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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성경

 

 

말씀 : 요14:6, 계22:19,19

제목 :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성경

1.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는 청빈과 겸손의 대명사인 12세기의 성자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프란체스코라는 교황 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대주교가 된 후에도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고 음식도 직접 해먹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화해 평화 용서를 강조하고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번에 방한하여 보여준 그의 행보도 여론에 집중 보도되었는데 올 때도 전용기가 아니라 전세기를 사용했고, 소형차를 이용했으며, 그가 머문 곳도 천주교의 무슨 소박한 건물을 사용하고, 작은 무개차를 타고 다니면서 가는 곳 마다 아무 격식 없이 내려가서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격려해 주었고, 특별히 장애인들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세월호 유가족들, 쌍용차 해고자들 등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심지어 언론에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라며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물론 이러한 면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만 하고 또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도 많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는 점은 충분히 동감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이 분의 방한을 계기로 다시 한번 과연 천주교가 참된 기독교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훌륭하기는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의 모습에서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가 보여주고 강조했던 것은 사랑, 용서, 화해, 평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배려, 그게 전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예수님의 사역과 목적의 핵심적인 내용인 인간의 죄와 회개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그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보는 지극히 외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제한시킴으로 예수님이 오신 참 뜻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뭔지 아십니까?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종교 즉 휴머니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으로써 철저히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즉 거기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철저히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물론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종교만이 참 생명의 종교입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종교는 인간 자체가 죄와 무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진정한 생명의 은총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종교가 자신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니까 거기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 교황이 보여준 행보는 그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종교와 전혀 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오신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고, 행하셨던 가장 핵심적인 사역은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소외받는 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문제도 해결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예수님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했던, 그래서 강조하시고 실제로 행하셨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고,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33살의 그 젊은 나이에 그 십자가의 저주받고 끔찍한 죽음을 당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려면 뭐 하러 그 젊은 나이에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오래오래 천년만년 사시면서 가난한 자, 소외당한 자, 억울한 자 찾아다니면서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격려해 주시지 왜 33살 그 젊은 나이에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지셨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4:17절을 보겠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제일 먼저 무엇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까?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21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요.” 무엇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셨습니까? 죄에서입니다. 또 요3:16도 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왜 보내셨습니까? 영생을 주시려고... 또 요10:10 하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무엇을 얻게 하려고? 생명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인간의 죄의 문제나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냥 무조건 사랑 평화 용서 화해 배려가 전부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것을 위해서 오신 것처럼, 그래서 믿음이나 회개나 이런 것들은 필요 없고 그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격려하고 돌보면 천국이라도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킴으로 도리어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와 진정한 생명을 얻는 길을 막아 버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인간적인 사랑과 평화와 화해와 용서와 위로와 소망도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 일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덧입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물론 영원한 생명을 얻고, 비로소 진정한 인간사이의 화해나 평화나 용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참된 예수님의 제자라면 인간 사이의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배려도 강조해야 되겠지만 인간의 죄의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에 앞서서 더 강조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화해, 평화, 화목, 용서, 배려 정말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이걸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이 오신 진정한 목적을 바르게 알고 사람도 사랑하고 사람 사이에도 화평을 이루며 살아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과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고 죄를 멀리 하는 삶을 통하여 먼저 하나님과 완전한 화해가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중에 이걸 모르는 분이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걸 알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생명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고 그걸 바탕으로 사람도 사랑하며 화목하며 복된 삶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또한 여러분, 제가 더욱 더 정말 교황이나 천주교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근간인 오직 예수라는 이 진리를 훼손하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방한 기간 동안 12개 종교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담화를 하고,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과 상호인정과 협력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우리 서로를 인정하고 걸어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참다운 종교지도자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습니다.

물론 여러분,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올바른 종교라면 당연히 사회를 통합하고 자유와 평화와 질서와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주는 일에는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사실은 진정한 기독교라면 타종교와의 협력과 대화와 상호존중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멈춰야지 영원한 생명의 도까지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안타깝게도 이미 그 선을 넘어갔습니다. 그는 12개의 종교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형제다. 우리 같이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야 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말하는 형제는 단순히 인간적인 수준이 아닙니다. 그들은 확실히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한마디로 종교는 다 같다는 것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는데 동서남북 어디로 올라가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비행기나 기차나 자가용이나 아무거나 타고 아무 길로 가도 서울에 도착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종교도 이름과 방법과 과정만 다를 뿐 결국 하나라는 것이지요.

