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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신앙을 이어가는 방법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장(통 51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느헤미야 10장 28∼39절 
 
말씀 :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은 자신과 조상들의 잘못을 다 고백한 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이 맹세를 어기면 저주도 기꺼이 받겠다는 아주 단호한 맹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살기로 결단하고 있습니까. 

먼저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방인과 결혼하는 문제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페니키아 출신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시집오면서 얼마나 나라 안에 우상숭배가 극심해졌습니까. 솔로몬도 외교적 수단으로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면서 결국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혼미해지고 타락의 길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이방인과 결혼해선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신앙적 차이가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결혼은 가정 안에서 작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유다 백성들은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노라 맹세합니다. 당시에 주민들이 유대인으로만 구성돼 있었다면 모두가 율법을 지킬테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에도 물건을 팔았고, 유다 백성도 그 물건을 사왔던 것입니다.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물품이나 곡물을 사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안식일을 구별된 하나님의 날로 지키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이 대대에 전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를 통한 믿음생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교회와 예배에 소홀히 하면서 주관적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겠노라 했던 결단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믿음을 대대에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이 대를 이어 전수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날을 힘써 지킴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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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기도 / 남선교회 헌신예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불러 하나님의 귀한 백성을 삼아주시고, 죄 가운데 방황하는 저희들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신 극진한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남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바쳐 사명을 다짐하는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성령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헌신예배가 하나님께는 큰 영광을 돌리며 저희들에게는 한없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남선교회 회원들은 복음의 기수로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며 사랑이 메마른 이 땅위에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뜨거운 심정을 안고 모였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우리를 돌보시어 죄악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서 신앙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헌신예배를 드리는 귀한 복음의 역군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말씀 속에서 심령의 갈증을 풀 수 있도록 흡족한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이 은혜를 간직하고 증인으로서 사명을 다하는 모든 회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민족을 향하신 아버지여,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저희 남선교회 회원들이 이 땅의 복음화와 통일을 위해서,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분 뿐이오니 꿋꿋이 전진하는 신앙인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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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아를 위한 기도문 (Prayer for the fetus)

 

 

 

우리를 신묘막측하게 지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아기가 누구를 닮았을 지 궁금하고, 만날날을 생각할 때 기대되고 기쁘고 설렙니다.

이러한 기쁨과 설렘을 가질 수 있게 하신 주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출산의 때를 위하여 준비함으로 기도 드립니다.

 


출산때 까지 아이가 태중에 건강하게 있게 하옵소서.

엄마가 아프지 않도록 건강하게 주께서붙잡아 주옵소서. (임신성 당뇨, 임신성 갑상선, 소양증 등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야 할 주수를 모두 채우로 세상으로 나오게 하옵소서.

주께서 가장 알맞은 때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 출산을 할 때에, 함께 하여 주셔서

건강하게 자연분만을 할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더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이가 머리 방향을 올바르게 잘 하여, 산도도 끼지 않고 무사하게 나올 수 있도록 지켜 주시길 소망합니다.

자궁문이 때에 알맞게,  주수에 맞게, 상황에 알맞게 잘 열려지고, 아이가 순탄하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양수가 잘 배출 되면서 산도가 열리고 아이가 잘 나오게 하옵소서.

진통을 하감하시고 숨 쉬는 순간 마다 주님이 지켜 주옵소서.

 

진통과 출산과정 가운데 함께 하여 주셔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섬세한 손길로 도우실 줄 믿습니다.

엄마에게 히브리여인들에게 주셨던 강건함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순산 할 수 있도록 은헤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출산 할 때에 엄마도 힘이 들지만, 아이도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이 힘들줄 압니다.

아이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첫 관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산도를 따라 내려오는 모든 과정들을 아이가 잘 견디고 무사히 안전하게 자연의 순리에 알맞게 행하여 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출산을 돕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함께 하여 주셔서,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출산 과정이 은혜롭게, 안전하게 진행 되어 질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주께서 주장하여 주시실 소망합니다.

 

주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

모두 주께 내어 놓습니다.

