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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 예배기도문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로 그 영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베들레헴의 낮고 천한 마구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 안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참으로 죄많고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같이 불쌍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우리들 가운데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을 똑똑히 알게 하셨사오니, 우리가 그 인격을 배우게 하시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그 인격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하늘의 기쁨을 버리고 지상의 슬픔을 택하셨습니다.

영원토록 죄와 상관없으신 예수님이 예수님이 그것을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죄를 지시는 일과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동네의 더러운 마굿간에서, 비천한 식민지 여인에게서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애굽의 피난민의 아이가 되셨습니다.어부들과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던 우리 주님의 자비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그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고, 침뱉고,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도 주님은 저들의 죄사함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철저히 낮은 곳에 임하셨는데 오늘도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저희의 교만을 용서하옵소서. 주님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셨는데 오늘도 자기를 내세우고 인정받기 원하는 저희를 용서하옵소서. 주님은 철저히 섬기셨는데 오늘도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저희를 용서하옵소서.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예구님처럼 섬기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오심이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에게는 평화를 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옵소서.세상 사람들은 이날에 술마시고취하며 흥청망청 자신들의 쾌락을 즐깁니다 우리도 명절과 축제에즐거움에 휩싸여서 당신이 오신 날의 참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이날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정말로 기뻐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전하게 하옵소서.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이 이날의 주인공이 아니라 온 일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예수가 이날의 주인공임을 바로 전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던 그 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그 기쁨의 소식을 먼저 듣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주님 우리도 자기의 맏은 직분과 역할을 충실이 감당하면서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기쁜 의 날을 고대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우리를 주님의 도구로 삼아주시옵소서

아직도 성탄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게 하옵소서.
지금 이 순간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배고파 굶주리는 사람들과 마음의 상처받아 아파하는 사람들을 주님 위로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먼저 찾아가게 하옵소서.
사랑의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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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 대표 기도문 


가장 완전한 사랑의 화신으로 태어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2천여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 세상은 지금까지 주님의 나심을 축하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에는 성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온 인류는 서로 마주보며 한 가족 한 형제 된 것을 기쁨으로 감사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깊을 수 록 빛을 간절히 사모하듯이 불의 폭력 미움과 욕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갈등하며 방황하며 빛 되신 예수님이 오심을 사모합니다. 아니 이미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우리 마음속에 모셔 들이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제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이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모든 것을 배우게 하옵소서. 겸손 자체이신 주님의 겸손을 배우게 하옵소서.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그 사랑을 닮기 원합니다.

 우리의 귀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입이 열려 진심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희망을 안고서 오신 주님의 그 빛나는 희망이 오늘 절망하는 이들에게 들리게 하시고, 오늘 울고 있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 위에 아름다운 위로로 임하옵소서.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들로 주님 앞에 드리게 하옵소서. 말로써만이 아니라 겸허하게 익어가는 사라의 갊으로써 온 세사에 주님 오심을 증거 하게 하옵소서.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시간도 말씀으로 은혜받기를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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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사
청교도의 신앙  영국 청교도와 장로정치

 

 

 
제10장 2차 대각성 운동과(선교운동) 프런티어 운동

 

1) 제2차 각성운동과 장로교회

독립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도덕적 타락을 겪음. 이 때 미국인들을 치료하는 운동이 프런티어 운동과 함께 일어난 제2차 대각성운동이다.

 

2) 교회연합 운동과 장로교회

대각성은 다른 교단들과의 연합운동을 통해 일어나게 되었다. 19세기 초반 미국 장로교도들은 미국에 개혁주의 신앙을 토착화시키기 위해 개혁주의적이고 복음적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들과 교제하는 것을 장려 - 1801년 장로교 총회가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를 통합할 계획을 세우면서 가속화됨 --> 통합계획은 복음전도를 위한 전략으로, 당시 사람들이 서남부로 이민 - 변방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연합사업 요청.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는 모두 칼빈주의적 교리를 고백하고 예배형식도 동일.
* 죠나단 에드워즈 2세는 두 교단을 통합. 연합활동으로 많은 이들이 장로교로 돌아옴.