천주교가 바로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이 미치광이 도올 김용옥과 마주 앉아서 종교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석탄일에 축 석탄이라는 축하 현수막을 내걸기도 합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그저 인간이 보기에 좋은 대로 생각하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본주의적 종교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요1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 행4:12절을 보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또 갈1:8절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다고 하시는데 교황이 있다는 거예요. 참람한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 속지 마십시오.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공자나 천국이나 극락이나 똑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거나 믿으면 구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꼭 믿으면 구원해 줄게 뭐 있습니까? 그냥 믿거나 말거나, 죄를 짓거나 말거나 다 구원해 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그건 니가 복음에 있는 말이고 예수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만큼은 절대로 그냥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만 믿어야 죄 용서받고 천국에 갑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불과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보면서 괜찮다 죽기는 왜 죽냐 하나님 같이 될거다 하면서 유혹하여 죽게 만든 바로 그러한 마귀의 수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와 멋있다 좋다 통크다 훌륭하다 하면서 좋아한다고 아무거나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세상의 다수가 어떤 길로 걸어가도, 오직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과 진정한 평안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교황이 하는 말이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없는 말을 제멋대로 만들어서 하고, 심지어는 성경과 반대되는 말들을 쉽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황은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회의 지도자니까 교황의 말이나 그가 쓴 글도 얼마든지 베드로나 기타 다른 사도들이 쓴 글과 동일하게 성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설령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백배를 양보해도 그러면 적어도 같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한 말씀인 성경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더더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다른 말을 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게 어떻게 성령이 주신 말씀입니까? 마귀가 준 말이지. 어떻게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는데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성경에 명명백백하게 말씀하고 있는 선한 행위로도 구원받는 길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결정적인 사건은 성 베드로대성당을 건축하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판 것입니다.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면 죄가 용서되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연옥설도 주장하는데 연옥이란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로 천국에 보내기는 자격이 미달되고, 그렇다고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닌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주장하며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면죄부를 사거나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공덕을 쌓으면 그 공덕으로 연옥에 있던 영혼들이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말입니까?

엡2:8절 보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이 말씀에 무슨 재론의 여지가 있습니까? 구원은 우리의 어떤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연옥설도 그래요. 마25:4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편에 있는 자들은 영생이고, 예수님 편에 있지 않는 자들은 영벌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과 영벌 이 두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5:12절도 보세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오직 그 심령 속에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중간 지대가 같은 것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소위 성모마리아 무흠잉태설, 성모마리아 부활승천설이라고 하여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죄가 없이 태어나 평생을 동정녀로 죄 없이 살다가 죽고 예수님처럼 부활 승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와 그 누이들이 있지 않았느냐(막6:3)고 하면 그건 친동생이 아니라 사촌 쯤 되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기도하면 안 되고 예수님의 참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마리아가 죄없이 태어나 죄없이 살다가 부활승천하였다고 하였습니까? 어디서 마리아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였습니까? 요14: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16:24절도 보십시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밖에도 고해성사나 교황무오설이나 성자 및 성상 숭배나 제사 문제나 여러 가지 미신적인 요소 등 성경과는 완전히 배치된 주장을 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계22:18,1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 다른 것을 추가하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에 있는 것을 빼 버리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빼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직 성경만이 정확무오한 유일한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누가 어떻게 말해도 속지 말고 조금이라도 가감하거나 무시하거나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오직 성경 말씀 그대로 믿고 그 말씀 따라 살아갈 때에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오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천주교의 가장 심각한 오류중의 하나는 마치 행위로도 구원받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종교다원주의적인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무 종교나 하나 골라잡아서 나름대로 어떤 절대자를 추구하며 열심히 선과 의를 쌓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판매한 것이나 연옥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면죄부를 사면 그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금하면 그 공로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엡2:8,9절 다시 보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또 빌3:9절 하반절을 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구원은 결코 행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여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가지 더 부연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번 교황의 행보를 보면서 ‘아하, 저 양반이 신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마치 구세주가 한국 땅에 오신 것처럼 언론에서 떠들고, 수많은 인파가 모여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환호했던 것처럼, 이 양반이 지나가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라도 부르듯이 ‘파파 파파’ 소리를 지르며 환영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예수님이라도 된 듯이 인자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입을 맞추고, 장애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격려하고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자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돌아보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등의 모습은 분명 칭찬받고 존경 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한편으로는 저 양반이 예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다 받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가 정말로 겸손한 분이라면 사람들이 열광할 때 그들을 제지시켜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제지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열광할 것을 유도하고 부추겼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 장면 보셨나요. 사람들이 막 환호하니까 그가 인자하게 웃으면서 이런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두 손을 가볍게 들고 아래 위로 흔들며 더 열광하라는 듯한 제스처) KBS 9시 뉴스에 이 장면이 보도되었는데 기자가 하는 말이 환호를 유도하는 여유있는 제스처라고 하면서 추켜세우더군요.

