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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생활 이것만 바꾸어도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생활습관부터 바꾸자


바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쉽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생활에 두려움을 느끼고 만족도가 떨어지기 쉽다. 만족스럽지 못한 성생활로 고민하고 있다면 다음의 3가지 생활 습관을 변화시켜 쾌활한 생활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섹스를 통해 얻는 기쁨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 주어 삶의 질을 다르게 만들 것이다.
 
1. 충분한 운동하기피가 끓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면, 우선 몸의 순환부터 개선하자. 성기능은 결국은 혈류의 순환이다. 이론상 신체운동은 혈류를 높여주며, 혈류의 증가는 섹스를 더 유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데, 그 이유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성적 자극은 성기와 성기 주변의 혈류를 증가시킨다.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되면 중추 신경이 "발기명령"을 내리고 평소보다 7배나 많은 양의 피가 남성의 음경으로 쏠리게 된다. 이때 음경정맥은 확장된 음경에 의해 눌리므로 들어온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이렇게 딱딱하게 팽창된 것의 실체가 바로 혈류인 것이다.
연인
또한 기분 좋은 성관계를 경험하면 또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성 관계에 대한 욕망 자체도 증가시킨다. 운동은 엔도르핀을 생성하여 기분을 좋게 하며 에너지를 나게 한다. 또한 이 기분 좋은 에너지는 사람을 더 섹시해 보이게 만든다.
 
2. 건강한 음식 섭취하기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염분, 설탕 등은 모두 성기능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다. 포화지방으로 동맥이 막히게 되면 성적자극을 시킬 만큼의 많은 혈액이 성기주변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심장질환과 발기부전 사이에도 관련이 있는 이유이다.

포화지방은 육류의 지방, 유제품, 버터 등에 많으며 트랜스지방은 마가린, 인스턴트 식품, 스낵류, 패스트 푸드에 많이 들어 있다. 콩나물, 두부와 같은 콩류 식품에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발기부전의 원인 중 하나인 동맥경화의 위험을 낮춰 준다. 양파와 마늘은 예로부터 최음제로 알려져 온 음식으로 말초혈관계의 노폐물을 제거, 발기력 증강에 도움이 된다. 포도, 사과 등 신맛 과일에는 유기산이 풍부해 피로회복과 정력 강화를 돕는다. 철 결핍은 피로로 이어지며 피로는 성적 욕망을 감소시킨다. 그럴 때는 브로콜리를 먹도록 한다.
 
3. 스트레스 조절하기샌디에고 성 의학 센터장인 어원(Irwin Goldstein) 의학 박사는 짧은 여행을 떠나거나, 섹스 파트너와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그는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일에 치여 스트레스 받는 일상은 성생활까지 끔찍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일. 운동이나 취미, 긍정적 생각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도 성 기능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머있는 말이나 호탕한 웃음은 몸을 이완시켜 스트레스 때문에 ‘쪼그라진’ 음경에 다시 피를 돌게 해 당신의 ‘남성’을 일으켜 세운다.

이영진 하이닥 소셜의학기자 (비뇨기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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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조건]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세요?
 
우리는 가끔 “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가?”하고 혼자 묻는다. 사는 일이 힘들 때 대체로 그런 의문이 들지만, 힘든 것 자체보다는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 공통된 욕구가 있다. 하나는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하려고 하는 생존의 욕구요, 다른 하나는 그저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행복의 욕구이다. 식물과 동물은 물론 모든 인간은 강력하고 엄숙한 생명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이 살되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살려고 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라면, 행복은 인간의 삶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목적이라 할 것이다(고범서, 1994). 행복은 시대와 인종과 지역을 넘어서 인류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심리적으로 병들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 아기가 태어나도 젊은이들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늙어서 회갑과 고희를 맞이하여도 여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축원한다.


실로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우리의 욕망은 성생활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행동의 대부분을 좌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행복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행복의 추구를 인간의 기본 권리로 선언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헌법도1) 행복추구권을 국민의 기본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행복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행복하기를 바랄 뿐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행복을 얻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만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객관적인 생활조건이 점점 나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 왜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은갚에 대한 심리학자를 비롯한 사회과학도들의 관심도 커졌다. 심리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처음 생겨난 이후 지난 120여 년간 우울증이나 불안, 수치심, 죄책감,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인간심리에 대한 연구가 건강과 사랑, 그리고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주제를 다루는 연구보다 훨씬 더 많았다(마이어스, 2001).