주를 의지합니다.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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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기도문 sunday prayer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참된 복음이 사라지고 있는 이 세대를 사는 저희들을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전하도록 함께 모여 예배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긴박성을 알려주시고 깨달아 씨를 뿌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무것도 하지않으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저희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복음을 전하는것도..... 추수하는것도.....
게으름에 익숙해진 저희들은 그것마저도 외면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들... 어리석은말.... 성도의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모든 것들은 호기심 이라고 변명하며

멀리하기 보다는 가까이 하는 것을 즐기고 서로를 속이고 속으면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더디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저희들을 용서해주세요

사물이나 형체를 섬기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모든 것에 동참하는 것도 우상숭배임을 깨닫게 해주세요

어두움이었으며 불순종의 자녀였던 저희들을 예수님의 피로 빛의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를 잊지않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열매 없는 어두움을 멀리하고 도리어 그것을 책망할 줄
아는 깨어있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게 해주세요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일어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저희안에 가득하여 믿지않는자들에게
그사랑을 나눠주는 성령과 동행하는 저희가 되길 기도해 주시는
우리 목사님 성령충만하게 해주세요

지금 이 순간도 저희를 어두움에서 지켜주시기 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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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제목 : 언제나 소망은 있습니다

말씀 : 애3:19~26

 