 

3) 프런티어 운동과 장로교회

특히 장로교회의 부흥운동은 프런티어 지역에서 크게 일어남. 이 시기는 계몽주의와 자연신교, 경건주의 신학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 이 때 아치발드 알렉산더, 존 홀트 라이스, 제임스 맥그리디에 의해 1798년과 1801년 사이에 프론티어 지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남.
* 제임스 맥그리디 - 1799년 켄터키의 호겐에서 그의 성도들에게 일주일에 한시간, 한 달에 하루를 기도할 것을 설교. 기도의 결과 큰 부흥. 부흥운동의 특징은 캠프 미팅으로 통나무 강단과 통나무 의자를 사용하여 천막 안에서 자면서 집회. 이 결과 주일학교 운동, 내지와 외지 '선교운동'이 일어남. 계몽주의, 합리주의는 영향력 상실.

이러한 부흥운동은 교세확장의 전환점이 됨. 장로교회와 회중교회에서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으나 파송할 목회자의 절대 부족, 반면에 감리교회와 침례교회는 교회조직과 목회자 교육에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개척자들을 따라가며 교회를 세움.

 

* 컴버랜드 장로교회의 분리운동 -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에 자극 받은 사람들이 장로교회를 확장하기 위해 목사의 수준을 낮추어 수급을 원활히 할 것을 제안, 2차 각성운동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지식을 따를 때 일어난 것으므로 분쟁만 야기하는 교리적 논쟁을 지양할 것을 주장.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근거한 미국 장로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 교리를 배척하려는 시도를 보임.

** 분리운동에도 불구하고 교회연합과 대각성 운동의 결과 1800년에는 180명이던 목사의 수가 2,140명으로, 449개의 교회가 1,695개의 교회로, 2만명의 교인이 22만명으로 성장. 부흥운동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선교운동으로 발전.

 

* 사무엘 밀즈 - 1806년 사무엘 밀즈와 윌리엄스 대학 학생들의 선교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는 '건초더미의 서약'이 있었다. 그들은 선교에 헌신한 후에 '형제들의 선교회'를 조직. 외국 선교활동은 지원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라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1810년 '미국 해외 선교부'가 생김. 1812년 아도니람 저드슨 부부는 버마로, 루터 라이스는 아시아로 선교를 떠남 --->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장로교회 안에도 선교운동이 일어나게 됨. 1789년까지 건초더미의 서약의 영향으로 5개 이상의 선교부가 미국에 생기게 됨. 밀즈의 선교지 연구.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주일학교 생김. 미국에 소책자 협의회가 조직되어 기독교 소개, 장로교인들의 능동적 참여.

1812년 3명의 학생으로 프린스톤 신학교가 뉴저지에 설립. 초대교수는 아치발드 알렉산더, 세무엘 밀러. 나중에 찰스 핫지 / 부흥운동을 힘입어 장로교 계통의 신학교들이 세워짐. 1818년 어번 신학교, 1823년 버지니아의 유니온 신학교, 1827년 웨스턴 신학교, 1828년 컬럼비아 신학교, 1829년 레인 신학교, 1830년 매코믹 신학교, 1836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

 

 

 

제11장 남북전쟁과 진보파와 보수파의 대결(도전 받는 장로교회)


1830년대의 장로교도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흑인 문제. 흑인 노예 해방문제는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에 의해 멀리 번짐.
* 피니 - 변호사, 1821년 개종. 1830-31년에 걸쳐 뉴욕주의 로체스터에서 큰 부흥운동을 일으킴. 인위적, 갈망석을 둠. 회심 없는 부흥은 마귀의 집회, 회심 체험 강조. "어떻게 하면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는 설교를 하는가?"(랠프 왈도 에머슨의 합리주의적 설교를 꼬집음) 피니는 노예해방을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
* 죠지 번 - 피니의 노예해방 주장을 계승. 영국 태생, 버지니아의 렉싱톤 노회에서 안수받음. 설교를 통해 노예제도의 그릇됨을 주장.