실제로 심리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행복보다는 괴로움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변하고 있다. 젊은 심리학자들의 연구덕택으로 이제는 행복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남보다 더 행복하고 더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특성의 성격, 어떤 대인관계, 어떤 경험,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자신이 행복감을 높이고, 다른 사람이 행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정서적 건강과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행복의 비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도 행복에 대하여 다양하게 해석하고 정의하였다(행 17:18).2)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행복을 최고선(the highest good)이라 주장하면서, “행복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어서 다른 모든 것은 행복을 얻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철학자요 심리학자였던 William James도 “결국은 행복을 얻고 그것을 지키고 되찾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하는 숨은 동기가 되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반면에, 근세 최고의 철학자 Immanuel Kant에게 있어서는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도덕법에 자율적으로 복종하는 선의지이지 행복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행복의 근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성현들이 계속 출현하였다. 그중 더러는 행복이 덕스러운 삶을 사는데서 나오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악을 멀리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라 보기도 하고, 이 순간을 위해 사는데서 오는 것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위해 사는데서 생기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독한 삶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된 신화에서 사회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식생활, 평균수명, 사망률, 경제지표, 주거생활 등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의 육체적, 물질적 행복을 측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객관적 행복’의 측정치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사회과학자들은 사람들의 ‘주관적 행복’, 즉 그들의 행복감이나 삶에서의 만족도 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임으로서 이러한 요소들을 규칙적으로 측정하기에 이르렀다.3)

1970년대 이후 행복학(science of happiness)이라는 학문이 발달하면서 ‘행복(happiness)’, ‘삶의 만족(life-satisfaction)’, ‘주관적 삶의 질(subjective quality of life)’, ‘안녕(well-being)’과 같은 주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질문은 어떤 경험, 환경, 특성, 태도들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누가 행복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 그리고 무엇이 있으면 행복한가? 이 논문은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의 삶은 Fromm(1976)이 말한 것처럼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한편 Tillich(1952)는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 중에서 존재의 삶을 기독교적인 신앙의 맥락에서 분석하고 해석하였다. 필자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물질이나 권력 또는 명예 같은 것을 소유하고 즐기는데 있다기보다는 각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발휘하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증여되는 선물(고범서, p.58)이라는 전제 아래 행복에 관련된 몇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행복이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은 삶의 지상목표이다. 일하고 돈 벌고 멋 내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는 등의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하여서”하는 일들이다. 행복, 행복감을 정의하기는 매우 힘든 일인데,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간단히 넘어가서 “당신은 행복합니까?”를 직접 물어보는 방법을 택한다. 보다 근래에는 행복이라는 너무 일상적이고 광고 문구에서 남용되는 단어보다는 (주관적)안녕(subjective well-being) 혹은 안녕감(sense of well-being)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이고 있다(예, Diener, 1984; 이훈구, 1997).

행복이란 무엇인가?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인 것이다. “행복이란 전반적인 삶에 대하여 느끼는 주관적인 자기만족이다”(이훈구, 1997, p.214). 행복이라는 말 앞에 주관적이란 말을 반드시 붙여야 할 만큼 행복은 본인이 스스로 삶을 즐겁다고 느끼는 넓고 일반적인 의미를 내포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행복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것이 현시점에서 삶 전체가 얼마나 충만하고 의미 있는 것이며, 얼마나 즐겁고 만족스러우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마이어스, 2001, p.2). 만족이 인지적 판단의 결과인데 비해 행복은 감정과 느낌으로, 즉 매개된(mediated) 반응이 아니라 직접적인(immediate) 반응으로 이해된다(홍숙기, 1994). 그러나 만족감과 안녕감 그리고 행복도는 흔히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

행복이란 어떤 경험인가? Davitz(1969)는 성인 남녀에게 행복은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말로 표현하게 했다. 응답자들은 “내적인 따듯한 환희와 희망이 넘치는 느낌”(82%), “미소 짓고 싶은 느낌”(72%), “안녕감과 내적 평화”(66%) 순으로 응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충만한 상태, 기쁨과 소망과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행복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행복, 즉 주관적 안녕의 정의에 대하여 아직 심리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 않다. 다만 Veenhoven(1991)의 정의가 현재로서는 가장 포괄적인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주관적 안녕을 크게 전반적 개념과 세부적 개념의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전반적 개념에는 생활만족(life satisfaction), 욕구충족(contentment), 그리고 기쁨수준(hedonic level)을 포함시켰고, 세부적 개념에는 직무만족(job satisfaction), 자긍심(self-esteem), 그리고 통제신념(control belief)을 포함시키고 있다.

