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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예배설교-위대한 신앙고백

 

 

 

 

제목 : 위대한 신앙고백, 찬양

말씀 : 시135:1~4

1.찬양의 은혜와 능력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는 흑인들을 위하여 인권 운동을 전개하다가 4번에 걸쳐 27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갖은 고초와 어려움을 당하다가 마침내 석방되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극심한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인권운동가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이 사람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석방이 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들이 권리를 찾게 되 다음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성대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 날 초대받은 가수들은 대부분이 인기 락 밴드와 락 가수들로써 이들이 무대에서 노래 할 때에 10만에 가까운 관중들은 무려 10시간 가까이 몸을 흔들고 괴성을 지르며 열정적인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맨 마지막 순서는 세계적인 흑인 오페라 가수인 제시 놀만이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녀는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속에 무대로 올라가더니 뜻밖에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한동안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반주도 없이 청아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즉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자 열정적인 춤을 추며 흥분에 싸여 있던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찬송을 불렀습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그러자 장내는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3절을 부를 때는 어느 샌가 사람들도 함께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그리고 드디어 찬양이 끝나자 대부분의 청중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한 기자가 다음 날 ‘웸블리 스타디움에 성령이 임하다.’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찬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찬양은 우리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찬송은 우리 마음을 살리고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찬송은 우리 심령을 은혜와 기쁨으로 채워줍니다. 찬송은 악신을 물리칩니다.(삼상16:23) 찬양은 적군을 물리칩니다.(대하20:22) 찬양은 감옥문을 엽니다.(행16:25)

뭐, 너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찬송은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과 구원과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과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걸 인정하면 찬양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찬송은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인정하고 영광을 돌릴 때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어찌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찌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열정적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오후 예배 전 찬양에 제발이지 일찍 와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집에서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중에 찬송에 정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찬양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끄떡하면 찬양하라 찬양하라 그럽니다. 시47:6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심지어 정말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사43:21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합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인도하심과 구원하심과 자비하심과 역사하심과 보호하심을 기억하며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여러분도 더욱 큰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성도의 의무인 찬양

여러분, 그렇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고, 우리 자신에게 은혜와 능력을 가져다주는 놀라운 복된 신앙의 행위이지만 그 전에 의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43:21절에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하여 지으셨기 때문에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자동차는 안전하고 빠르게 사람이나 물건을 옮겨주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는 고철에 불과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상이 보이지 않는 텔레비전은 더 이상 텔레비전이 아닙니다. 냉장고는 찬기운이 나와서 음식을 상하지 않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찬공기가 나오지 않는 냉장고는 더 이상 냉장고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었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인생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보십시오. 계속 찬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하라는 것은 명령과 권고의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찬양하라. 찬양해야 한다. 찬양함이 마땅하다. 찬양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너에게 은혜와 능력을 가져다주는 복된 일이다. 그러므로 찬양해야 한다.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찬양을 정말 성도의 마땅한 의무요 권리요 특권이요 축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의 은혜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찬양해야 하는 이유

사실 찬양해야 할 이유야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너무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도 없지만 본문에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1)여호와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다. 그 이름이 아름다우시다. 그러므로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좋은, 선한, 즐거운, 선, 이익, 번영, 복지’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에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와 번영과 유익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본성으로 인하여 찬양하고 선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져다주시는 은혜 때문에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말도 대동소이합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흉하고 밉고 사납고 뭐 이런 것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사랑과 기쁨과 은혜와 생명의 하나님이시며 나아가서는 그런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 때문에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고, 또 그런 선하고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복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선하고 아름답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니데 어찌 찬양안하겠습니까? 그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 주시는데 어찌 찬양 안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그 선하시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인하여, 그 선하고 아름다우신 그 속성 때문에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우리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여러분, 이거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이 은혜를 어떻게 다 말로 형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내가 뭔데 이런 특혜를 주신단 말입니까? 내가 누구관대 이런 은혜를 주신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니요.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니요.

대통령이 나를 점찍어도 영광인데, 국회의원이 나를 알아줘도 영광인데... 뭐 솔직히 안 그렇습니까? 내가 뭐 누구를 아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뭐 어디 있네. 무슨 별자리네. 무슨 장관이네 하면서 자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뭐 안 그런 것 같지만 솔직히 기독교인들도 그렇더라고요. 뭐 그 집안에 누가 어떻네. 하면서 자랑을 하더라고요. 하기야 뭐 그것도 조금쯤은 자랑 거리가 될지도 모르죠.

