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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치유] 성경과 성령에 의한 치유 

 

 

 

 

성경본문: 요19장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작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5,26)


예수님은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고 헨리 나우엔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미 그분이 이 모든 고통을 받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미 상처로부터 치유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1. 육체적 고통과 수치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육체적 아픔은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입니다. 옆에서는 창으로 찔려 내장과 피가 나오고 머리에서는 가시면류관으로 피가 흐르고 십자가 처형 전에 매맞은 것으로 인하여 온 몸이 성하시지 않았으며 손에는 못이 박힌 채로 십자가에 매달리시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옷들을 벗긴 채 수치를 당하시면서 육체의 극심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이 이상 큰 고통과 수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어떤 고통도 이해하십니다.


2. 오해와 핍박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네가 하나님이냐?”하면서 예수님은 많은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언제나 그를 모함하고 괴롭히려는 많은 무리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상에서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라고 조롱하고 침을 뱉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받은 오해와 핍박에도 함께 하실 수가 있습니다. 더 깊은 이해를 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분도 밑바닥부터 그리스도의 메시아 성을 부인하는 조롱과 핍박을 감수하셨기 때문입니다.

 

3. 주림과 목마름

예수님은 피곤하신 가운데도 기도하러 가셨고 하루종일 병 고치며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기진 하셨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할 때에는 너무 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는 타는 듯한 목마름을 겪으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배고픔도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절대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으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치유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목마름을 겪으셨으므로 우리의 목마름에 대하여 더 깊이 아시고 있습니다.

 

4.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반

세상에서 가장 아픈 상처가 남에게 배반당하고 버림받는 것일 것입니다. 사랑하던 배우자가 갑자기 어느 날 짐을 싸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될 때에 그 배반감으로 인하여 심적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고통도 아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더 큰 배반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12제자 가운데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돈을 받고 스승을 팔았습니다. 3년 동안 함께 일하고 먹고 자고 하던 제자였습니다. 재정을 맡던 제자였습니다. 그러한 제자가 예수를 잡으려고 하는 무리들에게 돈을 받고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어려움이 생기자 좇아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5. 군중들의 배반

말씀이 끝나고 나서 흩어질 배고픈 청중들을 위하여 주님은 불쌍한 마음을 가지시고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돌아온 것은 “성난 군중”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예수를 잡아 못 박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플 때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이지만 결국에는 손을 들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외쳐대었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운 제자들에게도 군중들에게도 철저하게 배반당하셨습니다. 열심히 사랑하는 양들을 먹이던 목자가 바로 그 사랑하던 성도들에게 배반을 당할 때에도 주님은 그 고통을 함께 나누실 수가 있습니다.

 

6. 저주

나무에 달리는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위하여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저주가운데 가장 큰 저주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이 죄악으로 인하여 저주아래 들어간 삶을 몸소 몸으로 겪으셨습니다. 얼마나 이 저주가 무겁고 괴롭고 아프고 무서운 것인가를 직접 겪으셨습니다. 가장 큰 저주...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까지 온전히 다 경험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 저주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정들은 문제를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주아래에서 누려야 할 복을 잃어버린 자들의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7. 버림받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고 소리 질러 고통을 표현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멀리 도망가고 하나님도 침묵하는 순간, 예수님은 철저하게 혼자 계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부터도 하나님으로부터도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은 버림당하신 체험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버림당했다고 자기 비애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 처절하게 아픈 순간을 직접 체험하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당신이 겪으신 버림당하신 체험을 통하여 버림당한 모든 아픈 심령들과 가정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8. 구타

현대가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배우자 폭력, 구타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어느 날 폭력배로 변한 배우자로부터 비인격적으로 매를 맞고 나면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매맞는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되십니다. 주님은 얼마나 매를 맞으셨는지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매 맞는 여인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면 주님은 그들에게도 “길”이 되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아시고 그 폭력을 결박하실 수 있는 권능이 계십니다.

 

9. 가난 -소년 가장

성경에는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30세까지 목수 일도 도왔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부모 없이 소녀, 소년 가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일지라도 주님은 그 어려움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온 가정의 경제를 도맡아하고 있을 때, 가난과 배고픔으로 울고 있을 때...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위로해주시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보다도 더 오래 이러한 생활을 하시면서 책임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위로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10. 이별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제자들, 그리고 따라다니던 무리들과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것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떠난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운데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을 주님은 감당하셨습니다. 그러한 상처는 우리 가운데 이별과 사별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주시고 치유해주시는 힘이 됩니다. 그 분이 상처를 받았으므로 상처 당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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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1)

 

1 창조

 

 


성경은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음을 얘기합니다. 성경의 시작은 시간의 시작 즉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만드셨음을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완벽했으며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어떠한 흠도 없었고, 어떠한 저주도 없었으며, 그 저주로 인한 죽음도 없었던 하나님 스스로 보시기에 아주 좋은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교제 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교제가 가능했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에덴 동산과 이 세상의 모든 별들, 강과 바다, 동물들, 식물과 그 열매들은 인간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골로새서 1:16>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히브리서 2:10a>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0>

인간은 이 세상의 왕이었고,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었지만,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만은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를 먹을 때, 반드시 죽게 될 것을 경고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2 타락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살고 있을 때, 뱀 곧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 먹게 하셨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먹게 하셨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못먹게 하는 이유는 너희의 눈이 열려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러는거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이 땅에 왕이 되게 하셨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지만,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도 함께 먹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반란 이었습니다. 이 땅의 왕인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삶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소유였던 그들의 삶을 그들이 훔쳤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스스로의 수고로 살아남았어야 했으며,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죽음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5:2>

 

또한 이 세상 역시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저주로 인해 모든 피조물들은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 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그 어떤 저주 보다도 끔찍한 저주는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상 죄가 있는 우리들과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끊어졌고,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반역자가 되어 하나님과 완전히 등진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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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신앙을 이어가는 방법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장(통 51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느헤미야 10장 28∼39절 
 
말씀 :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은 자신과 조상들의 잘못을 다 고백한 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이 맹세를 어기면 저주도 기꺼이 받겠다는 아주 단호한 맹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살기로 결단하고 있습니까. 

먼저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방인과 결혼하는 문제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페니키아 출신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시집오면서 얼마나 나라 안에 우상숭배가 극심해졌습니까. 솔로몬도 외교적 수단으로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면서 결국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혼미해지고 타락의 길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이방인과 결혼해선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신앙적 차이가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결혼은 가정 안에서 작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유다 백성들은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노라 맹세합니다. 당시에 주민들이 유대인으로만 구성돼 있었다면 모두가 율법을 지킬테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에도 물건을 팔았고, 유다 백성도 그 물건을 사왔던 것입니다.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물품이나 곡물을 사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안식일을 구별된 하나님의 날로 지키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이 대대에 전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를 통한 믿음생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교회와 예배에 소홀히 하면서 주관적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겠노라 했던 결단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믿음을 대대에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이 대를 이어 전수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날을 힘써 지킴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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