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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주일오후예배설교

 

 

 
 
제목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

말씀 : 벧전1:18~21

뉴욕의 한 교회에서 아주 오래전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할머니가 예배가 끝내 갈 즈음에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강단에 나가서 간증 좀 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목사님이 허락을 하자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1860년 9월 19일, 이 교회 바로 옆에 있는 한 노예시장에서 노예로 팔려가기 위하여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노예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이자 우리를 팔아넘기기 위하여 경매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는 어디로 팔려갈까, 내가 팔려 갈 집 주인들은 좋은 사람일까, 나를 학대하고 나를 짐승처럼 대하는 아닐까, 과연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하면서 불안과 초조 속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 교회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점잖은 신사분이 오시더니 나를 800불을 주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분은 나를 해방시켜주며 이제는 당신은 자유인이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이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그 날 예배시간에 우리가 지금은 노예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번 주일날 한 사람의 노예라도 해방시켜주자고 의논이 되어 노예 한 사람을 사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로 내가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 후로 나는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약 70년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교회도 너무나 감사하고 도무지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한 평생 이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름대로 섬겨왔습니다.

이제 저는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로 갈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미천한 사람이지만 이제 제가 하나님 품으로 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노예에서 해방되어 그 은혜를 도무지 잊을 수가 없어서 한평생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를 해방시켜 준 이 교회에 감사함으로 섬겼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고 다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잊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되는 것도 이와 같이 감격스럽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고 평생 잊을 수 없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일진대 죄와 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건짐 받은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하고 찬양하고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속 받았는지,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의 그 놀랍고 크고 영광스럽고 고귀함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세상의 헛된 것으로부터 대속 받음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 받았다. ‘헛된’이라는 말은 ‘공허한, 헛된, 효과 없는, 쓸데없는, 무가치한, 무익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헛된 행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세상의 헛된 사상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물질 등의 죄와 무지 속에서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과 종교를 따라 행하던 모든 행실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헛되고 무익하고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상과 가치가 완전히 무가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상까지도 100% 무가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온전치는 못하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거나 희망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헛된 것입니다. 혹시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 약간의 유익을 얻는다해도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음으로 인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가는 악한 행위에 불과한 것인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상과 자신과 육신의 욕망과 돈과 명예와 사람 등의 헛된 것을 섬기며 그걸 인생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죄와 사망과 지옥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고 다행스럽고 영광을 돌릴 일입니까? 사람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도 평생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할 텐데 하물며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구속되어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이 은혜를 어찌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람의 노예 생활하는 것도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일일진대 마귀사탄의 종노릇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은 얼마나 더 끔찍스러운 일인지를 기억하며 거기서 해방되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것이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를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격과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니 평생 이 은혜를 잊지 말고 다시는 세상의 것에 종노릇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감사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진정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자들로써 진정 거룩하고 아름답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2.우리의 대속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된 것임.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우리가 과거의 모든 헛된 것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금이나 은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도 아니고, 지식이나 과학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이나 성인군자나 선지자나 능력자가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전부터 하나님께 함께 계셨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물론 우선은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정결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온전히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고귀하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의 은총을 입은 우리도 너무나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구속 혹은 대속이 뭡니까? 한마디로 값을 지불하고 처벌을 면제받아 구원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예로 팔린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풀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구속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 고귀한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의 삯을 지불하시고 죄와 마귀사탄과 지옥의 노예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한 1,000억을 주고 산 물건이라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얼마나 애지중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천억 1조 100조가 아닙니다.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대속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존재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보다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복되고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 보다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평생을 감사와 기쁨과 감격과 은혜 속에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우리가 고귀한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는 정말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몸값을 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귀한 존재이니까 귀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귀한 몸을 함부로 굴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자와 거지와 어울려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아 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고 똥통에서 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과 모든 죄와 마귀 사탄으로부터 너무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그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입은 사람들, 너무나 고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을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벧전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래서 영광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우리 소망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온전히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세상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생명과 생명의 기쁨이 있는 양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고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죄와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사탄의 권세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헛된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나라가 있는 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고귀한 존재이니까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땅의 것을 좇아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몰라서 세상의 것을, 헛된 것을 좇아 살았는데 이제는 그걸 알았으니까요. 얼마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엄청난 은혜와 기쁨과 영광과 은혜가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그걸 안다면 왜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겠습니까? 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정말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인생인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보다 천하보다 세상 모든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죄와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그 영광과 존귀와 거룩하고 기쁨과 은혜에 참여하게 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 찬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이 놀라운 신분에 걸맞게 거룩하게 아름답게 존귀하게 살아가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에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 풍성하게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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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

