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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주요인물 아비가일 - 총명한 미모의 여인

인적사항

1. 아비가일은 내 아버지가 기뻐하심이라는 뜻

2. 마온의 부호 나발의 아내

3. 나발이 죽은 후 다윗의 아내가 됨

시대적 배경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로 유랑하던 시기 대략 B.C 11세기 초기로 추정됨


생 애

1. 행실이 악한 나발과 결혼하여 남편을 잘 섬김.

2. 도움을 청하는 다윗을 모욕하여 화를 자초한 남편 대신 다윗을 찾아가 용서를

    구함 

3. 하나님의 심판으로 남편이 죽은 뒤 다윗의 아내가 됨 (삼상25:39-42)


성품과 행적

1. 격노하여 납말을 치러 오는 다윗 일행을 맞아 생면부지의 다윗에게 은총을 구하고

     그의 발걸음을 돌이키게 한 것을 볼 때 지혜롭고 판단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능한 여자임을 알 수 있다.

2. 많은 물질을 의지하여 거만하고 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남편을 잘 섬기며 생명이 

    위험을 당할 때도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것은 아내로서의 덕망을

    갖춘 여인임을 보여준다.

평가 및 교훈

1. 격노하여 남편 나발을 죽이려는 다윗 일행을 맞아 떡과 음료로 접대하며 그 잘못을

     눈감아 주도록 공순하게 간청한 아비가일은 그 지혜로운 행위로 나발의 생명뿐 아니라

     그의 모든 가산을 지켰다. 이처럼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운다(잠14:1)

2. 물질을 매개로 하여 맺어진 지혜롭고 용모가 뛰어난 아비가일과 행사가 악한 나발의

    결혼은 결국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사랑과 인격보다 물질이 앞선 바람직하지

    못한 결혼의 불행한 결말을 볼 수 있다.

3. 다윗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한 아비가일의 유순한 언행은 다윗의 격한 분보를 

    가라앉히기에 충부했다. 이처럼 유순한 태도는 노를 그치게 한다(잠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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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영접기도 4가지 영적원리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당신)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과의 사귐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적극적일 때는 하나님께 반항하게 되며,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증거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람은 죄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 철학, 종교 등의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도달하여 

풍성한 삶을 누려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간격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을 제3원리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그는 또한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담당케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세 가지 원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약속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우리는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뜻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스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지적으로 동의한다든가 감정적인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지의 행위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다음 두 그림은 두 종류의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주인인 사람 

나 -내 인생의 왕좌에 나 자신이 앉아 있으며

 -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밖에 계 십니다. 

   모든 일을 나 자신이 주관하므로 자주 좌절과 혼란에 빠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인 사람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왕좌에 앉아 계시며

나 -나는 내 인생의 왕좌에서 내려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므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 그림이 당신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
또 당신은 어느 그림에 속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영접하는 가를 설명해 줍니다.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입으로 하는 말 보다는 중심의 태도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당신의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약속하신 대로 당신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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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도폭발 예화 모음


♣ 선행 - 친구의 선물 

영생은 순수한 선물처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공로를 쌓고 종교적인 행위로 어떤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것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중한 친구가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깜짝 놀래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즉시 지갑을 꺼내들고 선물 값 얼마를 갚기 위해 돈을 만지작거린다면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겠습니까! 선물은 값없이 거저 받아야만 선물입니다. 한푼이라도 지불을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죄의 정의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강도나 살인이나 간음 등을 염두에 둘 때가 많아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성미를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도 죄예요. 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않는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역시 죄예요.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정욕, 교만, 미움 등 생각과 말로도 짓게 돼요.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 하루 세번의 죄 예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열 번이나 다섯 번 혹은 단지 세 번의 죄만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그런 사람은 걸어다니는 천사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불친절한 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본분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처럼 선하다 할지라도 일년이면 그가 줄잡아 1천번의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70평생을 산다면 그가 하나님의 법을 7만번이나 어긴 범죄 기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사법원에서 7만번의 범죄기록을 가진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중형을 받겠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썩은 계란이 들어간 요리 예화 

우리가 싱싱한 계란 다섯개에 썩은 계란 하나를 섞어서 요리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들이 많이 들어 있을지 모르나 실상은 부패한 생각과 행위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리라고 기대할 수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완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언제든지 그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선생님)이나 저나 또 어느 누구라도 왜 행위를 가지고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시겠지요? 


♣ 은행강도 예화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5백 만원을 털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비밀 카메라가 그 현장을 포착했고 은행 직원들과 그 밖의 목격자들이 피의자를 확인했습니다. 판사 앞에 선 피의자는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죄를 졌습니다." 하고 자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판사님, 제가 강도 짓을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돈도 그대로 돌려드렸고 또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저를 이대로 풀어주신다면 다시는 은행을 털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판사가 만일 그를 풀어준다면 그가 과연 공정한 판사이겠습니까? 
판사가 지켜야 할 공정한 표준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강도를 풀어준다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은행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판사도 정의 때문에 범법자를 벌해야만 한다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죄를 벌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성경이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죄를 기록한 책 예화 

제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이 제 삶을 아주 상세히 기록해 둔 책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는 제가 지은 모든 죄와, 제가 한 모든 말과, 제 마음에 스쳐간 모든 생각과, 제가 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책을 들어 올린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제 죄가 (책을 왼손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왼손 손등을 가리킨다) 사랑하지만 제 죄는 (왼손 손바닥 위의 책을 가리킨다)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가 책을 든 왼손의 위치와 나란히 내려 놓는다.)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대목에서 단번에 분명한 동작으로 왼손의 책을 오른손에 옮겨 놓는다.) 라고 했습니다.(사 53 : 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 모든 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 : 24)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 계시다가 (책을 무릎에 내려 놓는다)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선생님)과 저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의 영생을 (선생님)과 저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 테텔레스타이 예화 