1.우리에게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근간에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농어촌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인데 농촌사회가 초고령화, 동공화되다보니 교회도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천국으로 가시는 분은 많고 들어오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지난 1월 말에는 정병호 장로님이 소천하시고, 지난 주에는 최윤익 집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8년 좀 넘었는데 제가 직접 장례예식을 치러드린 분이 15분이고, 그밖에 우리교회 다니시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셔서 소천하신 분이 너댓분이 계셔서 약 20명 정도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큰 교회라면 20명이 적은 숫자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성도라야 50여명 정도인 교회에서 20여명은 40%에 해당되는 수치이므로 큰 수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성도님들 중에도 연로하시거나 육신의 질고 또는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도 많습니다. 이재성도는 지난해 10월에 쓰러져 지금까지 넉 달 이상은 누워계시고, 지난 주에는 김춘옥성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깨관절을 크게 다쳐 인공뼈를 넣는 대 수술을 받았습니다. 또 고상진집사님도 건강이 좋지 못한 가운데 있고, 김병철집사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몸과 마음이 약하여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김춘옥 성도님과 이재 성도님 문병을 다녀왔는데 김춘옥 성도님은 적어도 몇 개월은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고, 이재성도님은 의식은 회복한 것 같은데 본래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분이라서 사람이 가면 그저 힘없이 손을 겨우 잡고 아는 것 같은 반응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 날 중환자실에서 면회를 하고 나오려하는데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저를 계속 응시하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 기도 시간에는 얼마나 울면서 기도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나님, 어찌하여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셨는데 이 불쌍한 사람을 통하여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 하십니까? 하나님, 이 불쌍한 사람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데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노라면 정말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 그저 눈물 흘리며 기도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 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애3:49,50절에 보면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를 기다리며 그저 눈물 흘리며 기도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소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지금은 고난속에서 그저 기도하며 눈물 흘릴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은혜를 내려 주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이라도 분명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날이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낙심하며 눈물 흘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절망의 그림자가 아무리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머잖아 절망의 그림자는 물러가고 마음껏 감사와 기쁨과 은혜의 찬양을 할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옵니다. 혹시 조금 시간이 걸린다해도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고, 그날이 오면 모든 아픔과 고통과 절망의 탄식소리는 사라지고 기쁨의 찬가가 울려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35: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입니다. 그래서 낙심과 절망과 고통이 그들을 짓누르고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해방의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맹인의 눈이 열리고,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리며, 저는 자들이 사슴 같이 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사나운 짐승이나 근심 걱정 염려 불평 탄식거리는 근처에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춤추며 찬양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바벨론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었지만 아직은 광야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 영원한 가나안 복지인 천국에 가기까지는 고통과 아픔의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순간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탄식이 변하여 기쁨의 함성이 되며, 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사막이 변하여 낙원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어 생명의 은혜가 가득한 그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혹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그저 겸손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과 은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문제들을 반드시 이기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고통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고난의 현실이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래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자연도 온전한 상태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온갖 거짓과 폭력과 질병과 전쟁이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도 상당히 왜곡되어 온갖 자연재해와 질병과 기근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만든 온전치 못한 문명의 이기들이 도리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사람도 자연도 사람이 만든 문명도 온전치 못함으로 사람과 자연과 문명의 이기들을 통하여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고 받을 때가 너무나 많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그 현실을 이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1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러분, 보십시오. 21절에 보니까 이것을 내 마음에 담아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소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마음에 담아 둔 것이 뭡니까? 내 고초와 재난입니다. 그래서 울며 탄식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소망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소망이 생겼습니까? 22절, 24절에 있습니다.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4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즉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온전히 진멸 된 것은 아니어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진멸 당할 수 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살려주셨고, 그 자비와 긍휼로 이후로도 우리를 살려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고난의 현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작에 진멸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도 그런 은혜로 우리가 진멸당하지 않고 결국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기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 앞에서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보다 천배만배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더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욥의 고난을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지금 어떤 고난을 당해도, 어떤 억울한 일을 만나도 욥의 고난과 억울함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엄청나게 받아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천 마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되는 거부였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열명의 예쁜 자녀를 둔 다복하기 한량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졸지에 폭삭 망했습니다. 세상에 망해도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가 없고, 원통하고 절통해도 이럴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도적떼의 습격을 받아 재산은 몽땅 빼앗겼습니다. 열 명의 자녀가 하루 아침에 모두 죽었습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며 죽으라면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온 몸에는 종기가 나서 재 가운데 앉아서 몸을 긁고 있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도 한때는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죽어서 나왔더라면, 내가 낳던 날이 없었더라면, 내가 낳던 날에 빛이 없었더라면, 어찌하여 내게 생명을 주셔서 이 험한 꼴을 보게 하셨는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참담하고 캄캄하여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면서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가 그렇게 끝내 무너져 내렸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의인이 아니지요. 욥23:1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나는 눈도 귀도 마음도 어두워 하나님을 보이지 않고 음성도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의 고난을 알고 계시며 뭔가 계획을 갖고 계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정금같이 나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고, 마침내 시련의 기간이 끝나자 두 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만한 능력과 사랑과 지혜가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현실이 어렵고 낙심이 될 때에라도 그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저 겸손히 무릎 꿇고 주님의 뜻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역사하심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고난의 현실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소망 중에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길이 보입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 24~26절을 보겠습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비록 고난의 현실이 쑥과 담즙처럼 쓰고 아프지만 여호와께서 나의 기업이 되심으로 나는 여호와를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선하시기에, 여호와께서는 전능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므로 분명히 긍휼히 여기사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잠자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그 작은 생각과 이성과 판단으로 함부로 떠들어대지도 않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원망과 불평과 좌절 속에 빠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과 구원과 섭리를 믿고 조용히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꽤 오래전에 미국에서 15살 난 한 소녀가 심한 구타를 당하여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떤 목격자가 나타나 래리 밀러라는 사람을 지목하며 이 사람이 사건 현장에서 그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래리 밀러가 살인범으로 체포되었는데 사실은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시간에 사건 현장에 있지 않고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뚜렷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아 이 목격자의 증언으로 래리는 3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분통이 터질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한 목사님의 편지 중 한 귀절에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형제여!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은 우리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에 위로를 받은 그는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교도소에서 실시하는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그러자 몇 년 후에 그의 신실한 믿음과 열정이 인정되어 성경공부반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교도소 내에서 실시하는 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죄수들도 열심히 가르쳐 많은 사람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과 중등과정을 가르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며 사는 동안의 그 자신도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2년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진범이 체포되어 래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무려 12년 동안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정말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출옥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었고, 그래서 나만 알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타인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여기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삶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12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그 안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나갔을 때 결국 그는 승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요셉과 같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은 죄와 무지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사람이 만든 문명도 심히 왜곡되고 혼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현실 속에는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분통이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깊은 어둠의 순간에도, 아무리 절망감이 짓누르는 순간에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분명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현실이 어떻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겸손히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엎드려 주님의 뜻을 물으며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분명히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하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은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현실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서도 주의 은혜를 누리다가 마침내 영원한 영광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복된 삶이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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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대표기도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은혜 중에 다스리시며 때를 따라 필요한 복을 내려주시는 한량없는 은혜에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저희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비록 죄악 세상에 물들며 때로는 합당치 못한 생활에 빠지더라도 하나님의 자녀 됨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우리 죄가 더욱 가증스럽고 한심스러워 이 시간도 우리의 연약함을 슬퍼하며 안타깝게 회개하오니 또 다시 용서의 헌장을 인쳐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내려주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를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같은 죄인들은 주님의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소망의 그늘에 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각자 안에 사시며 사슬로 묶으사 은혜의 보좌앞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슬픔을 당할 땐 환난을 통한 은혜에 이르는 길을 알게 하시며 수모와 멸시를 당할 땐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에서 사랑하고 계심을 알게 하셔서,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일지라도 더 큰 하늘의 은혜로 이기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여 주심으로 우리도 그 축복의 그늘에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가 용서를 비는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 또한 용서받게 하옵소서,