 

희망찬 새해를 허락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

금년 한 해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총을 베푸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믿음의 지체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참된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를 원하오니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새해의 첫 주일 우리가 주님꼐 예배하며 나아갑니다.

올해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복된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지난해에 아픈 상처가 있었다면 이제 싸매 주시고, 잊어야 할 일들이 있다면 기억나지 않게 하시며,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게 하소서.

온전한 성도의 삶을 위해

올해에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불신앙이 확신으로 바뀌게 하시고 주를 향해 불붙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세상 가운데 주를 증거할 수 있는 십자가 군병으로 세워지도록인도하여 주옵소서.

어려움과 시험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더라도성령께서 친히 도우사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옵소서.

물질의 문제로 우리 믿음이 발목 잡히지 않게 하시고, 건강 때문에 우리가 봉사의 손길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더욱 더 주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는 복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새해에 계획한 모든 것들이 주 안에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모든 가정들이 응답과 확신 가운데 살아가기 원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가족이 있는 가정에게 모든 가족이 주를 섬길 수 있는복된 은혜를 주옵소서.

예배를 예배되게 하시고

이곳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혼 구원의 목표가 이루어지게 하시어, 이웃을 섬기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선한 손이 도우시어 교회의 모든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주변에 좋은 소문에 전해 지도록 주관하여 주옵소서.

목사님이 말씀을 증거하실 때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어 온 교회가 회개하는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기대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시기 원하오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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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부부의 기도 / 가족을 위한 기도

 

 

 

 

 

행복한 부부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서로에게 서로를 배필의 선물로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혼인 성사를 통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시고
하나님의 보호아래 가정을 충실하게 이끌어 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이를 갈라놓게 하는 장애물이 존재할 때는
하나님께서 손수 치워주시고,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마음과 의지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을 주면 줄수록 더욱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지혜를 더욱 크게 허락하시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쳤을 때는 용기와 힘을, 낙담과 실패에는 위로와 격려를,
언제나 섬세함과 부드러움과 친절로 늘 변함없는은혜를
베풀어주소서 .

서로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우리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며
서로를 보완하여 완성하는 기쁨을 허락하소서
언제까지나 소중한 존재로서 곁에 머물며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가족을 위한 기도

 

사랑과 은혜가 크신 하나님 아버지!
가족이 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또한 저에게는 힘이요 영광의 길이시며
위로이자 자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더 큰사랑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저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아끼면서
우애를 돈독히 키워가게 하소서.
어려움은 함께 나누어서 반으로 줄게 하고
기쁨은 나누어서 배로 늘게 하시어
우리 모두가 평화 안에 머물게 하소서.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기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가족에게
건강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을 힘입어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만 마음을 쓰며
영혼이 성령 충만함과 형제들에 대한
봉사를 하게 하소서.

저희 가족의 주인이시며 지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
주신 음식에 감사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심에 감사하며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심에
더더욱 감사하게 하소서.

