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에 해당되는 글 2건

반응형

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 하나님의 말씀

 

 

 


말씀 : 잠7;1-5

제목 : 하나님의 말씀

인간에게는 생존하기 위하여 혹은 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한 욕구가 있다. 인간의 욕구는 1차적인 생리적 욕구와 2차적인 사회적 욕구로 분류된다. 생리적 욕구는 경험이나 훈련이 필요치 않은 본능적인 욕구를 말하는 것으로 생욕, 식욕, 성욕과 같은 것이며, 사회적 욕구는 물론 본능적인 성격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로 사회생활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명예욕, 소유욕, 성취욕, 지배욕, 권력욕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욕구들은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 모든 욕구들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고 인간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 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구들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인간의 삶을 가장 심각하게 파괴할 우려가 있는 욕구는 소유욕과 성욕, 명예욕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부조리와 갈등과 고통의 현상들이 바로 이러한 소유욕과 성욕과 명예욕에 의하여 발생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관련된 범죄에 대하여 많은 경고를 하고 있다.

물질적인 욕망으로 인한 범죄와 관련해서는 십계명중 제8계명에서는 “도적질하지 말지니라.”고 하셨고, 또 제10계명인 출20:17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시면서 남의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것을 족한 줄로 여기며 살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 성적인 범죄에 대하여 십계명중 7계명인 출20:14에서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하셨고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레20:10) 이러한 내용들은 인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욕망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잘못 사용될 경우 인간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함으로 일어날 수 있는 죄악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씀안에 굳게 서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모든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1.말씀이란 무엇인가?

먼저 1-4절에 나타난 ‘말씀’에 대한 표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절의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간직하며, 2절에서는 내 '법'을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4절에서는 '지혜'에게 누이라하고, '명철'에게 친족이라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물론 말이나 명령이나 법이나 지혜나 명철은 모두가 같은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곧 명령이고 법이고 지혜이고 명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명령이고 법이고 지혜이고 명철이니까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간직하고 지키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여러 가지 각도에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다양한 기능을 말해준다. 즉 말씀을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삶의 법칙이라는 의미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의 기준, 행동의 기준, 준거가 곧 법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표현할 때는 이 말씀이 인간의 행동의 모든 기준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말씀을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말씀이 인간에 참된 진리의 세계를 알려주는 올바른 지식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모든 지식과 지혜와 진리가 들어있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인 진정 지혜인가? 무엇이 진정한 지식인가? 물론 생명을 주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지혜요, 지식이 아닌가?

생명을 주는 지혜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주는 지식은? 오직 말씀, 오직 예수, 그러므로 그 지식을 알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곧 지혜가 되는 것이다.

또 말씀을 ‘명령’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절대적인 규범으로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지혜 이것은 결코 단순한 권면이나 그럴듯한 종교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지시요 명령이라는 것이다. 명령이니까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1절에는 내 ‘말’이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말씀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혹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혹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등등의 표현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임으로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감히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경홀히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그것이 법이고 지혜이고 명철이고 율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래서 정말 그것을 잣대로 삼자. 참지혜가 거기 있음을 알고 그 말씀을 따르자.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엄중히 다루자.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말씀의 인도를 따라 참 생명의 은총의 길을 걸어가자.

2.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다음에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법이요, 명령이요, 계명이요, 지혜인데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하는 것이다. 어쩌긴 어쩌겠는가? 그것이 법이고 지혜라면 그 말씀을 지켜야 하지. 지키면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1-4절에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말씀을 간직하고(1절) 지키고(2절) 가까이하라(3절 上) 새기라(3절下) 친근히 여기라(4절)는 것이다. 여기서 ‘간직한다’는 것은 「숨기다, 비축하다, 저장하다」는 의미이다. 또 ‘지킨다’는 것은 「지키다, 보호하다, 망보다」는 의미이다. 가까이한다는 「곁에 두다, 떠나지 않다, 함께하다」라는 의미이며, 또 ‘새기라’는 것은 「기록하다, 명부에 올리다, 등록하다」는 의미이다. 또 친근히 한다는 것은 「가까이 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우선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넣고, 새겨 넣으려면 가까이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며, 그 다음 다음에는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간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들이 침범하여 마음속에 들어 있는 말씀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지키라는 말이다.