노예문제로 사회가 혼란하게 되자 교회는 입장 표명.
1787년 뉴욕 필라델피아 대회 = 회원들의 유익과 사회적 상황에 맞추어 사용할 것을 권고, 1818년 장로교 총회 = 어느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모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도 반대된다. 문제가 심각하게 되자 1836년 총회는 이 모든 문제를 무기한 연기. 1860년대 교회 안에는 북부 중심의 즉각적인 노예폐지론과 노예제도는 성경적이라는 남부 중심으로 나뉨.


노예문제, 신학적인 문제와 선교정책의 차이는 장로교회를 혼돈 가운데로 몰아넣음.
1) 자유주의 신학의 일어남
유니온 계획에 의해 회중교회 출신의 목사들이 장로교세 확장에는 공헌했으나 상호간의 신학적 차이는 교회를 혼란으로 인도함. 스코트-아일랜드 장로교회 츨신의 목사를 중심한 보수파(Old School)는 회중교회 출신 목사를 중심한 진보파(New School)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

(1) 칼빈주의 대신 자유로운 신학적 입장을 취함 - 교회조직, 관리, 선교활동에 있어 다른 입장.

(2) 특히 선교활동에 있어 재정관리문제가 심각. 보수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철저하게 따를 것과 모든 선교활동을 교단 직영으로 운영할 것을 주장.

(3) 노예문제가 교회분열을 심화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논의를 꺼림. 그러나 진보파들은 통합 계획에 대해 만족, 신학적 관용을 주장, 선교활동을 초교파적으로 시행, 노예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


2)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장로교도들의 반응
시간이 흐르면서 두 세력의 간격은 더욱 멀어짐.
1831년 피츠버그대회가 서부 해외 선교부를 조직하자 보수파는 1837년 장로교 해외 선교부를 조직해 서부 선교부 기금과 사업을 자신들의 관할 아래 두려 했다.
1835년 보수파는 교회를 순회하며 불건전한 교리의 보급과 신앙적 방종을 경고. [행위와 증거]란 소책자를 교회에 보급.
1837년에 이르러 보수파는 장로교회 안에서 5/9 이상의 다수가 되자 (1) 통합 계획을 폐지, (2) 통합계획에 의해 조직된 4개의 노회, 웨스턴 리저브 노회, 위티카 노회, 제네바 노회, 제니시 노회는 장로교 노회에 소속될 수 없다고 선언 - 진보파를 장로교회에서 제거함을 의미. 보수파는 남부와 북동부 지역을, 진보파는 북부지역을 차지하게 됨 - 이러한 교회의 분열은 미국 사회를 지리적으로 양분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두 교회의 적대감은 남북 전쟁의 원인을 제공.


노예문제로 시작된 장로교회의 분열은 다른 교회에게도 영향을 미쳐 1844년 침례교회가 남북으로 1845년감리교회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진보파의 장로교회 총회는 노예제도를 정죄하는 결의를 통과시킴. 남부의 소수 진보파는 북부에서 이탈하여 '연합남부 대회'를 조직.
* 가드너 스프링스 목사 - 보수파는 노예제도 인정하는 입장. 1861년 뉴욕에서 가드너 스프링스 목사가 노예폐지론을 들고 나오면서 분열운동이 가속화됨. 그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장로교회를 하나로 하기 위해서는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 가드너 스프링스의 제안은 총회에서 156대 65로 채택. 그러나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남부의 장로교회는 보수파에서 이탈하여 1861년 '미연방장로교회'를 조직(벤자민 팔마, 쏜 웰의 지도아래 아틀랜타의 아우구스타에 총회 - 결국 노예문제로 장로교회는 4조각으로 나뉨).


남북전쟁이 끝나고 1870년부터 화해의 무드 속에서 북부의 진보파, 보수파 모두 노예문제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어 북부의 진보파 교회와 보수파 교회는 1870년 합동 '미국 장로교회'를 조직(남부는 합동에 반대). 재결합된 북부 장로교회는 크게 부흥 -->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로 만듬.


19세기는 신학적인 격변의 시기
*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 미국 장로교 신학자들에게 받아 들여짐.
* 제임스 우드로우 - 성경을 진화론에 입각하여 해석하려 함.
* 찰스 브릭스 - 성경의 고등비평 사상을 미국 교회에 소개. 총회의 정죄 - 성경의 축자 영감과 무오성 선언.