저희 가족 모두를 온갖 질병과
병고의 위험에서 지켜 주시어
건강을 보존토록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우리 가족에게 함께 하셔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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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예배 대표 기도문

 

 


자비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커다란 사랑과 은혜 가운데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오늘 금요 철야예배에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다시 불러모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자리에 나올 때마다 거룩하신 성령님 함께 하셔서 저의 00교회의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진정과 신령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밤 저희 선우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금요철야 예배로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영광드리고자 하오니 기뻐 열납하여 주시옵고,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성도님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옵시고 한 자녀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두 함께 모여 거룩하신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올리는 데 혼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거룩하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오늘밤 주님의 몸 된 선우교회의 지체들이 거룩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전에 나왔지만, 참으로 저희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고, 추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 저희들의 중심에는 세상적 죄악과 주님의 십자가의 영광을 흐리게 하는 모습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물질적 욕심을 담고 제 주장만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저희 심령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붙들어 주셔서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아니하는 모든 세상적인 정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저희를 위하여 스스로 피 흘리신 주님의 뜻을 따라, 이제는 저희들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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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 헌신 예배] 작은 자에게 주신 큰 은혜

 

 


제목 : 작은 자에게 주신 큰 은혜

말씀 : 엡3:7-9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설교를 듣다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설교 듣다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때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점잖은 분들이라서 그런지 그런 말씀하시는 분이 안 계시데요.)

어쨌든 은혜라고 하는 말은 자신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렸던 말씀을 통해서 혹은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도 무언가 자신의 삶에 유익한 무엇을 얻게 되어서 그래서 기쁘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은혜는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대학 시험에 합격하였다거나 취직이나 승진이 되었을때, 아프다가 건강을 찾았을 때, 새차나 새집을 구입했을 때에 등등 물질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때 이것도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7절에서는 그와같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은혜와는 좀 다른 차원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 말씀은 한마디로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꾼이 무엇입니까? 물론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 그 주인의 뜻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 일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의하면 그렇게 달갑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누가 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울은 일꾼이 된 것을 가장 큰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무언가 나에게 당장 유익한 일이 생겨서, 무슨 경사스런 일이 생겨서, 무언가 물질적으로 좀 보템이 되는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남의 집 일꾼이 된 것을 감사하고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 흔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때처럼 그렇게 인간적으로 좋은 일, 경사스러운 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는 예수님 만나기 이전이 훨씬 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당당한 가문에 높은 지위와 학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있었고, 명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명예와 영광을 누릴 위치에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만큼 은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오히려 이런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수없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굶고 추위에 떨고 광야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이방인들에게 동족에게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기는커녕 있는 것 마져 몽땅 빼앗겨 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핍박과 고난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15:10에서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건강하게 잘먹고 잘사는 것 이것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꼭 호의호식하고 만사형통하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더 고상하고, 더 가치있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은혜,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떤 보람있는 일을 위하여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 나 같은 사람도 누구에게인가 쓸모가 있다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실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받아 누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은혜입니다. 가족과 교회와 사회속에서 내가 약하고 부족할때에, 내가 낙심하고 힘들어할때에 남에게서 무언가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받는 은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은혜는 주는 은혜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 마음을 주고, 내 사랑을 주고, 내 힘과 시간과 물질을 드리면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물론 이 두가지 은혜가 다 소중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은혜가 더 크냐고 굳이 따진다면 사실은 후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는 은혜, 베푸는 은혜, 기여하는 은혜, 쓰임받는 은혜 이것이 더 나를 보람있게 하고, 당당하게 하고, 가치있게 하고, 기쁘게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바로 그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그는 받는 은혜속에 살았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는 은혜속에 살았습니다. 그 은혜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였습니다.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이 살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명예도 얻고 영광도 누리고 존경을 받으며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는 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드리는 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말입니다.