Maslow(1970)는 생리적, 안전, 사랑, 자존감, 자아실현 등 5단계 욕구위계이론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의 5가지 욕구는 크게 두 가지, 즉 결핍(defficiency)동기와 성장(growth)동기로 묶여진다고 주장하였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무엇인가 결핍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욕구로 결핍욕구에 해당하며, 반대로 자아실현의 욕구는 어떤 욕구가 결핍되어서 발생하기 보다는 자신을 개발하고 향상시키려는 욕구이므로 성장욕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욕구충족과 주관적 안녕간의 관계를 연구한 최경희(1995)는 생리적 안전 욕구 보다는 성장욕구가 주관적 안녕과 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우리의 행복에는 생리적 욕구보다 성장욕구의 충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이훈구, 1997, p.102).

 

 

 

한편, Averill과 Moore(1993)는 행복을 세 가지 체계에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생리적 체계와 심리적 체계, 그리고 사회적 체계이다. 이들에게 행복이란 세 가지 체계 각각의 여러 수준의 목표를 최적화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예컨대, 생리적 체계에서 최고수준의 목표는 유기체를 존속시키는 것이고, 심리적 체계에서의 최고수준 목표는 자아실현이며, 사회적 체계의 최고수준의 목표는 사회적 관계의 유지이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사회생활과의 조화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리학자 고범서(1995)는 생리적 긴장과 심리적 긴장의 해소에 수반되는 쾌락(pleasure)과 풍요의 영역에서 인간의 경험하는 희락(joy)을 구별하면서, 희락을 행복과 동일시하고 있다. 굶주림(hunger)은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나타내는데 비해, 식욕(appetite)은 맛있는 미각적 경험에 대한 예상이다. 즉, 음식에 대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그것이 일정 시간 지속되면 강한 긴장을 자아내며, 그것이 충족되면 만족 즉 쾌락을 느낀다. 이와는 달리 식욕은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각의 만족은 굶주림의 만족과 질적으로 다르다. 굶주림과 식욕은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미각은 음악이나 예술의 맛처럼 문화적 발달과 세련의 산물이요, 풍요라는 말의 문화적 및 심리적 의미에서의 풍요의 상황에서만 발달될 수 있다. 굶주림은 결핍의 현상이며, 그것의 만족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식욕은 풍요의 현상이며, 그것의 만족은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생산성의 현상이다. 식욕의 만족에서 수반되는 쾌락은 기쁨, 즉 희락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Fromm, 1947, p.187).

Maslow(1970)는 Fromm을 인용하여 전자의 쾌락을 낮은 기쁨(결핍동기의 충족), 후자의 즐거움을 ‘높은 기쁨(성장 또는 존재동기의 충족)’이라 부른다. 낮은 기쁨은 단순자극(simple stimulus)을 통한 긴장해소에서, 높은 기쁨은 활성화자극(activating stimulus) 내지 긴장고조에서 나오는 것이다(홍숙기, p.50). 행복은 높은 기쁨, 즉 희락의 계속적 또는 통합적 경험을 말한다. Fromm(1947)은 희락에 비추어 행복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희락과 행복은 질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 양자는 희락이 단일한 행동에 대하여 말해지는데 대해서 행복은 희락의 계속적 또는 통합된 경험에 대해서 말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한에서 다르다. 우리는 (복수로) 희락들(joys)을 말할 수 있지만 (단수로) 행복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p.189). 희락은 자기실현의 목표를 향한 길에서 체험되는 것이다”(Fromm, 1976, p.117).

예술에서건 학문에서건 또는 사업에서건 직업에서건 인간이 그의 잠재적 가능성을 생산적으로 발휘하는 활동에 수반되는 만족감, 즉 즐거움이 희락이요 행복인 것이다.

과정이론 또는 몰입이론의 주창자 Csikszentmilhalyi(1990)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면서 느끼는 황홀감 때문에 그 일에 매달린다고 주장하면서“한 활동에 너무 몰두해서 다른 아무 것도 상관이 없는 상태”(p.4)를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 흐름(몰입: flow), 혹은 즐김(enjoyment)이라 불렀다.

행복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인간은 음악과 미술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한가하게 산책하며 자연에서 조화의 미와 우주의 미를 즐길 때, 독서에서 삶과 역사와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희열에 젖을 때 행복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며, 거기에는 고생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직업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생산적으로 발취하며 예술의 감상과 지적 이해와 자연이 주는 희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범서, p.113).