제12장 20세기 장로교회(근본주의 운동과 장로교회)


20세기 전야에 미국을 특징지은 사건들
(1) 부흥운동
* 제레미야 랑페에 - 1857-1858년에 기도운동이 일어남. 1857년 6명의 동지와 기도 시작, 6개월 뒤 10,000명이 기도에 참석, 뉴욕 근처에 50만-100만명이 기독교로 돌아옴.
* D.L.Moody - 이러한 기도운동은 무디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됨. 구두 수선공이었으나 은혜를 받은 후 벤쿠버의 브리티시 아일랜드에서 부흥운동 시작, 1873-1875년 사이 시카코의 복음화를 주도, 대중집회운동 전개, 찬송과 기도 회개운동이 일어남.
* 르우벤 토리, 집시 스미스, 빌리 샌디, 빌리 그래함 - 무디의 전도운동을 계승.
(2) 사회개혁 운동 : 19세기 말의 복음주의 운동은 노예폐지 운동과 금주와 같은 사회개혁운동으로 나가게 됨. 남북전쟁으로 음주문화가 만연할 때 금주운동과 절제운동, 1895년 살롱 폐지 협의체 조직.
(3) 자유주의 운동 : 1903년 북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 - 역사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입장을 떠났음을 보여줌. 이후 북장로교회는 컴버랜드 장로교회와 합동.
(4) 근본주의 운동 :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이 심해지자 신앙옹호를 위한 노력이 교회 안에서 일어남. 현대주의의 위협, 기본적 교리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별로 근본주의자들은 모임을 가짐. 1909년 [근본적인 것들 - 진리의 증언]이란 책자가 나옴. 근본원리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 성경의 무오성, 대속적 속죄, 그리스도의 임박한 육체적 재림이었다.
그러나 이 입장에 서있던 근본주의자들은 전천년설 만을 바른 신앙이라 주장 - 다른 근본주의자들은 설 땅이 없게 됨.
 

1920년대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재구성 - 교과과정이 구시대적, 실천신학은 없고, 성서에 대한 연구도 없고, 성서비판만 강조. 교수 가운데 사변적 독일 신학에 심취한 자, 이단자들이 다수. 프린스턴은 새로운 교장을 새움으로 개혁하려 했으나 실천신학 교수였던 스티븐슨은 직무를 감당할 때 너무 독단적 학사 운영으로 많은 문제. 복음주의적이지 개혁주의가 아니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레샴 메이첸이 변증학 교수로 자리에 오르게 됨. 자유적인 총회는 스티븐슨을 지지하여 메이첸에게 압력을 가해 프린스턴을 떠나게 함.

 

* 그레샴 메이첸 - 프린스턴을 떠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움. 그는 C.R.C. 계통에서 교리적인 신학자를 영입하고, O.P.C. 교단을 만들었다. 메이첸이 웨스트민스터를 세울 때까지만 해도 보수적인 많은 교회들이 그를 지지하였으나 천년왕국설로 인한 교회의 분열은 보수신앙에 대한 불신을 초래. 1930년대의 웨스트민스터는 근본주의 신학의 중심지. 그러나 필라델피아 근본주의 협의회가 웨스트민스터를 비난하고 전천년설을 공식적 교리로 채택하고, 훼이스 신학교를 세워 나감으로 보수세력은 약화되었다. 천년왕국 논쟁으로 근본주의자들은 분리주의자로 인정되어 많은 이들이 자유주의 교회로 떠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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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유래  / 배현주 목사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여러 종교가 난립해 있고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러한 형태의 믿음이 일반 사람들 사이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의 유래를 설명하여 주는 것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데 매우 긴요한 방식이 된다.

일반 사람들의 사고를 유추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지금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여러 종교가 있는데 왜 하필 기독교인가?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의 필요성에 대하여서 공감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일 수록 기독교의 유래를 드러내는 것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가를 알게 되며 이미 기독교인들 조차도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어야 하는가?

그 영광된 참여에 대하여서 감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유래에 직접적인 역사적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독교의 유래는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노아는 선사 시대 마지막 인물이면서 역사 시대 최초의 인물이다.

