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로 언어의 단절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서로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이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죄로 하나님과 철저이 단절된 인간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또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후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으로 언어가 하나되고 복음을 통해 인류가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12-14절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던 시절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원수가 되어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도움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도 모르고 희망도 없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를 흘려 이루신 그 구원의 성업으로 이제는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유대 사람과 여러분 이방 사람들을 한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현대어성경)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고 소통의역사입니다.

저는 이 어려운 시대, 성령으로 말미암은 이 소통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다양한 단절의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서, 교회공동체 내에서, 이 나라와 민족가운데서 경험하는 아픔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악한 세상과 우리 자신들의 연약한 본성을 이기지 못한 삶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순간도 성령이 역사하면 어떤 상황과 형편, 조건속에서도 소통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47-48절이 기록된 이유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이방인들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고 그리고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도중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체험되고 방언이 터지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올려진 것입니다. 그 후에 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이 소통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소통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이 체험이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가정으로, 사회로, 이 나라와 민족가운데로 확산되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요즈음 화두가 ‘소통’인 분명한 이유입니다. 정치계, 경제계, 사회...모든 분야에서 소통의 역사가 일어나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래교회학자 레너드 스위트교수도 21세기 교회의 키워드는 ‘통’(‘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소통’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소통의 은혜를 체험한 교회는 세상과 소통해야 함을 말합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소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소통케 하는 성령의 역사속에 사는 성도는 세상을 피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주의 복음을 소통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이고 전도입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소통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상가운데로 파고 들어간 교회의 모델입니다.

이제, 소통의 역사는 연결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소통과 동시에 이로 인해 모든 것들이 연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사도가 그간 체험했던 일들을 회고하며 간증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본문 5-14절까지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베드로사도가 욥바에서 처음 환상을 보았을 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과 기대로 한걸음, 한걸음 따라갔더니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는 놀라운 간증입니다.

사순절 새벽기도회동안 자가점검을 위하여 40조각의 퍼즐을 매일 한조각씩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 조작만 가지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모양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순종과 기대의 마음을 가지고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 나가면 조각이 서로 통하고 연결되어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고 연결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앞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들이 경함한 인생의 부분들이 만들어 낼 큰 그림을 우리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떠나고서도 바로 그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리신 그림이 보여집니다. 우리 후손들의 몫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매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인생의 모습들을 거부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여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인생을 최고로 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분은 아무도 없으십니다. 그러나 누구나 최선을 다할 수는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들을 다 거부했다면 오늘 이 시간 저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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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주일오후예배설교 -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제목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

말씀 : 벧전1:18~21

뉴욕의 한 교회에서 아주 오래전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할머니가 예배가 끝내 갈 즈음에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강단에 나가서 간증 좀 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목사님이 허락을 하자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1860년 9월 19일, 이 교회 바로 옆에 있는 한 노예시장에서 노예로 팔려가기 위하여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노예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이자 우리를 팔아넘기기 위하여 경매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는 어디로 팔려갈까, 내가 팔려 갈 집 주인들은 좋은 사람일까, 나를 학대하고 나를 짐승처럼 대하는 아닐까, 과연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하면서 불안과 초조 속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 교회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점잖은 신사분이 오시더니 나를 800불을 주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분은 나를 해방시켜주며 이제는 당신은 자유인이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이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그 날 예배시간에 우리가 지금은 노예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번 주일날 한 사람의 노예라도 해방시켜주자고 의논이 되어 노예 한 사람을 사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로 내가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 후로 나는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약 70년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교회도 너무나 감사하고 도무지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한 평생 이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름대로 섬겨왔습니다.

이제 저는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로 갈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미천한 사람이지만 이제 제가 하나님 품으로 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노예에서 해방되어 그 은혜를 도무지 잊을 수가 없어서 한평생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를 해방시켜 준 이 교회에 감사함으로 섬겼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고 다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잊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되는 것도 이와 같이 감격스럽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고 평생 잊을 수 없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일진대 죄와 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건짐 받은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하고 찬양하고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속 받았는지,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의 그 놀랍고 크고 영광스럽고 고귀함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세상의 헛된 것으로부터 대속 받음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 받았다. ‘헛된’이라는 말은 ‘공허한, 헛된, 효과 없는, 쓸데없는, 무가치한, 무익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헛된 행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세상의 헛된 사상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물질 등의 죄와 무지 속에서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과 종교를 따라 행하던 모든 행실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헛되고 무익하고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상과 가치가 완전히 무가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상까지도 100% 무가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온전치는 못하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거나 희망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헛된 것입니다. 혹시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 약간의 유익을 얻는다해도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음으로 인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가는 악한 행위에 불과한 것인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상과 자신과 육신의 욕망과 돈과 명예와 사람 등의 헛된 것을 섬기며 그걸 인생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죄와 사망과 지옥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고 다행스럽고 영광을 돌릴 일입니까? 사람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도 평생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할 텐데 하물며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구속되어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이 은혜를 어찌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람의 노예 생활하는 것도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일일진대 마귀사탄의 종노릇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은 얼마나 더 끔찍스러운 일인지를 기억하며 거기서 해방되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것이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를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격과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니 평생 이 은혜를 잊지 말고 다시는 세상의 것에 종노릇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감사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진정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자들로써 진정 거룩하고 아름답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2.우리의 대속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된 것임.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우리가 과거의 모든 헛된 것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금이나 은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도 아니고, 지식이나 과학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이나 성인군자나 선지자나 능력자가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전부터 하나님께 함께 계셨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물론 우선은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정결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고귀하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의 은총을 입은 우리도 너무나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구속 혹은 대속이 뭡니까? 한마디로 값을 지불하고 처벌을 면제받아 구원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예로 팔린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풀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구속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 고귀한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의 삯을 지불하시고 죄와 마귀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한 1,000억을 주고 산 물건이라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얼마나 애지중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천억 1조 100조가 아닙니다.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대속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존재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보다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복되고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 보다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평생을 감사와 기쁨과 감격과 은혜 속에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우리가 고귀한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는 정말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몸값을 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귀한 존재이니까 귀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귀한 몸을 함부로 굴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자와 거지와 어울려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아 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고 똥통에서 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과 모든 죄와 마귀 사탄으로부터 너무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그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입은 사람들, 너무나 고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을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벧전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래서 영광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우리 소망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온전히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세상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생명과 생명의 기쁨이 있는 양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고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죄와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사탄의 권세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헛된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나라가 있는 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고귀한 존재이니까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땅의 것을 좇아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몰라서 세상의 것을, 헛된 것을 좇아 살았는데 이제는 그걸 알았으니까요. 얼마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엄청난 은혜와 기쁨과 영광과 은혜가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그걸 안다면 왜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겠습니까? 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인생인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보다 천하보다 세상 모든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그 영광과 존귀와 거룩하고 기쁨과 은혜에 참여하게 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 찬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이 놀라운 신분에 걸맞게 거룩하게 아름답게 존귀하게 살아가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에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 풍성하게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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