한데 우리는 누굽니까? 하나님이 나를 점찍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친 것입니다. 어인을 콱 찍은 것입니다. 너는 내거다. 너는 내 백성이다. 너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거룩한 나라다. 나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 얼마나 황송한 말씀입니까?

여러분,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나같이 부족한 것, 연약한 인생, 허물많은 인생, 죄투성이인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생각할 때에 그저 감사할 뿐이요, 그저 영광돌릴 것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아니 모든 피조물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것을 기억하며 열심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열심히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모든 근심 걱정 어둠 물리치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덧입는 최고의 능력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다른 사람에게도 큰 은혜를 끼치는 신앙의 고백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더욱 열심히 찬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도 더욱 큰 은혜와 능력과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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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 시139:1~6

제목 :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

1.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은헤를 누림.

무엇인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알아야 한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내가 농사지으려는 농작물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 언제 파종하고 언제 거두고 어떤 기후를 좋아하고 수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토양은 어떤 토양을 좋아하는지 병충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떻게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지 거름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등등....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 마음대로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 비료도 잘못 주면 농작물이 다 죽는다. 약도 잘못 치면 안된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쳐야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도 없이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믿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고, 기도와 찬양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하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잘 알고 그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고 그 방법대로 섬길 때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요17:3절에서는 말씀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 정말 바르게 알면 바르게 믿고 따르고 경배하고 영광돌리며 그 뜻대로 살게 되기 때문에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6: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자. 바르게 알자. 힘써 알자. 그래서 내 마음 내 뜻대로가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 기분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 지식과 경험과 이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섬기고 바르게 경배하고 바르게 찬양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의 은총 충만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오늘 시인은 바로 그런 점에서 위대한 찬양을 하고 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3대 속성 즉, 하나님의 전지하심, 무소부재 하심, 전능하심을 말씀하며 그 전지하심과 무소부재하심과 전능하심을 고백하며 그래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함.(1-6절)

시139:1~6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 생각을 아시고, 말을 아시고, 행동을 아신다. 그래서 내 전 인격을 아신다. 이 지식은 심히 높아서 나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우주전체를 모두 아신다. 모든 사건, 피조물, 과거, 현재, 미래, 하늘과 땅과 지옥에 있는 것까지도 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첫 번째는 하나님은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한 지식의 억분의 일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이 뭐 좀 안다고 까불지 말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 허튼 수작하지 말고 진실하게 거룩하게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리의 완전한 인도자이시라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내가 가야할 길을 아시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시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확실하게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길로 가야 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면 최상의 인생이 된다.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최상의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잘 달려가 주님의 은총 충만히 누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

2.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찬양함.(7~10절)

시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가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든, 저 음부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든 아니면 바다 저 끝에 거하든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계시며 우리를 보고 계시고 인도하시고 죄인과 의인을 찾아내시어 벌 줄 자를 벌주고 상 줄 자를 상 주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거기에 계시므로 피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큰 은혜가 된다. 인도와 보호와 구원의 은총이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소망이 있다. 얼마든지 승리 할 수 있다. 반대로 불신과 거역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책망과 훈계와 심판이다. 제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은 자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감시망을 피하려고 한다. 멀리멀리 가려고 한다. 마치 거기에 길이 있는 것처럼, 마치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 길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들의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마치 도둑이 경찰을 멀리하든, 어둠의 자식들이 대낮 대로변을 피하여 밤중에 음침한 골목길을 찾아가듯, 자기마음대로 살고 싶은 아이들이 부모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빛을 떠나 어둠속으로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다고 피할 수 없다. 도망 칠 수 없다. 어디로 가든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계신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결코 피하려하지 말고 우선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가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은혜와 기쁨과 능력을 맛보며 살게 된다. 눈동자처럼 보호함을 받게 된다. 다른 한편 하나님을 피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기억하며 피하지 말고 도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잘못한 것이 있으면 두손들고 나아오라.

그리하여 무소부재하셔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감으로 그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4.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함.(11~16절)

시139:13,14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다. 즉 하나님의 창조를 말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 중에 인간이 가장 뛰어나 피조물이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육체적으로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뛰어나다. 지적인 능력, 다양하고 예리한 감정과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 등... 그야말로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놀랍고 찬사의 찬사가 나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얼마나 존귀히 여겨야 하겠는가? 얼마나 찬양해야 하겠는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찬양하여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자.

결코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내 지식과 경험과 이성을 앞세우지 말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뭘 좀 할 수 있다고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앞에서 숨으려 하지말고 어디서든 자신을 삼가며 주의 뜻을 좇아서 살기를 힘쓰자.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와 보호와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의 풍성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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