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독교의 유래  / 배현주 목사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여러 종교가 난립해 있고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러한 형태의 믿음이 일반 사람들 사이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의 유래를 설명하여 주는 것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데 매우 긴요한 방식이 된다.

일반 사람들의 사고를 유추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지금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여러 종교가 있는데 왜 하필 기독교인가?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의 필요성에 대하여서 공감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일 수록 기독교의 유래를 드러내는 것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가를 알게 되며 이미 기독교인들 조차도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어야 하는가?

그 영광된 참여에 대하여서 감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유래에 직접적인 역사적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독교의 유래는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노아는 선사 시대 마지막 인물이면서 역사 시대 최초의 인물이다.

노아 홍수를 분깃점으로 인류 역사는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노아는 선사 시대에 마지막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의 세 아들과 함께 기나긴 세월 노아의 방주를 건조하였다.

어느 누구도 노아의 행위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노아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지 않았다.

노아 이전의 세대의 수몰은 예고된 것이었다.

노아는 그 세대를 정죄하고 의의 후손이 되었다.

노아의 선조들 중에서 알려진 분들이 있다.

그것은 무드셀라와 에녹이다.

특히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다.

노아의 승천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예표한다.

아담-하와 - 셋 - 므드셀라 - 에녹 - 노아로 이어지는 선사 시대 경건한 혈통들은 선사시대에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점차로 그 수가 줄어 들어서 노아 시대에 오면 노아와 그 세 아들과 아내들와 자부들만 남았다.

그렇게 선사 시대를 닫고 역사 시대를 열었던 노아는 역사 시대에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

노아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독교로부터 파생된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근동의 문화 유적들을 통하여서 밝히 드러난 여러 다양한 형태의 미신적인 종교들은 모두 기독교로부터 분화되면서 왜곡 변질되어서 타락한 종교들이다.

마르둑 신화나 고대 애굽의 자연 숭배 사상이나 고대 그리스의 신화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지방으로부터 동방으로 더 멀리는 인도 지방까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인류는 자연에 순응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을 신격화하는 자연 숭배 사상이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았다.

때로는 그것이 일월성신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자연에 거니는 동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혹은 산이나 나무나 여러 가지 자연의 형상들이 신으로 탈바꿈해서 숭배되었다.

이것이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으로 고대 신화에서 등장한다.

조상 숭배 사상도 그러한 맥락과 멀지 않다.

고대 애굽에도 조상 숭배 사상이있었다.

결코 동아시아의 유전이 아니다.

이렇게 고대 사회는 노아 홍수 이후에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 한 없이 초라한 인간들의 위축된 상태로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현상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모두 노아의 자손들로부터 퍼지면서 다양하게 분화된 자연 종교들이다.

이러한 자연 종교는 계시 종교의 몰락과 함께 왔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이후에 셈족을 축복하셨다. 왜냐하면 셈족으로부터 온 인류의 메시아가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메시아의 도래 이전에 한 민족을 선택하셨다.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족속이다.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와 아브라함 사이에 계시 종교는 점차로 사라지고 광대한 자연 앞에 한 없이 연약해진 인간들의 종교성이 자연 숭배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결국 고대 모든 종교들은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러나 계시 종교로서 기독교를 온전하게 보존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기독교 모습으로부터 부터 조금씩 조금씩 탈바꿈하면서 각 지역의 특생과 문화적 발생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종교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고대 근동에 신화가 형성이 되고 고대 애굽에 애굽의 종교가 구축되었을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매우 특이한 결과를 가져왔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왔을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다.

이미 인생을 마감하고 정리해아할 나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백세에 죽은자와 방불한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

그리고 그의 백이십세 즈음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침으로서 그가 참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시고 나서 여호와 이레를 통하여서 어린양을 예비하시고 그 어린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고 아들 이삭과 함께 하산하였다.

이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았던 그 특 별 계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놀라운 계시였다.

노아 시대에 노아가 받은 자연 언약과는 좀더 차원을 달리하는 더욱 진전된 계시의 발생이었다.

그것은 은혜 언약이었다.

노아의 자연 언약 아래에서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었던 은혜 언약은 아브라함 시대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는 은혜 언약의 체결 과정은 창세기 15장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고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에서 그의 택자들을 세우시고 이방 나라를 각자 자신들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등장 이전에 각지로 흩어지는 열방들의 역사는 이제 새 언약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에 다시 모일 것을 내다보는 형태의 분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분산시키시고 오직 아브라함의 가계를 선택하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비하셨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은혜 언약을 보존하는 족속으로 선택 받았다.