과거에 그는 큰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했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권세와 영광과 명예와 존경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하니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것이 왜 그렇게 작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거기에 목숨을 걸었던가 하면서 실소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말씀에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도대체 얼마나 더 작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다는 말은 이미 최상급과 같은 말이거든요. 지극히라는 말이 뭡니까? 어떤 극점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갈곳이 없는 어떤 한계점에 이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자라는 것은 더 작을래야 작을 수가 없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과거에 자신만의 영광을 위하여 살던 때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삶이었는지, 얼마나 무가치한 삶이었는지를 절실하게 표현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별로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사람앞에 별로 내어 놓을 것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결코 인생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언가 나도 남에게 쓸모가 있는, 무언가 나도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나도 무언가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질 때 거기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진정 기쁘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더 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누군가 이웃을 위하여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혹은 가족을 위하여 혹은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있고, 거기서 내가 필요한 존재로 인정을 받고, 누군가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기쁜 일이요, 가슴 뿌듯한 일이요, 삶의 의미를 느끼는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을 위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더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오늘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는 일꾼으로 부름받게 된 것이 그렇게도 기쁘고 은혜가 되고 보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설령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해도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너무나 크고, 주님께 받은 바 이 은혜가 너무도 커서 그는 기쁨과 감격속에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속에는 바울이 그렇게 기뻐하고 감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자신에게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그 진리의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주셔서 그 생명의 비밀을 세상속에 나타내게 해 주신 사실이 그는 그렇게도 고맙고 감사하고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비밀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밀은 아무에게나 말해주기 않습니다. 아주 가깝고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알려줍니다. 여러분, 저금통장을 아무에게나 맡기고 아무에게나 비밀 번호를 가르쳐 줍니까? 여러분, 금고를 아무에게나 맡기고 비밀 번호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가르쳐 줍니까?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려 줍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한번 테스트 해보십시오. 누구에게인가 내가 좀 돈이 필요해서 그러니까 통장을 달라고 하면서 비밀번호 좀 가르쳐 달라고 해 보십시오. 그래서 선뜻 통장과 비밀번호를 내 준다면 그 사람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장로님이나 권사님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 선뜻 내 주실지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또 그렇게 감사하고 기뻤던 것입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내가 뭐 대단한 존재이길래 나를 사랑해 주시고, 나를 믿어 주시고, 나를 택해 주셔서 그 신비한 비밀을 알려주시고 그 비밀을 증거할 자로 세우셨는지 그것이 감사하고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신이 나서 감사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는 세상의 어떤 은혜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 엄청난 은혜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허락하신 것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그렇게 귀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 그것만이 아닙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리의 역사를 위하여,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 또한 우리는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국가를 위하여 부름을 받고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일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주님 나라를 위하여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을진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맡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저금 통장 비밀번호를 나에게 알려준대도, 국가 일급 비밀 서고의 비밀번호를 알려준대도 그래도 대단한 기쁨이요,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비밀을 세상에 들어내야 할 직분을 맡기셨을진대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전도회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기뻐하며 감사하며 여러분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나 같은 것도 필요가 있어서 나를 일꾼으로 세우셨다는, 나같은 것도 믿어주시고 신뢰하셔서 일꾼으로 세우시고 비밀을 알려주시고 그 사역을 감당케 하셨다는 그 기쁨속에서 그 감격속에서 주님 나라 위하여 함께 힘쓰시기 바랍니다.

비단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전도회 뿐만 아니라 우리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서리집사님들, 권찰님들, 성가대원들, 찬양단원들, 구역장, 구역권찰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 주님이 나를 불러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인쳐 주시고, 나 같은 것도 그래도 쓸모가 있다고 일꾼으로 세워주시고 그래서 이 복음 사역을 맡겨주셨다는 것, 이 엄청난 일에 쓰임을 받고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기쁨과 감격속에 주님의 나라건설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기쁨과 은혜속에 주님의 나라를 이땅위에 크게 건설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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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대강절) 그 날을 바라보며


 


 


말씀:이사야 35:1-10

제목:그날을 바라보며

영국의 극작가 사무엘 베켓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으로 1969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황량한 길가에서 <고도>라고 하는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줄 것을 막연히 기다리면서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그들은 고도가 나타나면 그들을 구원하여 무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작정 고도를 기다리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떠들어대기도 하고, 혹은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는 등의 별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절규하기도 하고, 때로는 희희낙낙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희망을 갖기도 하면서 그저 무한정 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아주 허무하게 종결을 짓고 있습니다.