이 시간도 사랑하시는 목사님께 능력과 권능을 더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거두도록 역사하여 주옵시며, 이 교회의 구역집회마다 기름 부으셔서 모일 때마다 큰 오순절 되게 하시고, 수고하는 구역장들을 격려하시고 축복하여 주셔서 저마다 하나의 작은 별이 되어 어둔 세상 총총히 빛나게 하옵소서.

또한 심령의 건강도 지켜주시고 고통 중에도 주님을 찬송하는 충성스런 일꾼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실로 지금 올리는 이 기도가 우리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좇아 함께 하시고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오며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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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설교  :: 영광의 하나님

 

 

 

에베소서 1장: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1장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으로 "영광의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부제목을 달아보자면 우리가 지난 3주간 설교말씀을 들은 것과 같은 주제로써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달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옛날 옛날에 어떤 농부와 나무꾼과 어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신이 있다면 그분은 어떤 분일까 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나무꾼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들 신은 분명히 산에 계셔. 자네들 이른 새벽에 나무하러 산에 올라가 봤나? 아침에 자욱하게 안개 낀 숲 속에서 나무를 하고 있으면 그 공기만으로 신을 느낄 수가 있어. 어쩔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단 말야. 나도 모르게 내가 저지른 죄들이 막 떠올려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거든. 그리고 산신령이라고 들어봤지? 아무튼 신이 있다면 산에 있을 거야."

그러나 어부가 대응합니다. "어허,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바다의 신이지. 용왕님이라고 들어봤지? 그리고 서양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부른다구. 산신령은 우리나라에만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바다의 신이 그야말로 진짜 신이지. 신이 있다면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파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다의 신이 분명해.

그러자 잠잠히 듣고 있던 농부가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눈을 들어서 하늘을 좀 보게나.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있겠어? 신이 있다면 바로 태양신이지. 아니 빛이 없으면 곡식도 자랄 수가 없고, 산에 나무는 물론이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갈 수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자네들 공부 좀 해보면 알겠지만 이 바다에 바람이 불고하는 것도 다 태양신이 이 땅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지. 비오는 것도 결국 다 태양신이 하는거야.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아라고 부르잖아. 하여간 무식하면 안된다니까."

이렇게 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해봤지만 결국 정답 없이 서로의 생각만을 주고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늘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경험과 관념에 빠져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알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지각의 눈을 밝히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권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게 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기도와 같이 "주님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광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친절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많은 특징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광이란 하나님께서 태초에서부터 영원까지 계획하신 시작이요 결말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의 소원은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었으며, 사무엘상 4장에서 비느하스의 아내는 주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의 궤를 빼앗겼을 때 주의 영광이 떠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구구절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으며, 이사야 6장에서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사람의 죄가 창조주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고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린 것에서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면 이 세상 왕국들을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다가올 영광을 보시고 십자가의 수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시며 견디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우리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아주 짧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 이곳저곳을 살펴볼 때 "영광"이라는 주제는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에 힘이 없고 잠든 것 같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 영광을 향한 경주로의 초대
사람들에게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이요, 지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관점에서 죄의 대가가 형벌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영광의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인용하는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을 조금 더 풀어서 써보자면,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의 멸망에 처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화살이 표적을 벗어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영광이라는 표적을 향해 활을 당겼는데 인간의 죄로 인하여 표적에서 빗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다만 멸망할 죄인을 지옥에서 건져낸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실격처리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달릴 수 없게 된 우리들의 위치를 회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끝이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요 출발인 것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계획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을 가리켜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벧전 5:10).