1)객관적 삶의 질과 주관적 안녕(행복)과의 관계

과학기술의 발달, 경제성장, 자유와 개인주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생활수준의 향상과 개인의 자유라는 밝은 현실의 바로 뒤에 존재하는 범죄, 마약문제, 가족의 해체, 정신병리 증가 등의 어려운 현실을 보는 사람은 이 물음에 ‘그렇다’보다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삶의 질과 주관적 안녕 간의 관계는 두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국가 간의 비교연구이고, 또 하나는 국가내의 연구이다. 최근 Diener와 그의 가족은 한국을 포함한 55개국의 삶의 질과 국민들의 주관적 안녕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 못 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한 나라 안에서도 국민총생산의 성장과 더불어 행복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횡단 적으로 볼 때도 수입수준과 행복의 상관은 미미한 것이었다(Diener, 1984; 홍숙기, 1994; 이훈구, 1997).

객관적 삶의 질(예컨대 GNP, GDP, 사회복지수준, 교육수준, 인구과밀, 교통체증, 수명, 범죄율 등등)과4) 주관적 안녕과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상관관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2)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한 것은 아니다. 철학자 Bertrand Russel은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하다고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의 저자 Dennis Wholey는 미국사람의 약 20%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을 이루기 위한 15가지 비결』이라는 책에서 Archibald Hart(1988)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0%보다 훨씬 적다고 보고 있다. 전국적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약 1/3이 “매우 행복하다”고 답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은 하루의 50%가 행복감을, 22%가 불행감을, 그리고 나머지 29%가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그저 그런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Myers, 1992, p.48).

① 한국인의 생활만족도
삶에 전체적으로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갤럽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만족도는 비교된 나라들 중 가장 낮았다(5.5가 중심점인 10점 척도에서 5.34; 참고로 일본은 6.61; 미국은 7.60; 18개국 전체평균은 7.48, 한국갤럽, 1990). 그래도 반수가 만족 쪽으로 응답하였다. ‘아주’(8%), 혹은 ‘약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비율(65%)도 절반이 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일본은 77%, 미국 92%, 18개국 전체평균 83%).

150편에 가까운 연구를 종합해 본 결과 남녀라는 성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1%미만이며, 설사 있다하더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더 행복감을 느낄까 말까하는 정도이다. 적어도 행복감에 있어서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남녀가 평등한 것 같다(Myers, p.80). 행복이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일을 하고 능력을 발취하고 성취하는 데 있다. 재산, 나이, 성, 부모의 사회적 지위, 주거지역, 교육수준 등이 행복수준을 점쳐주지 못한다(p.86).

불행을 경험하는 데는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여자가 남자 보다 장기적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두 배나 된다. 여자가 우울증, 불안, 공포증에 걸리는 경우가 남자보다 배로 많은데 비해, 남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이 다섯 배나 높은 것은 남자의 자존감이 낮은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Myers, p.86).

삶의 질에 대한 국내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1981)에서 1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만족과 행복의 평균점수는 50점 이하로 나타났다. ‘만족’은 31.5, ‘불만족’은 13.1, ‘기쁨’은 48.1, 그리고 ‘걱정’은 24.7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19%가 만족과 기쁨보다는 불행 쪽으로 응답했음을 발견했다. 한국 사람의 주관적 안녕감이 외국에 비해 비교적 낮게 나온 것은 한국이 불행한 과거를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지난 2,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삶에 대한 만족이 같이 높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주로 일과 사랑의 세계에서 만족과 행복, 불만과 불행을 체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만족도와 행복도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매우 낮으며, 직업과 가정생활에 만족하는 정도도 마찬가지로 매우 낮다(한국갤럽, 1990). 이는 가정과 직장을 포함한 우리의 생활환경이 우리에게 편안한 곳 이라기보다는 각박하고 살벌한 환경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교회와신앙 에서 webmaster@amennews.com정동섭 교수가 말하는 행복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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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행복은 내 작은 노력에서 시작한다
 

 


행복한 부부 생활은 내 작은 노력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내게 꼭 맞는 ‘최고를 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에게 자신의 남성을 주시었고 여자에게 자신의 여성을 주셨다. 부부는 그러므로 이 차이를 알아 잘 가꾸어야 하고 부부 서로에게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주어진 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부부 사이를 윤택하고 아름답게 한다. 그러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성을 잘 개발해 상대가 그것에 끌리도록 해야 한다.