무슨 결론도 없고 마치 쓰다가 만 책처럼 그렇게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오늘날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아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참된 인생의 목표나 기다림도 없이 그저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것이 마치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인 것처럼,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목적인양 생각하며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모습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인생의 진정한 목표와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영원한 고향을 망각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소유하고 즐기면서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마치 인생의 의미요, 인생의 가치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기쁨도 될 수 없고, 참된 만족과 가치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고, 기다려야할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허무와 좌절과 고독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영원한 절망과 고통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만족과 은혜를 주실 분은 누구십니까? 정녕 우리가 기다려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정녕 우리 인류가 소망을 걸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성육신하셔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며 소망이며 기다려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1.갈림길에 서 있는 인생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에서는 두 개의 세상을 대비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설령 산다고 해도 온갖 고초속에 살아가야 할 그런 험하고 거친 세상입니다. 소경과 귀머거리와 저는 자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고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사나운 세상이요,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정 반대의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낙원과 같은 세상입니다. 광야와 사막 위에 샘물이 솟아나서 백합화가 무성하게 피어나고, 온갖 종류의 풀과 꽃들이 만발한 샤론평원처럼 아름다움과 향기가 넘치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저는 자는 일어나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소경의 눈이 열려서 누구하나 소외당하거나 고통 당하는 사람이 없이 함께 은혜와 기쁨을 누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 개의 상이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두 개의 상이한 세상이 다만 우리의 상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갓 이상향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된 세상이며, 우리를 위해서 예비된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누리고 있든 누리고 있지 못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지금도 이 두 개의 세상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두 개의 세상중 어느 한쪽에 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속에서 험하고 절망적이고 영원한 고통의 삶을 살아 갈것이냐 아니면 낙원과 같은 세상속에서 영원한 영광과 은혜의 삶을 누릴 것이냐 우리는 이 두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누가 광야의 삶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영원한 고통과 절망의 삶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낙원의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누가 영원한 행복과 은혜의 삶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하면 이 광야의 삶에서 해방되어, 이 절망과 무의미의 삶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기쁨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저 적당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은혜의 삶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해답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2.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

먼저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실 그때에만 진정한 은혜와 행복의 삶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바벨론 포로와 같은 세상속에서 좌절과 두려움과 참된 평강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에게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좌절하고 고통스럽고 근심걱정하게 하는 모든 사단의 세력을 물리쳐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열리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저는 자는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하는 모든 것이 물러가고 우리는 진정한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는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외에는 다른 어느 누구도 해결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인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그리하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안에 있는 자에게 진정한 생명과 평강과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잊지 말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대강절넷째주일을 보내면서,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이제 성찬식과 세례식에 참여하면서 먼저 이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어리석고 미련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은혜를 주시려고 기쁨을 주시려고 변함없이 찾아오시는 주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셨을 때 비로소 구원의 길이 열리고, 은혜의 길이 열리고, 낙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욱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주님을 영접해야 할 인간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진정한 은혜와 기쁨과 영광의 삶을 살기 위하여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영접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다리를 만들어 주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 다리를 건너가지 않으면 그 다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먹지 않으면 아무리 풍성한 진수성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다. 8절 말씀입니다.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광야와 같은 세상에 대로를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길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영광의 나라에서, 그 낙원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을 누가 갈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 길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깨끗지 못한자는 지나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만이 그 길을 통과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덧입어서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그래서 죄로부터 해방되어 깨끗하게 되어 질때에 우리는 그 거룩한 길을 건너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대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행동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단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분을 진실로 영접하고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그 거룩한 길이, 그 영광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무지로 말미암아, 어둠으로 말미암아, 완고함과 강퍅함과 고집스러움과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모르는채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를 맛보며 또한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수 있으며, 이 어찌 영광돌리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천년전에 이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한 통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심령속에 가정속에 교회속에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기쁨과 은혜와 생명을 주시고 계십니다.

물론 아직은 영광의 나라가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힘이 들때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영광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게 영원한 기쁨과 안식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도 우리를 괴롭게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안식만이 영원한 영광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대강절 넷째주일을 보내면서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이 광야에 같은 세상에서,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건지시어 참된 생명과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영광의 나라를 오늘 여기서 맛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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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환자를 위한 기도

 

 


치료의 하나님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

수술을 받는 주의 자녀를 보옵소서.