또한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위치는 예정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부르심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의롭게 된 것이며, 다만 의롭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목적은 바로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게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에 성공하여 재벌이 되어서 그 영광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어 국민의 영웅이 되고 모든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영광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수나 영화배우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환호를 한 몸에 받는 영광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사람들 뿐 아니라 때론 매우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와, 당신은 매우 성실하군요.", "당신은 정말 깔끔하군요.", "당신은 정말 책임감이 강하군요.", "당신은 아주 순수하시군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영광스러워하고 때로는 그러한 영광, 칭찬, 평가를 얻기 위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악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결승전을 치르지 않은 어떤 우승후보가 벌써부터 금메달을 딴 것처럼 미리 기뻐하는 것같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것은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시상해 주실 것이지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경주하는 동안에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경주를 다 달린 후에 주어지는 것이지 경기 중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경기를 달리는 중간중간 관중들을 바라보고 멈칫하고 주춤한다면 그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일들을 섬기려고 한다면 이렇게 주변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
저는 오늘 말씀의 부제목을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정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지옥과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인식한 사람만이, 예수님이 필요한 것을 알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 얼마나 절실한지를 분명히 알 때만이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한 젊고 유능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주 똘똘하고 계산이 빠른 형제였습니다. 또한 이 형제는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한 일주일 하다가 그만두는 일도 이 형제는 일 년이 지나도록 지속하고, 남들이 대충대충 넘어가는 일도 꼼꼼하게 따지고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는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무슨 훈련을 받아서 이렇게 된게 아니라 그냥 천연적으로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훌륭한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스스로 느끼기에 십자가가 별로 필요 없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무엇을 할 수 없는 육신이어야 십자가가 필요하지, 성경공부면 성경공부, 구령이면 구령, 설교면 설교, 교회봉사면 교회봉사, 아주 다방면으로 교회의 지체들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못하는 게 없으니까 육신이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이 상당히 멀리 느껴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이 형제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갈망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의 기도에 "아멘!" 응답하시고 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영원한 목적이 바로 영광스러운 교회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그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가죽옷이라든지, 아벨의 피의 제물이라든지, 유월절 어린양이라든지 하는 많은 예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예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것들이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해 죽임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아담이 자신의 아내인 이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의 잠을 통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남편이신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을 통과하는 모습을 미리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유의하여 볼 것은 이 때 아담이 이브의 죄를 씻기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브가 존재하지도 않을 때에, 이브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죽음의 잠을 통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만약에 사람에게 죄의 문제가 없었다할지라도 이미 영원 전부터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계획하고 계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치료책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계획하고 계셨던 영원한 목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지혜와 영광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타낼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또 5장에서는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1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목적하신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신부인 교회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기를 목적하셨습니다.
이제 이 형제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형제의 목적은 다만 "내가 주님이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섬겨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지"하는 개인적인 이유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형제는 이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지체들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기도하고 책보고 성경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던 이 형제는 이제 교회의 지체들과 어울리고 함께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왜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알려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의 영적인 성장만을 생각하던 이 형제가, 교회의 전체적인 하나됨과 성장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섬겨야할 일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한 섬김의 빈자리들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섬기는 힘의 근원은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던 이 형제는 어느 날 이상하게도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주님을 섬기고 나서 은혜로 가득 차야할 그의 마음은 오히려 그와 같이 섬기지 않는 지체들에 대한 못마땅함과 정죄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과 같이 주님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지체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지고 딱딱하며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지체들이 이 형제를 칭찬하면서 하나님께서 귀한 형제를 우리교회에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되찾아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형제는 자신이 지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을 발견하였고, 또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사람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더욱 뜨겁게 지체들을 사랑해야할 판에 교회를 섬긴다고 많은 열심을 부리고 나서 오히려 지체들을 향하여 차갑고 비판적이며 못마땅한 마음이 가득한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더욱더 겸손히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모든 일들을 잘 섬기고 나서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훔쳐오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열심을 부리는데 왜 지체들을 더 미워하게 될까요? 하나님, 제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데 왜 주님을 섬길수록 주님의 영광을 훔치는 자가 될까요?"라고 기도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너가 육신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너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오히려 교회를 더욱 미워하게 된다. 너가 육신으로 주의 영광을 위할 때, 너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때, 오히려 자신의 영광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 자신 안에는, 너의 육신 안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선한 육신이든, 성경지식이 가득찬 육신이든, 성실한 육신이든,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계십니다.
또한 로마서 8장 8절에서는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지혜로운 육신이든지 상관없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할 수 없는 육신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또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과 경배를 탈취하는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무리 좋고 선할지라도 우리가 이 육신을 십자가로 넘겨서 처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양육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꿀꺽꿀꺽 집어삼키며, 이기적이고 교만한 왕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리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에베소서 1장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17절에,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고 처음 위치를 회복한 우리들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선발되어 경기장에 들어온 선수들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로서, 모든 지체가 주님의 몸으로서 다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경기하는 한 팀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 받으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장차 하늘에서 영광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광을 받을 장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철저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의 영광을 구한다면 장차 하늘에서 받을 보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마 6:2).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잠깐의 칭송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게 되면 내가 의도하지 않게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져야할 영광을 탈취하여 나 자신을 드러내고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주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섬길 때에만이 우리는 모든 일을 섬기고 나서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침례자 요한이 고백한 것과 같이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육신이 처리된 사람만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에 넘겨진 사람만이 오직 100%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을 다시 보시면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지극히 크고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시며 자신의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길 때에만이 온전하며 모든 일을 다 섬기고 난 뒤에 내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십자가 아래에서 이루어진 섬김과 수고들을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인 적도, 사람의 귀에 들려본 적도, 사람의 생각과 마음 속에 상상되어본 적도 없는 너무나 과분하고 황송하며 뛰어난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영광을 계획하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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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대표기도문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참좋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주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우리ㅇㅇ교회 성도들을

