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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설교 - 생명에 관한 문명 과학

 

 


말씀 : 욥38:1-11

제목 : 신앙과 과학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두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곧 무신론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 사람들은 다신론자들이거나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또 어떤 이는 자신이 나름대로 섬기는 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영이 완전히 죽어 있거나 조금 살아있다해도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오직 육체적, 정신적으로만 사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영역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서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인간이 만든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의 두가지 큰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그들의 영이 죽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 오는 오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으로라야 교제가 가능한데 영이 죽어있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이 안되니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그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과학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모습니다. 그러니까 영이 죽어 있는 인생은 인간의 모든 삶을 그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이 완전히 죽어있으니까 그 영역은 부정하고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정신적, 물질적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그저 정신적인 측면으로 이해하여 그건 나약한 사람들이 마음에 위안을 받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물질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하나님을 어디 있느냐, 보았느냐, 천국에 갔다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과학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눈으로 보았느냐, 귀로 들어보았느냐, 천국에 다녀왔느냐고 묻는 것은 결국 그게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냐,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하는 질문이고 이러한 질문은 바로 과학지상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여러분, 과학이 뭔가? 과학(科學, science)에 대하여 사전에서는 이렇게 나와 있다.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과학이란 자연에 관한 것 즉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경험 가능한 세계에 대한 어떤 법칙과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학은 인간과 우주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닌 것이다. 과학은 우주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도 아니고 그것을 다 밝혀낼 수도 없고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니 과학의 범위 밖에 있는 하나님을 과학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고 증명하고 알아내려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마치 과학이 만능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과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으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는 사실만 인정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1.과학의 지식적 한계를 알지 못하는 오류

과학은 지식적으로도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말하면 과학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류의 미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진정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과학은 이런 인간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나 해결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런 근원적인 문제 말고 일반적인 지식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지식이 과학의 법칙에 의하여 실험될 수 있고 증명되어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국어 공부를 한다고 하자. 국어를 잘하려면 열심히 글을 많이 읽고 쓰며, 문법을 공부하고, 단어를 암기하고 하면서 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과학적 법칙을 적용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능 분야도 과학적 법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로 만나서 교제하거나 사랑하는 일도 거기에 무슨 과학적 법칙을 적용해서 모든 것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분야들에도 부분적으로 과학을 도구로 사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도 할 수 있고 좀더 긍정적인 발전을 모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모든 원리가 과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밖에도 설령 과학의 범주 안에 있는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과학으로 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이 광활한 우주와 생명은 분명히 과학의 연구대상이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 신비를 과학으로 다 밝혀낼 수 없다. 즉 과학이 결코 인간과 우주와 이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밝혀 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과학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할 수 있는 학문도 아닐뿐더러 설령 과학이 연구할 수 있는 분야라고 할지라도 그것도 다 밝혀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2.과학의 능력적 한계를 알지 못하는 오류

그뿐이 아니다. 과학은 이런 지식적인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능력적으로 한계가 많다. 즉 지식적으로 다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과학이 알고 있는 문제라도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명에 관한 문제를 보자. 생명에 관한 분명 과학의 연구대상이지만 그러나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죽은 생명체에게 다시 생명을 부여할 수도 없다. 인간의 노화 현상을 조금 지연 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불로장생의 길을 열어줄 수도 없다.

물론 이런 근원적인 문제 말고도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너무나 많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세상의 다른 학문의 문제도 과학으로 다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나 혹은 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 모두 지식을 제공할 수도 없고,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도 없는 과학으로 알 수 없다고 하여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는 말이다.

3.과학을 말하면서 비과학적인 진화론을 믿고 있는 오류.

조금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소위 진화론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우주만물의 기원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과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간단히 언급한다. 진화론은 한마디로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는 것이다. 땅도 바다도 하늘도 별도 나무도 동물도 사람도 저절로 생겼다는 것이다. 생물들은 처음에 무언가 단세포 생명체가 생겨나더니 자꾸자꾸 변화해서 마침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요, 가설에 불과한 이론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도 아니다. 증명된 것도 아니고 실험을 통해서 밝혀낸 것도 아니다.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의 법칙으로도 말도 안된다. 물리학적 법칙에도 위배되고, 생물학적 법칙에도 위배된다.

그들이 증거라고 내 놓은 몇몇의 증거들도 사실은 증거도 아니다. 전혀 연결고리도 없으며, 증거라고 말하는 화석이라는 것도 어떤 것은 조작된 것이고, 어떤 것은 처음부터 그냥 그런 동물일 뿐이다. 중간단계의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비과학적인 허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4.과학의 방법을 무시하고 신을 거부하는 오류.

과학지상주의자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엄청난 모순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과학적 방법론은 관찰 ? 가설 ? 실험, 입증 ? 정설, 응용 등인데 신이 없다는 주장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단순히 자신의 신념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말하려면 관찰과 가설과 실험의 과정을 거쳐서 신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실험도 입증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자기의 신념으로 신이 없다고 주장하니까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과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각으로 경험 가능한 세계만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은 인간의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고 정신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밝혀 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영역은 그 이상의 것이기에 과학적으로는 본래부터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을 과학적인 잣대에 의하여 판단하려고 하고, 그래서 당연히 과학적인 법칙으로 관찰하고 실험하고 증명할 수도 없는 영역임에도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이런 모순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여러분, 과학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나 과학자가 하나님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겸손한 태도이다. 그런데 마치 과학적으로 신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무지와 교만과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일일 뿐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라.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38:1-3)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을 퍼부어 대신다.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있었느냐, 네가 바다 속을 속속들이 다 알 수 있느냐, 광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누가 비를 만들었고, 누가 하늘의 일월성신을 만들었느냐, 너의 마음 속에 지혜는 누가 주었느냐, 네가 그 근원을 아느냐, 네가 거기에 있었느냐 하시면서 네가 알거든 한번 대답해보라고.....

그러니까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양, 마치 자신이 판단자가 되는 양 여기며 말했던 욥에게 그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며 그 무지와 어둠 속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마치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말하지만 실상 그들이 아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작은 지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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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2)

 

 

 

 
 하늘소망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 <로마서 5:10>

타락 이전에 선을 행할 수 있었던 인간은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 합니다. 이제는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죄를 넣지 않아도 우리 안에 죄가 생겨 하나님도 알아 볼 수 없고, 함께 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선의 기준 되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써 만드신 이 세상의 법이 아닌 인간의 자의적인 선악 기준을 통해 법을 정하고 그것을 옳다고 여기게 됩니다.

죄가 있으면 심판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놓고 반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인간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는 유토피아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에녹 성을 쌓은 가인,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 공산주의 체제를 다진 스탈린,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자는 민주주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자본주의 까지 어떠한 방법과 시스템도 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천국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그 모든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3 십자가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고 인간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뒤집어 쓰는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입니다. 인간의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어떠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란을 일으킨 모든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 마땅 합니다. 인간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그 죄값을 대신 받겠다고 나선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린 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의지가 아니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심판을 내린 것은 빌라도가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 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을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가 복음 15:34>

반역자가 달리는 십자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달리는 나무에서 예수님은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3>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십자가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죄로 인해 교제할 수 없었던 하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과 교제할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한 것은 그 둘을 갈라 놓았던 벽을 허문 것은 십자가의 사랑 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벽을 허무시고 <에베소서 2:14>

이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이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믿음을 얻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그래서 예수님과 하나됨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20>

나는 이제 죄와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 1서 3:5~6>

-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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