특히 지키라는 말씀속에서 2절 후반부에서는 눈동자처럼 지키라는 말이 있다. 눈동자처럼 지켜라. 사람이 어떻게 눈동자를 지키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민첩하게 지킨다. 반사적으로 지킨다. 눈에 무엇인가가 가까이 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깜박여져서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어 보호하는 것이다. 눈은 그만큼 중요한 기관으로 반사적으로 지키는데 이와 같이 무엇인가가 말씀을 침범하려고 하면 다른 어떤 것을 지키는 것보다도 중요하게 잽싸게 지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말씀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돈을 지킴보다, 내 육체를 지킴보다, 내 명예를 지킴보다 말씀을 지키는가? 돈이냐, 말씀이냐하는 기로에서 우리는 무엇을 택하는가? 육체의 생명이냐 말씀이냐하는 기로에 선다면 무엇을 지킬 것인가? 명예이냐 말씀이냐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면 무엇을 지킬 것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지키기를 원하실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보다 물질보다 명예보다 지식보다 말씀을 지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생명보다 물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욕심장이라서? 독재자라서? 폭군이라서? 물론 아니다. 그게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그게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가장 풍요롭게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지키기를 새기고 간직하고 지키기를 원하시는데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래서 4절에서는 말씀한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하라.”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친근히 하라는 말이다. 가까이 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누이와 친족을 구별해서 말씀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친족처럼 형제처럼 그렇게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라는 것이다.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가까워지고 함께 있게 되고 떠나지 않게 된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함께 있으면 나의 삶에 은혜가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라. 즐거워하라. 좋아하라. 사랑하라. 묵상해야 하라. 교회를 가까이하라. 예배를 가까이하라. 적용하기를 가까이하라. 그리하여 더욱 은혜 가운데 살아가자.

3.말씀을 지킨 결과는 무엇인가?

말씀을 새기고 간직하고 지키고 가까이하라고 경계하신 다음에 5절에서는 그 결과를 말씀하고 있다. 왜 그렇게 말씀을 지켜 살라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그 말씀들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5절 말씀을 보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즉 그 말씀을 네가 네 마음속에 지키면 이제는 반대로 그 말씀이 너를 지켜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너를 모든 악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많은 시련들가운데서도 오직 말씀으로 승리한 사람이다. 형제들이 자신을 죽이려다가 팔아넘긴 악행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 들여 형들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원수를 갚지도 않았다. 또 물질적으로도 신앙양심에 입각해서 살았고, 육체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았다. 창39장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요셉은 말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당신은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범한다면 그것은 물론 당신의 남편 보디발에게도 악이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니 난 그럴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가 그러한 유혹 앞에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심령 안에 말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의 모든 순간 순간 속에서 말씀이 그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혹시 죄를 저지를 만한 상황이라고해도 그의 심비에 새겨져 있던 말씀이 즉시 그를 인도하여 그가 죄악 속에 빠지지 않도록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로운 삶을 살았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축복을 받았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자. 인간에게는 많은 욕구가 있다. 생욕,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승부욕 등등.... 이러한 욕구들은 물론 건전하게 사용하면 인간에게 약이 된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들을 잘못 분출시키면 그것은 독이 된다.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그러한 인간의 욕망들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 자신과 남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방법은 한가지다. 말씀을 심비에 새기고 사는 것이다. 말씀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가까이하는 것이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그 말씀은 우리를 지킨다. 그러므로 말씀안에서 살아가자. 간직하고 살자. 새기고 살자. 가까이하며 살자.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사용하여 복된 삶을 살자.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라이프TV

라이프 TV는 삶과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곳입니다.