노아 홍수를 분깃점으로 인류 역사는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노아는 선사 시대에 마지막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의 세 아들과 함께 기나긴 세월 노아의 방주를 건조하였다.

어느 누구도 노아의 행위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노아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지 않았다.

노아 이전의 세대의 수몰은 예고된 것이었다.

노아는 그 세대를 정죄하고 의의 후손이 되었다.

노아의 선조들 중에서 알려진 분들이 있다.

그것은 무드셀라와 에녹이다.

특히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다.

노아의 승천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예표한다.

아담-하와 - 셋 - 므드셀라 - 에녹 - 노아로 이어지는 선사 시대 경건한 혈통들은 선사시대에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점차로 그 수가 줄어 들어서 노아 시대에 오면 노아와 그 세 아들과 아내들와 자부들만 남았다.

그렇게 선사 시대를 닫고 역사 시대를 열었던 노아는 역사 시대에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

노아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독교로부터 파생된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근동의 문화 유적들을 통하여서 밝히 드러난 여러 다양한 형태의 미신적인 종교들은 모두 기독교로부터 분화되면서 왜곡 변질되어서 타락한 종교들이다.

마르둑 신화나 고대 애굽의 자연 숭배 사상이나 고대 그리스의 신화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지방으로부터 동방으로 더 멀리는 인도 지방까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인류는 자연에 순응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을 신격화하는 자연 숭배 사상이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았다.

때로는 그것이 일월성신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자연에 거니는 동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혹은 산이나 나무나 여러 가지 자연의 형상들이 신으로 탈바꿈해서 숭배되었다.

이것이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으로 고대 신화에서 등장한다.

조상 숭배 사상도 그러한 맥락과 멀지 않다.

고대 애굽에도 조상 숭배 사상이있었다.

결코 동아시아의 유전이 아니다.

이렇게 고대 사회는 노아 홍수 이후에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 한 없이 초라한 인간들의 위축된 상태로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현상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모두 노아의 자손들로부터 퍼지면서 다양하게 분화된 자연 종교들이다.

이러한 자연 종교는 계시 종교의 몰락과 함께 왔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이후에 셈족을 축복하셨다. 왜냐하면 셈족으로부터 온 인류의 메시아가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메시아의 도래 이전에 한 민족을 선택하셨다.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족속이다.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와 아브라함 사이에 계시 종교는 점차로 사라지고 광대한 자연 앞에 한 없이 연약해진 인간들의 종교성이 자연 숭배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결국 고대 모든 종교들은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러나 계시 종교로서 기독교를 온전하게 보존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기독교 모습으로부터 부터 조금씩 조금씩 탈바꿈하면서 각 지역의 특생과 문화적 발생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종교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고대 근동에 신화가 형성이 되고 고대 애굽에 애굽의 종교가 구축되었을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매우 특이한 결과를 가져왔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왔을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다.

이미 인생을 마감하고 정리해아할 나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백세에 죽은자와 방불한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

그리고 그의 백이십세 즈음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침으로서 그가 참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시고 나서 여호와 이레를 통하여서 어린양을 예비하시고 그 어린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고 아들 이삭과 함께 하산하였다.

이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았던 그 특 별 계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놀라운 계시였다.

노아 시대에 노아가 받은 자연 언약과는 좀더 차원을 달리하는 더욱 진전된 계시의 발생이었다.

그것은 은혜 언약이었다.

노아의 자연 언약 아래에서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었던 은혜 언약은 아브라함 시대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는 은혜 언약의 체결 과정은 창세기 15장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고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에서 그의 택자들을 세우시고 이방 나라를 각자 자신들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등장 이전에 각지로 흩어지는 열방들의 역사는 이제 새 언약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에 다시 모일 것을 내다보는 형태의 분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분산시키시고 오직 아브라함의 가계를 선택하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비하셨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은혜 언약을 보존하는 족속으로 선택 받았다.

히브리인들은 특별 계시를 보존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들의 역사 전체가 특별 계시의 역사이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구속사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하여서 전개되어 가는 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중요하다.

구약은 기독교 이전의 기독교 역사를 드러낸다.

비록 새 언약 가운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는 본격적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이미 그 전에 기독교 역사는 율법 시대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핵심이시다.