남편에게는 대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사랑하고, 공급하고, 보호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고, 아내에게는 남편을 돕고, 순종하고, 협력하며 가정을 돌보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아내는 불건전한 여성 해방 운동과 같은 것에 휩쓸리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불건전한 여성 해방 운동과 같은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탄의 농간일 수도 있다.

아내가 남편 떠날 때 불행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 안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처럼 아내도 남편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아내가 불행하게 되는 것은 남편을 떠날 때이다.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고 여자는 한 남자로 인해 주어진 섬김의 기쁨과 미래의 지도자가 자신 속에서 자란다고 하는 사실에 보람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부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고 일치된 부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손잡고 보조를 마쳐 나가야 한다. 공동의 목표는 두 사람에게 희망과 보람과 삶의 동기를 부여하며 서로를 깊이 결속케 하고 신뢰케 한다.

내게 꼭 맞는 배필 주셨다

결혼을 했으면 부부는 하나님께서 내게 꼭 맞는 ‘최고를 주셨다’고 하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꼭 맞는 배필을 주셨다’고 확신할 때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 만족이란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영적으로나 지적으로나 함께 성장하여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부부는 비슷한 수준의 영적, 지적인 성장을 가져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계획을 세워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 원하면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변하여 상대방에게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상대방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생각은 나만이 가지는 생각이 아니고 배우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은 아예 품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가 내게 조금은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내 남편, 내 아내를 공개적으로 사랑한다고 하여 비난할 사람은 없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사랑하면 입으로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느낌이 주어지지 않고 느낌이 주어지지 않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당사자는 고독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런 사랑 표현 자녀들에게 안정감

자녀들 앞에서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은 자녀들을 안정시키고 안심시킬 수 있다. 또 그것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레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부는 스스럼없이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먼저 ‘사랑한다’ 는 말을 하라. 그래야 ‘나도 사랑해요’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성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에게 성적인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부부 사이의 만족한 성생활은 가정을 범죄와 유혹으로부터 지켜준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7:2-5)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용서하라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다. 배우자가 완전하기를 원하는 것은 자기의 욕심일 뿐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70번씩 7번까지라도 용서를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는 용서할 수없는 것마저 늘 용서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가족 간에 서로의 재능을 개발해 주고 서로를 인정하여야 한다. 나는 대접을 받기 원하면서 상대방, 그것도 자기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고 하신 말씀처럼 먼저 대접을 해야 한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도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이 되는 데는 합리적인 가정 경제를 경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는 것도 무지한 일이지만 좀 더 벌겠다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도 무지한 일이다. 어느 한 쪽에만 몰두하다 보면 다른 한 쪽은 필연적인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어진 수입을 감사하고, 수입의 범위 내에서 가정을 꾸려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언제나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라

부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언제나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서로를 축복하라. 아내를 축복하면 그것은 남편에게도 영글고, 남편을 축복하면 그것은 아내에게도 영글게 되어 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3:9-11)

부부가 되었으면 이제 후로는 사랑의 말과 친절과 감사와 화평으로 서로를 축복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복되게 하는 길이다.

서로를 개발하라. 서로에게 용기를 주어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네까짓 게 무얼 할 수 있어’ 하는 것은 자기를 멸시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보석을 갈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 성경은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쓴다’(롬14:19) 고 했다. 서로 인정해 주고, 권면하고, 격려하고, 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를 주는 것은 서로를 개발해 주는 것이 된다.

부부는 서로의 것을 공유하고, 동시에 나누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6:18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했다. 서로의 것, 시간이나 지식이나 정서나 물질이나 일이나 대화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그게 부부이다.

서로를 포옹하는데 인색하지 말라

행복한 부부가 되려고 하면 터칭이 있어야 한다. 서로 가볍게 쓰다듬는 것(Touching)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정감스럽게 포옹하는 것(Hug)이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소장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주 쓰다듬게 된다. 왜인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부도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표시로 부부가 서로 포옹을 하거나 쓰다듬는 것은 아주 중요한 행위이다. 쓰다듬어 줄 때 우리는 아름다운 긍정적인 정서를 가질 수 있다.

빰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준다든가, 등이나 손등과 같은 곳을 쓰다듬어 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안도감을 주는 일이 된다. 행복한 부부 생활은 내 작은 노력으로부터 시작한다.
 

주계영 박사/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가정문제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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