,
반응형


[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 시139:1~6

제목 :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

1.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은헤를 누림.

무엇인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알아야 한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내가 농사지으려는 농작물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 언제 파종하고 언제 거두고 어떤 기후를 좋아하고 수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토양은 어떤 토양을 좋아하는지 병충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떻게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지 거름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등등....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 마음대로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 비료도 잘못 주면 농작물이 다 죽는다. 약도 잘못 치면 안된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쳐야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도 없이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믿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고, 기도와 찬양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하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잘 알고 그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고 그 방법대로 섬길 때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요17:3절에서는 말씀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 정말 바르게 알면 바르게 믿고 따르고 경배하고 영광돌리며 그 뜻대로 살게 되기 때문에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6: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자. 바르게 알자. 힘써 알자. 그래서 내 마음 내 뜻대로가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 기분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 지식과 경험과 이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섬기고 바르게 경배하고 바르게 찬양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의 은총 충만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오늘 시인은 바로 그런 점에서 위대한 찬양을 하고 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3대 속성 즉, 하나님의 전지하심, 무소부재 하심, 전능하심을 말씀하며 그 전지하심과 무소부재하심과 전능하심을 고백하며 그래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함.(1-6절)

시139:1~6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 생각을 아시고, 말을 아시고, 행동을 아신다. 그래서 내 전 인격을 아신다. 이 지식은 심히 높아서 나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우주전체를 모두 아신다. 모든 사건, 피조물, 과거, 현재, 미래, 하늘과 땅과 지옥에 있는 것까지도 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첫 번째는 하나님은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한 지식의 억분의 일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이 뭐 좀 안다고 까불지 말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 허튼 수작하지 말고 진실하게 거룩하게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리의 완전한 인도자이시라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내가 가야할 길을 아시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시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확실하게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길로 가야 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면 최상의 인생이 된다.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최상의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잘 달려가 주님의 은총 충만히 누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

2.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찬양함.(7~10절)

시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가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든, 저 음부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든 아니면 바다 저 끝에 거하든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계시며 우리를 보고 계시고 인도하시고 죄인과 의인을 찾아내시어 벌 줄 자를 벌주고 상 줄 자를 상 주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거기에 계시므로 피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큰 은혜가 된다. 인도와 보호와 구원의 은총이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소망이 있다. 얼마든지 승리 할 수 있다. 반대로 불신과 거역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책망과 훈계와 심판이다. 제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은 자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감시망을 피하려고 한다. 멀리멀리 가려고 한다. 마치 거기에 길이 있는 것처럼, 마치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 길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들의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마치 도둑이 경찰을 멀리하든, 어둠의 자식들이 대낮 대로변을 피하여 밤중에 음침한 골목길을 찾아가듯, 자기마음대로 살고 싶은 아이들이 부모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빛을 떠나 어둠속으로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다고 피할 수 없다. 도망 칠 수 없다. 어디로 가든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계신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결코 피하려하지 말고 우선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가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은혜와 기쁨과 능력을 맛보며 살게 된다. 눈동자처럼 보호함을 받게 된다. 다른 한편 하나님을 피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기억하며 피하지 말고 도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잘못한 것이 있으면 두손들고 나아오라.

그리하여 무소부재하셔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감으로 그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4.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함.(11~16절)

시139:13,14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다. 즉 하나님의 창조를 말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 중에 인간이 가장 뛰어나 피조물이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육체적으로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뛰어나다. 지적인 능력, 다양하고 예리한 감정과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 등... 그야말로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놀랍고 찬사의 찬사가 나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얼마나 존귀히 여겨야 하겠는가? 얼마나 찬양해야 하겠는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찬양하여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자.

결코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내 지식과 경험과 이성을 앞세우지 말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뭘 좀 할 수 있다고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앞에서 숨으려 하지말고 어디서든 자신을 삼가며 주의 뜻을 좇아서 살기를 힘쓰자.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와 보호와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의 풍성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라이프TV

라이프 TV는 삶과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