죄악이 가득찬 세상에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보호하여 주셨다가 오늘 주님의 거룩한 성일을 맞이하여

가장 귀하신 하나님께 온 정성으로 주일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었던 저희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어

저희들의의 죄악됨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앃기시어 너는 내것이라고 인쳐 주시고 또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지금 저희들의 삶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겉사람은 주님의 백성인냥 거룩한척 하면서도 우리의 속사람은

이세상의 불의와 쾌락 속에서 날마다 호의호식 하면서 위선자적인 삶을

살아온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이시간 저희들이 진정으로 원하오니 주님을 잊고 세상에서

지었던 모든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비록 일상의 삶속에서 사단의 유혹에 넘어 지더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하신 주님앞에

다시 다가 서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변함없는 믿음을 행하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주님앞에 인정받는 성실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우리도 이웃 들에게 계산적인 사랑이 아닌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을

실천 할줄아는 믿음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상적인 형식과 외식에 지우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시간 단위에서 귀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에게

육체의 강건함과 성령충만을 허락하시어서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증거할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성령님이 찾아 오시어서

목사님이 선포하시는 귀한 말씀을 들을수 있는 귀와

깨달을수 있는 머리와 말씀에 따라 실천할수 있는 믿음을

가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 듣다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옵소서

말씀대로 살 수 잇는 결단을 주옵소서


비록 우리가 이세상에서 보잘것 없이 작고 초라할 지라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존귀함을 받는 자가 되게하시고

귀중한 믿음의 자녀가 될수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사랑의 주님 이시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외국유학으로,군대복무로,또한 국내에서 학업과 직장 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과 교회를 늘 생각 하면서 맡겨진 사명

에 최선을 다할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귀한 믿음의 일꾼으로

성장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은혜로운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대의

귀한 찬양을 기쁘게 흠향하시고 지휘자와 반주자를 비롯하여

모든 찬양대원 들과 교회와 예배를 위해 수종드는 모든

청지기 들에게 주님의 무한한 축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를 원하오며 지금은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마치는 시간까지 함께 하여주심을 믿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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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마다 기도해야 할 10가지 이유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33:2)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공급과 도움없이는 살수없는 하나님 의존적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도를 통한 공급과 도움을 약속하셨다.그리고 그것을 명령하심으로 모두가 하나님으로 살도록하신것입니다.기도하면 살고!안하면죽고!

