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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3-35 
홍 기 
창조주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들 가인에게 처음으로 물으신 질문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을 심판대 앞에 세우시고 물으 
시는 질문 역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행한 것들 
을 기준으로 상과 벌을 내리신다. 그 뿐만 아니라 매 순간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 
문은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다. 하나님께서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계 
시는 이유는 우리를 참된 신앙의 소유자로 세우시려는데 있다. 우리 신앙인들이 매 순간 
마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어떤 대답을 준비하 
며 사느냐에 따라 ‘참된 신앙인’인가의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질문을 생활 속에서 들을 수 있는가? 모래 시계를 보듯이 자신 
의 날을 계수하며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날을 계수하는 사람이다.(시90:12) 우리는 우리 인 
생의 모래 시계를 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리 인생의 없어진 시간과 아직 남 
은 시간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기회는 아직 남은 시간들이다. 남은 
시간을 아름답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채우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의 소유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다. 우리가 남은 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채우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를 열고 “지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 
문을 듣고, 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적인 귀를 열고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네 
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자. 성공한 인생, 
복된 인생은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마다 “네가 무 
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며 사는 사 
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네가 무엇 
을 하였느냐?라는 질문을 듣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도 이 질문을 듣는 귀를 열고, 나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살되, 하루 하루를 
뜻있고 가치있게 살자. 거기에 하늘의 상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 가득한 
인생의 소유자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제주남원 

따라가라 그리하면 응답을 받으리라 
마 15:21-28 
김삼환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로 와서 애원을 합 
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 어머니 
는 자신의 딸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딸에게 들어간 흉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없 
었기에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님은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냉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갈기갈기 찢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개 취급을 받았던 이 여인이 주님에게 이런 엄청난 모욕과 저주를 받을 때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고침을 받는 길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애청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 
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여인 
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여자야 너의 믿음이 그렇게 클 수가 없구나. 너는 네 딸과 함 
께 행복하게 살 것이고 오늘 이 시간부터 네 딸에게 역사 하는 더러운 귀신은 나갈 것이 
니라.” 구원이 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저주가 물러가고 천 
국 같은 새로운 삶이 주님으로부터 이 가정에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 주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구원은 이렇게 얻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치료 
가 오고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지도 
자들은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주님 
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고치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따라가는 것은 내 몫입니다. 응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용기는 내 몫입니다. 결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 
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지만 물러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은 멸 
망을 당합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종교입니다. 움직이는 종교이며 살아 역사하 
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삶이 한없이 무겁고 곤궁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면 주님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고 길을 열 
어 주실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내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요 17:1-5 
김재남 

토즈라고 하는 신학자는 자아발견의 제일조건으로 “내 소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 나의 소원이 고상한 것인가, 아니면 저급한 것인 
가? 남이 알아도 자랑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남이 알면 부끄러운 것인지 그것으로 자신 
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소원, 나의 기도 제목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거룩한 기도가 있는 자가 되라 
고 명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 
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절)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신학적 
으로는 이를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대제사장 기도라고 부릅니다. 왜 요한사도는 겟세마 
네 동산에서의 기도보다는 이 기도에 더 비중을 두고서 있을까요? 
그것은 이 기도가 지니는 독특한 힘 때문입니다. 그 힘은 다름 아닌, 눈앞에 닥친 엄청 
난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앞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기도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는 마가나 마태나 누가가 복음을 기록할 시대와는 사뭇 다른 핍박의 시 
대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생명을 잃을 처지에 누구나 노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보다는 마가 
의 다락방에서의 주님의 기도가 훨씬 당대에 크게 공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는 밀과 포도 농사가 주종을 이룹니다. 평지에서는 밀을, 산지가 많은 지방 
에서는 포도농사를 합니다. 산지는 특히 돌이 많습니다만, 오히려 그 돌 때문에 포도 농 
사가 더 잘 됩니다. 비가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그 건기에도 밤이면 공기 속에 있는 수증 
기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이슬을 만들고, 이 이슬들이 모여서 포도 성장에 필요한 수분 
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앞에서도 거룩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요? 그것은 
그 메마른 현실 속에서도 은혜의 이슬을 만들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 
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 
의 덫에 걸려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으로 거듭난 주 
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운동산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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