그러나 여러분, 그가 정말 겸손한 분이었더라면 ‘여러분,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소망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생명이시며 소망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그야말로 인본주의가 극에 달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주인이고 중심이고 성경도 인간 마음대로 해석하고 믿음 생활도 인간의 생각과 방법과 편리대로 하려는 시대입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본주의적 종교가 판을 치고 참 종교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종교를 참종교라고 생각하고, 그런 종교를 찾고, 그런 종교와 그런 종교지도자들에게 열광하며 거기서 희망과 위로를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종교만이 참 종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구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입니다. 거기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음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사랑과 화해도 있습니다.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일한 생명의 빛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만이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와 희망과 소망과 위로를 줍니다. 다른 것들은 도리어 우리를 이런 생명의 길에서 멀리가게 만들려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깨어 있어서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며 올바른 영성을 가지고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따라,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오 빛이신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은 물론 이 땅에서 누려야 할 진정한 생명의 은총과 평화와 자유와 소망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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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주일낮예배설교  광채나는 얼굴

 

 

 

제목 : 광채 나는 얼굴

말씀 : 전8:1

 


1.얼굴이 밝아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설교를 하려니까 좀 위축이 됩니다. 왜냐하면 ‘광채 나는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면 얼굴에 광채가 좀 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얼굴이 예수님 믿고 정말 많이 좋아진 겁니다. 옛날에 거의 그랬지만 저도 솔직히 어렸을 때에 가정이나 마을이나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서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많아 얼굴에 그늘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고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깨닫고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게 굉장히 밝아지고 좋아진 거니까 그런 줄 아시고 설교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는 밝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믿음 안에서 거듭났어도 과거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또 현재의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거듭났다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와 긍정의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도 감사와 사랑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지고 사는 모습이 밝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과 은혜와 평안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게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가 있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의 얼굴에 밝고 기쁘고 은혜로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해도 예수님을 믿고 5년 10년 20년 30년 40년 지나면 사는 모습이 환하게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6:15절을 보십시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여러분, 이때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스데반에게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씌워 산헤드린공회 법정에 세웠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때의 스데반은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끌려와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니라 그는 이 종교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실제로 돌에 맞아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법정에 앉아 있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영광의 나라를 환하게 보여주시니까 그 심령 속에 기쁨이 넘쳐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 있는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면 뭔가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근심 걱정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받고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빛과 같이 밝은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온갖 좋은 것들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로서 얼굴에 밝은 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세상의 유일한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은혜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들로 충만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 모습이 밝고 깨끗하고 희망차고 소망이 넘치게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히12:2절에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믿음의 주시오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믿음과 삶이 점점 온전케 되어 생명의 기쁨과 능력과 은혜 가운데 살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답도 멋있고 빛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자꾸 나쁜 것, 안 좋은 것, 악한 것, 부정적인 것, 어두운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바라보면 결국 부정적이고 어두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열악하고 부족하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현실만 바라보면 자꾸 불평불만만 생기고 의욕도 없어지고 그러면 인생이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늘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이미 가지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소망이 있는 그것을 바라보면 긍정적이고 밝고 활기가 있고 의욕적이고 적극적이 되어 그 삶이 점점 정오의 빛과 같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주고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물론 온 인류의 유일한 생명이며 소망이며 위로이며 희망이며 빛이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빛과 같은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요8: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 보십시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뭡니까? 