 
저들이 두려워하고 있나이다.

저들이 걱정하고 있나이다.

주님께서 저들 곁에 계서 저들의 손을 잡아주셔야하겠나이다.

수술을 받는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불쌍히 여기소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과 의심 대신에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이 채워지게 하옵소서.

 

그들을 고치기 위해 수고하는

의사와 간호사와 돌보는 가족과 믿음의 형제자매를 축복하옵소서.

 

의사들에게 명철과 지혜를 허락하셔서

아픈 곳을 분명히 짚게 하시고

잘못된 부분을 깨끗이 제거하는데 실수함이 없게 하옵소서.


저들의 손을 우리 주님의 자비한 손으로 잡아 주시고

수술을 하는 동안 손이 떨리지 않게 하시며

잡는 의료기구를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들에게 믿음을 주소서

저들의 수고 위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믿게 하시고

저들의 제한된 능력 위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이 있음을 믿게 하시며

저들이 하지 못하는 일도 하나님은 이룰 수 있음을 믿고

환자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말씀하신 하나님

수술을 시작할 때부터 회복이 되어 온전해지기까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총이 같이 하여

이번 기회에

그 동안 고통하던 병에서 온전히 자유함을 얻고

건강을 회복하여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열심히 살게 하옵소서.

 
만병의 대 의사가 되신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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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대표기도문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을 택하여 주시고, 거룩한 날을 허락하시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전에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한 주간을 뒤돌아 볼 때 주님의 뜻과는 달리 내 생각,
내 마음과 고집으로 살았음을 고백하오니 미쁘사 사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처럼 나약하고 연약한 모습을 살피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주시옵고,
성령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정직하고 성결한 영을 주시어서 선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연일 북한의 위정자들의 위협과 도발이 한 민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위협과 도발로 인하여 온 나라와 민족이 불안으로 이어져 가고 있으며,
핵과 미사일 발사를 하겠다며 수많은 협박으로 인하여
이 나라의 경제가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나듯이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저들의 심령을 만지어서 이 나라 민족의 앞날을 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서.

또한 그들을 위하여 우리 믿는 자들의 기도를 원하고 계시는 줄 아오니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미래가 주님 손에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그 믿음의 눈들이 합하여 이 나라 온 민족의 기도가
불길처럼 타오르게 하시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알지 못하여 죽어가는 영혼과 길 잃은 양들을 불러 모으셔서 날마다
그 수가 더하게 하시고, 소망과 축복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갖게 하시며, 항상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맘을 주시고, 주님의 자녀다워 지는 훈련을 받게 하시어서
주님의 자녀로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교우님 성도 형제자매님들에게 주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맘이 되게 하셔서 어지러운 세상에 참된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축복의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헝제 자매님들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계십니다.
풍족함을 허락하시어 남에게 베풀고도 남음이 있게 하시고,
육체가 연약한 성도도 계십니다.
강건함을 허락하시어 주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는데 필요한
건강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소유를 우리 자신이 주장하지 않는
영적인 지혜도 주시고, 각자 분량대로 기도로, 전도로, 헌신 봉사로,
충성된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 수 있는 믿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오늘도 주님은 일할 일꾼을 찾으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땅에 묻어 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일에 헌신 봉사하는 자들이
다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의 언약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세상적인 문제로 근심하고
낙심하지 않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고, 지혜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서 성령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지켜 주시며, 평생 동안 말씀을 전하는 복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선한 목자의 모범이 되게 하시고, 영적 지도력과 분별력을 더하셔서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자 목사님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배드릴 때에 주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옵시고,
오늘 뿐만 아니라 날마다의 삶이 주님 앞에 예배가 되며,
오늘 예배가 감사의 찬양이 되어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산제사가 되게 하옵고 저희들이 드리는 이 예배가 형식이나
습관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예배가 되도록 주께서 친히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미처 구하지 못한 것도 주님께서 아시오니 채워 주실줄 믿사오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아멘으로 반응하며 삶 가운데서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은혜를 체험하기를 원하오며, 
축복하시옵소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 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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