히브리인들은 특별 계시를 보존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들의 역사 전체가 특별 계시의 역사이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구속사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하여서 전개되어 가는 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중요하다.

구약은 기독교 이전의 기독교 역사를 드러낸다.

비록 새 언약 가운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는 본격적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이미 그 전에 기독교 역사는 율법 시대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핵심이시다.

결국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통하여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여러 선지자들의 선포를 통하여서 예시되었던 기독교의 실체이시며 그가 기독교 자체이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교리를 통하여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때 구약 시대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이 멀리서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던 그 약속의 성취가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약속된 메시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구약 교회는 서둘러 폐쇄되었다.

역사속에 그 의의가 사라졌다.

예루살렘 성전도 훼파되었고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유리 방황하게되었다.

실정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으라로 외쳤던 그들의 죄는 고스란히 그들의 민족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도들의 디다케를 따라서 세워진 새 언약의 거룩한 보편 교회는 전혀 유대 왕국과 다른 길을 걸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명령하신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각지에 거룩한 보편 교회를 세웠다.

사도들의 디다케를 일치된 사도적 정통 교회는 이방인들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새 언약의 교회로서 구성되어서 전개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은 사라지고 새 언약의 교회는 확장되었다.

주후 313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될 정도로 로마 제국 깊숙히 자리잡은 중추적 종교가 되었다.

비록 당대 로마 제국의 여러 풍습과 결합해서 크리스 마스와 이스터 날이라는 세속화된 교회 전통이 세워지면서 그것으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달리보려는 오래된 전통이 되었을지라도 항상 기독교 본체는 사도적 디다케에 굳게 서 있다.

그러므로 일반 신자들이 기독교를 이해할 때에 항상 취해야할 자세는 이러하다.

세속사와 같이 엮여 오면서 세속화된 기독교의 어두운 면과 함께 사도 시대 이후에 항상 변하지는 않는 진리의 체계로서 정통 교리이다.

기독교의 실체는 정통 교리에 있다.

다만 세속화된 기독교는 인간의 연약함과 시대적 거대한 물결과 함께 외형적으로 매우 변형된 기독교이다.

그곳에는 기독교 본질이 없다.

그러나 많은 일반 사람들은 이 기독교 외형을 보고 기독교를 판단하려는 얄팍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살펴 보면 기독교는 전 인류를 향하여서 구원의 손을 넓게 벌리고 있는 구원의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중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 모두를 위해서 죽으셨다.

왜 지금 기독교가 거의 몰락 직전이라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 구정물 안에는 고귀한 한 아이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미 주전 8세기 증거하였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네. 그 어깨에 정사를 매었네 그 이름 기묘자 그 이름 모사 전능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심이라"(사 9)

그 좋으신 주님께서 항상 여전히 거룩한 보편 교회의 왕으로서 계신다.

그 인자가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로 목자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거룩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이다.

왜 열방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야 하는가?

생명의 주님이 얼마든지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인생들은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그가 우리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럴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의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죄의 심각성은 도처에서 지금 가련한 그리고 한심한 인생들의 모습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만약 이 세상이 죄가 없어진다면 모두 잘 사는 유토피아가 올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능력을 따라서 분배적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어느 누구도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면서 우월감이나 자괴심에 빠지지 않는 나라가 된다.

많이 가진자는 자신이 처한 삶 가운데 끊임없이 나누어줌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적게 가진자는 하나님의 분배적 은혜에 감사하며 많이 가진자가 부럽지도 않다.

오직 각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의향과 뜻을따라서 각자의 역량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며 은혜 가 충만한 공동체가 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가 오는 것이다.

매우 평등적 사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들에게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죄가 매우 무섭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인생들 각자가 인식조차 못하는 죄악들이 그들의 몸 안에서 여기 저기 움직이며 인간의 몸을 더럽히고 탐욕에 쩌들어 살게 하면 다투고 싸우고 소란스럽고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자랑하며 교만하고 우매하고 거짓되다.

죄만 없어지면 가능한 이 세상의 유토피아는 죄 때문에 불가능하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인들을 위하여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죽으셨다.

참으로 복된 삶이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그의 종들을 보내시고 계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목자장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최고의 선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들에 불과하다.

많은 자본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하나님 나라를 단 한 걸음도 앞당기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한 죄인이 믿음으로 성취하는 구주가 머리되신 영광의 나라이다.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와아야 할 이유가 수백가지는 된다.

그 좋으신 주 하나님을 찬송할지라..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라이프TV

라이프 TV는 삶과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