 

2. 기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것이기 때문에

  기도의 원어를 보면 두가지가 있다 기도를 올리는것(프로쉬케)과 또하나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데오마이)이다.지금 당장 내문제없어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위해(성령의 감화감동)서 당신은 기도해야한다

 

3. 기도는 최고로 지혜롭게 인생을 잘 살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인생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의 병행이라 전도서는 말하고 있다.따라서 형통할 때 곤고할 날을 위해 기도많이 해는것이 지혜이다.마치 요셉이 애굽의총리가 되어 7년풍년때 양식을 저장하여 7년흉년때 열방이 살수 있었던 같이

 

4.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할것이요

  하나님은 고난을 당하라고 또 즐기라고 또 그냥 방치하라고 하지 않으시고기도하여 속히 지나가라 했습니다.현재 고난이 있으면 당연히 지금 기도해야합니다.고난을 통한 유익만 속히 챙기고 벋어나라!

 

5.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라(기도하라) 했습니다

  내문제가 없어도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기도해야합니다.아버지의 일이 곧 나의 일이기도 합니다.하나님은 쉬지않고 일하십니다.우리도 교회와 목사님을 위하여 세계선교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합니다.먼저!

 

6. 대환난을 피하고 인자앞에 서기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친히 말씀이르신 말씀입니다.현재 기도안하고 있다면 주님앞에 안전히 설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틀리지않습니다

 

7. 그날 그날의 죄를 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룩입니다! 거룩은 정결하게된자가 소유하는 것입니다 정결케하여 깨끗케하여 거룩하게하는 것은 예수의 보혈입니다.날마다 자범죄를 자백하여 보혈로 씻어 자신을 깨끗이해야합니다.죄없는 날이 없습니다 즉 기도안할날이 없다는 말입니다

 

8. 시험에 들지않도록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날려버리는 태풍입니다.주의 제자 가룟유다도

시험들어 망했습니다.시험에 들지 않는 유일한 길은 기도하는것입니다

 

9. 미리기도 즉 기도적금을 드십시오

  예수님이 배드로를 위해 미리 기도해주셨습니다.주님을 판 유다나 주님을 세 번부인한 베드로나 다를게 뭐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결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자녀를 위해 진로를 위해 사역을 위해 배우자를 위해 미리기도하라

 

10. 하나님이 당신의 목소를 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날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내 음성과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며 그 음성듣기를 원하신다 했습니다(시116).사랑하는 자의 목소를 듣고 싶은 이치죠 사람에 말한 만큼 하나님께만 말해도 하나님 기뻐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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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훈련]  기도의 다양한 측면들

 

 

  
1. 기도의 종류

 

  기도는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통성 기도(행 4:24, 31; 렘 33:3). 큰 소리로 하는 기도이다. 큰 소리로 하는 이유는 문제의 긴급성, 간절함 등을 표현한다.

 

  묵상 기도(창 24:63; 시 19:14). 말씀을 읽는 중 감동이 오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주는 위로, 약속, 책망, 인도에 대해 기도한다.

 

  합심 기도(마 18:19-20; 행 1:14). 여러 명이 한 제목을 두고 마음을 합하여 하는 기도이다.

 

  찬양 기도. 찬양은 기도의 한 요소이자 곡조 있는 기도이다. 따라서 찬양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중보 기도(딤전 2:2; 엡 6:18-19).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대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족, 교회의 지도자들 및 이웃을 위한 기도를 말한다. 이는 중요한 주제이므로 “중보기도”에서 자세히 다룬다.

 

  대표 기도. 예배나 집회 시 회중을 대표해서 하는 기도이다. 시간은 2-3분이 적합하다.

 

  축복 기도. 기도 받는 자의 복을 비는 기도이다.

 

  작정 기도. 어떤 기도의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이다. 21일, 40일 작정 기도가 있다.