모든 어둠을 밝혀주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믿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는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없이 오직 생명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만이 넘칩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현재적인 천국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긍정적이고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여기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세상 즐거움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국은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망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본래 죄와 무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요 연약한 자요 부족한 자요 허물투성이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 어떤 세상의 부귀영화도 결국은 다 썩어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돈이나 권세를 바라보면 자꾸 욕심이 생기고 그러면 결국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미움 싸움이 생기고 그래서 얼굴이 어두워지고 삶이 어두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서도 기쁘고 즐겁게 산다면 그건 마약이나 환각제나 술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감각이 무디어져서 누리는 왜곡된 기쁨이요, 순식간에 사라질 가짜 기쁨인 것입니다. 아니 그냥 가짜 기쁨만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만을 초래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목적을 두고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삼아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그 생명 기쁨 은혜 사랑 소망 위로를 사모하며 주님을 가까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진짜 참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소망과 위로 가운데 할렐루야 찬양하며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감으로 해처럼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정오의 빛과 같이 빛나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주님을 바라본다면 주님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목적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주님께 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렇게 주님을 소망과 목적으로 삼고 달려가려면 주님의 뜻을 늘 생각하며 그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목적지에 잘 도착하려면 일단은 목적지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올바른 방법과 코스로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라톤에서 승리하려면 골인지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올바른 코스를 따라 정해진 규칙대로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열심히 달려가 일찍 도착을 했어도 그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실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주님을 목표로 삼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뜻과 방법을 따라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목표만 주님으로 정해 놓고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목표지점을 향하여 잘 가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잘난 경험과 이성과 지식을 따라 왜곡된 길로 가기 십상이고 더 적극적으로는 악과 불의를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주님을 향해 가도 주님께 인정받지 못해 실격패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3:1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그러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라. 그래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과 방법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되고 그럴 때 주님을 닮아가며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그 주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돈만 생각하면 돈 따라 갑니다. 명예를 생각하면 명예 따라 갑니다. 술을 생각하고 도박을 생각하고 향락을 생각하면 결국 그걸 따라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고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면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생명의 사람, 진리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3:7절에서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렘6:19절에서는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생각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좋은 것을 생각하고, 의를 생각하고, 진리를 생각하고 거룩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식도 생각해야 하고, 부모님도 생각해야 하고, 농사일도 생각하고 연구도 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생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뜻대로 자녀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공경하고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고 농사도 짓고 사업도 하고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을 지혜롭게 성실하게 은혜 가운데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고, 그럴 때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래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얼굴에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온통 세상의 것에 집중되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깨끗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할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기 욕심을 따라 하게 되고, 시기와 질투에 빠지기 쉽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가 생기기 쉽습니다. 심지어 악을 행하고 남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빛이 나지 않고 어둠이 깔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전8:1절을 보겠습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지혜는 얼굴에 광채를 내게 한다. 사나운 것을 비롯한 모든 어두운 것을 물러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뭡니까? 지혜는 하나님이 지혜이고 그 말씀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생명이시며 빛이시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빛과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오 빛이신데 우리가 그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 인생이 어찌 밝게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그렇게 밝게 빛나는 사람은 사나운 것이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데 어떻게 사납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불평 불만하면 안됩니다. 추한 말, 악한 말, 독한 말, 모진 말을 하면 안됩니다. 자꾸 싸우려고 대들면 안됩니다. 어찌 하든지 부드러운 말, 사랑의 말, 은혜의 말, 깨끗한 말을 해야 합니다. 갈등을 유발시키지 말고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당연하잖아요.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과 빛과 은혜와 생명과 기쁨과 평안이 있는데 어찌 추하고 악하고 독하고 모질고 싸우려고 대들겠습니까? 여러분, 마5:5절을 보십시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또 마5:9절을 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정 믿음과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살아감으로 자신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남에게도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주는데 가운데 얼굴에 광채와 윤기가 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의 왜곡되고 부패한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주님의 방법을 생각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점점 주님을 닮아감으로 진실로 여러분의 심령이 밝아지고 얼굴이 밝아져 생명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세상에 빛을 비추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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