결국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통하여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여러 선지자들의 선포를 통하여서 예시되었던 기독교의 실체이시며 그가 기독교 자체이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교리를 통하여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때 구약 시대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이 멀리서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던 그 약속의 성취가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약속된 메시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구약 교회는 서둘러 폐쇄되었다.

역사속에 그 의의가 사라졌다.

예루살렘 성전도 훼파되었고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유리 방황하게되었다.

실정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으라로 외쳤던 그들의 죄는 고스란히 그들의 민족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도들의 디다케를 따라서 세워진 새 언약의 거룩한 보편 교회는 전혀 유대 왕국과 다른 길을 걸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명령하신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각지에 거룩한 보편 교회를 세웠다.

사도들의 디다케를 일치된 사도적 정통 교회는 이방인들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새 언약의 교회로서 구성되어서 전개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은 사라지고 새 언약의 교회는 확장되었다.

주후 313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될 정도로 로마 제국 깊숙히 자리잡은 중추적 종교가 되었다.

비록 당대 로마 제국의 여러 풍습과 결합해서 크리스 마스와 이스터 날이라는 세속화된 교회 전통이 세워지면서 그것으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달리보려는 오래된 전통이 되었을지라도 항상 기독교 본체는 사도적 디다케에 굳게 서 있다.

그러므로 일반 신자들이 기독교를 이해할 때에 항상 취해야할 자세는 이러하다.

세속사와 같이 엮여 오면서 세속화된 기독교의 어두운 면과 함께 사도 시대 이후에 항상 변하지는 않는 진리의 체계로서 정통 교리이다.

기독교의 실체는 정통 교리에 있다.

다만 세속화된 기독교는 인간의 연약함과 시대적 거대한 물결과 함께 외형적으로 매우 변형된 기독교이다.

그곳에는 기독교 본질이 없다.

그러나 많은 일반 사람들은 이 기독교 외형을 보고 기독교를 판단하려는 얄팍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살펴 보면 기독교는 전 인류를 향하여서 구원의 손을 넓게 벌리고 있는 구원의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중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 모두를 위해서 죽으셨다.

왜 지금 기독교가 거의 몰락 직전이라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 구정물 안에는 고귀한 한 아이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미 주전 8세기 증거하였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네. 그 어깨에 정사를 매었네 그 이름 기묘자 그 이름 모사 전능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심이라"(사 9)

그 좋으신 주님께서 항상 여전히 거룩한 보편 교회의 왕으로서 계신다.

그 인자가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로 목자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거룩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이다.

왜 열방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야 하는가?

생명의 주님이 얼마든지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인생들은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그가 우리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럴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의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죄의 심각성은 도처에서 지금 가련한 그리고 한심한 인생들의 모습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만약 이 세상이 죄가 없어진다면 모두 잘 사는 유토피아가 올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능력을 따라서 분배적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어느 누구도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면서 우월감이나 자괴심에 빠지지 않는 나라가 된다.

많이 가진자는 자신이 처한 삶 가운데 끊임없이 나누어줌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적게 가진자는 하나님의 분배적 은혜에 감사하며 많이 가진자가 부럽지도 않다.

오직 각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의향과 뜻을따라서 각자의 역량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며 은혜 가 충만한 공동체가 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가 오는 것이다.

매우 평등적 사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들에게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죄가 매우 무섭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인생들 각자가 인식조차 못하는 죄악들이 그들의 몸 안에서 여기 저기 움직이며 인간의 몸을 더럽히고 탐욕에 쩌들어 살게 하면 다투고 싸우고 소란스럽고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자랑하며 교만하고 우매하고 거짓되다.

죄만 없어지면 가능한 이 세상의 유토피아는 죄 때문에 불가능하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인들을 위하여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죽으셨다.

참으로 복된 삶이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그의 종들을 보내시고 계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목자장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최고의 선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들에 불과하다.

많은 자본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하나님 나라를 단 한 걸음도 앞당기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한 죄인이 믿음으로 성취하는 구주가 머리되신 영광의 나라이다.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와아야 할 이유가 수백가지는 된다.

그 좋으신 주 하나님을 찬송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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