 

  금식 기도. 물만 마시는 금식기도, 아무 것도 마시지 않는 단식기도가 있다. 제3과 금식기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서원 기도. 특별히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응답해 주시면 내가 그 대신에 이런 것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는 기도. 기도 응답이 왔을 경우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가 미친다.

 

  치유 기도. 마음이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기도이다.

 

  안수 기도. 직분자를 세우거나(딤전 4:14; 5:22),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거나(행 8:17; 19:6), 치유할 때(막 6:5; 8:25) 안수기도할 수 있다.

 

  방언 기도. 방언으로 하는 기도(고전 14:2, 14-15).


  명령 기도. 축사나 신유를 위한 기도이다(눅 10:19; 약 5:14).

 

  전투 기도 또는 목표 기도. 중보기도의 일종으로 특정지역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단 10:2-13; 엡 6:18).

 

  임재 기도. 명상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기도. 일반적으로 간구기도가 끝난 후에 하는 기도이다.

 

  듣는 기도. 임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이다.

  

2. 기도의 때

 

  성경에 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침 제사와 관련된 새벽기도, 저녁 제사와 관련된 제 9시(우리의 오후 3시(행 3:1) 및 황혼 무렵이었다.

 

  새벽 기도(시 5:3; 88:13; 막 1:35; 행 2:1-4, 15).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3).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시 88:13).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여기서 말하는 아침은 동틀 녁, 여명이란 뜻도 있다.

   *미명(未明)이란 먼동이 트기 전,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이른 새벽이란 뜻이다.

 

  정오 기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

 

  저녁 기도(마 14:23; 막 6:47; 눅 6:12).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막 6:47).

 

  철야 기도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수시 기도(삼상 7:8; 12:23; 시 72:15; 느 1:6; 눅 2:37; 6:12; 행 10:2; 롬 1:9-10; 엡 6:18; 골 1:9; 4:2; 살전 3:10; 5:17; 딤전 5:5).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결론적으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기도해야 하지만 새벽기도, 저녁기도 및 철야기도와 같이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도 좋다.

 

 

 

3. 기도의 장소

 

  어디서 기도하나? 예수님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

  *여기서 은밀하다는 말은 나 혼자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하나님만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크므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나 혼자만의 은밀한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

 

  - 다락방(행 1:13, 14)

  - 집(행 10:30; 12:5-17)

  - 강가(행 16:13)

  - 해변(행 21:5)

  - 광야(눅 5:16))

  - 한적한 장소(막 1:35; 눅 4:42)

  - 산(마 14:23; 막 6:46; 눅 5:16; 6:12; 9:28; 요 6:15). 영적 공격이

     심 하므로 초보자는 혼자서 하는 산 기도는 삼가하는 것이 좋다.

  - 혼자서할 수 있는 곳(마 6:6; 26:39; 막 6:46; 14:32-42; 눅 6:12;

    9:18; 22:41).

  - 성전(행 3:1). 시편의 상당 부분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드린 기도문이었다.

 

4. 기도의 자세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나?

 

  - 앉아서(대상 17:16-27)

  - 무릎 꿇고(왕상 8:54; 스 9:5; 눅 22:41; 행 9:40)

  -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출 34:8; 느 8:6; 시 72:11).

  - 서서(느 9:5; 막 11:25; 눅 18:13)

  - 손을 들고(대하 6:12, 13; 시 63:4; 딤전 2:8).

  - 걸으면서(왕하 4:35).

  - 완전히 엎드려서, 부복하여(수 7:6; 스 10:1; 마 26:39; 막 14:35).

 

  이처럼 여러 자세가 있으므로 때에 따라 형편에 따라 어울리는 자세로 하는 것이 좋다.

 

5. 얼마 동안 기도해야 하나?

  할 일이 많고 중요할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의 양은 개인이나 형편에 따라 다르다.

 

  -초보자는 10-15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도 제1과에 소개된 방법대로 기도하면 최소 1-15분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점점 시간을 늘여가라. 기도를 할수록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는 중보기도의 몫이 점점 늘어남을 알게 된다. 결국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기도가 된다.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최소 1시간,

  -목사나 전임사역자는 2-3시간,  

  -중보기도사역자는 하루 최소 2-5시간까지 기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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