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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순교자 한경희 목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행 20 : 35-34)

 

 한경희 목사는 1881년 평북 용천 출신으로 191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전도에 헌신하였다.

총회 파송 북만주 선교사로 부임한 한 목사는, 1935넌 1월 1일 위험한 호림현 지방 전도순방 길을 출발하여 무림 교회에서 설교하고, 김창근 씨 등 재직 4인과 함께 설차(눈썰매)를 타고 오소리 강변 요하현으로 전진하다가 1월 4일 공산 비적에게 잡힌바 되었다.

 

북만주 사정을 잘 아는 이학인 목사는 호림지구의 전도가 위험함을 말하여 진출을 극구 만류하였으나, 한 목사는 "만주 순교는 나의 소원이라" 고 말하며 떠났던 것이다.

 

한 목사 일행을 붙잡은 공비 중에서 중국인 공비는 돈 천 원을 요구했으나, 조선인 공산당원은 목사인 것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한 목사를 총살하여 얼어붙은 강을 깨고 얼음물 속에 그 시신을 넣었다.

 

그 때 일행 중 유일한 생존자 이낙섭 씨는 말하기를 한 목사님은 "오- 주여, 이 작은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세 번 외치고 순교의 제물이 되셨다고 한다.
 
 양을 찾는 선한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온갖 역경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목사의 진실한 목자적인 자세는 박해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도는 모름지기 가정이나 사회에서 맞이하게 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어려움, 나아가서는 가능한 박해의 상황에 대처하여 굳은 신앙의 자세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김인서, 저작전집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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