그런데 저는 부모된 입장에서 깜짝 놀랄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맞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진노 곧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죄값이 치러졌을 때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는 이 말이 흥미 있는 낱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테텔레스타이라는 상업 용어로서 "완불되었다, 빚이 다 갚아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천국문을 여는 열쇠 예화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선생님)도 이와 같은 열쇠꾸러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열쇠들은 다소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열쇠들을 가지고 우리 집 현관문에 가서 다 시험을 해보면 제 열쇠를 찾아야만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열쇠로도 문이 열릴것이라고 아무리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바른 열쇠라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여는 바른 열쇠는 구원 얻는 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줍니다. 그 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주리라고 아무리 진실하게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얻는 참 믿음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의 어떤 사실들에 대한 지식적 동의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들은 그가 실제로 이 땅 위에 살았던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으나 지금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 귀신예화 

성경은 말하기를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얻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 일시적/ 현세적 믿음 

사람들이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재정적인 문제로 주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재정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을 돌아보아 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은 가족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을 결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할 때 (선생님)은 여행믿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들이 일단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선생님)은 더 이상 그 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 이생의 것들, 곧 잠시 있다 지나갈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시적인 문제들을 위해서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선생님)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 경건생활의 동기 예화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나머지의 모든 생애는 단순히 그 날에 덧붙여진 하나의 덤으로서 ' 주님 그 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동기는 영생에 대한 감사에 있어요. 
*고후 5 :14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그리스도의 사역-인간이 처한 궁지의 해결책 

우리에게는 인간이 처한 궁지를 해결할 공식이 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답밖에는 안나온다. 우리는 마땅히 그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갚으셔야 했던 것이다. 


♣ 거지의 손 예화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 한 거지의 손과도 같아요. 이 거지는(저도) 수년 전에 깨끗하지 못하고 무가치한 손을 내밀어 영생의 선물을 받았어요. 
그 때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어요. 지금도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영생을 갖고 있어요! 은혜로 얻었어요! 
(가능하면 그 집안의 장식품 중 가까이 있는 것 하나를 예화 중의 선물로 사용한다.
 미리 그것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가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하는 대목에서 왼손을 내어민 다음 예화를 마칠 때 내밀고 있던 왼손으로 그 선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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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위한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나를 고쳐 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 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가게 해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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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통해 십자가 복음 이해하기 

십자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십자가 복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쉬운 말씀이요. 가장 기본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사탄이 지금까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모세의 수건이 아직도 벗겨지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메시야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엇을 믿어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믿는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복음인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교인수가 1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기독교 역사 120년 만에 1000만 명이 넘는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 수는 늘어나는데 교인들의 삶은 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사람은 변화되지 않고 외형은 점점 화려해진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성장 중독증에 걸려서 교회가 커지고 교인수만 많으면 목회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성도들의 영혼의 탄식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총체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 하지 않는다.

그래서 깨어있는 목사님들은 한국교회의 병폐를 고쳐보자고 여러 가지 방법을 내놓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정녕 교인들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단 말인가? 

정녕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흠이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를 세울 수 없단 말인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가는 거룩한 성도가 양산되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있다!!.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십자가 복음’이다

이 말씀을 깨닫게 되면 속사람이 놀랍게 변화된다. 할렐루야!

그러면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가?

바로 로마서 6장 말씀이 십자가 복음에 대한 말씀이다.

특히 로마서 6장 6절은 십자가 복음의 핵심 말씀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 하려함이니”(롬6:6)

우리의 옛 사람(죄의 몸, 아담)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믿는 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이 말씀을 믿으면 실제로 나의 옛사람(아담) 죽는다. 

나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 할 때, 

나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은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인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재창조 되었다’라는 것이다.

옛 사람이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본질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염소가 죽어 양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염소인 옛사람에게 양가죽을 입혔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다. 그래서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염소가 아예 죽어버리고 양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 복음이다.

양으로 태어났으니 염소의 속성을 아무리 내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양의 성품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양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십자가 복음인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을 믿는 순간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지금 내 사건이 되는 것이다.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지금 현재 나의 사건으로 체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때”에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실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야” 실제가 되는 것이다.

말씀은 믿어야한다.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만약 암이 걸렸어도 암이 말씀대로 낫는다고 믿으면 실제로 낫는다. 믿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

이처럼 말씀은 믿을 때에만 실제가 되는 것이다.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병자들을 만났을 때에 꼭 물어본 것이 있었다.

‘믿음’을 물어보았다. 이유는 예수님도 말씀으로 치유하셨다. 말씀을 믿을 때만 역사하셨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천국도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십자가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 복음도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 복음을 믿으면 실제로 나의 옛사람, 죄의 사람이 죽는다.

내 죄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순간 내 죄가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는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

믿음은 내가 소원하는 것, 내가 소망하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 복음을 믿으면 그대로 내 죄가 십자가에서 죽는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절과 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다.

헬라어로 ‘죽은’은 현재가 아니고 ‘과거’이다. 이미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완전히 죽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내 죄가 죽었기 때문에 나하고 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 가운데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죽었느냐?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로마서6장 3~5절이다. 
 
로마서 6장 3~5절을 요약하면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해서 새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이 말씀을 믿으면 실제로 내 죄가 십자가에서 죽는다.

죄인이 죽고 의인이 되는 것이다.

죄인이 죽고 거룩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

십자가에서 죄로부터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의인이 되는 순간부터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열매를 맺었으니’에서 ‘맺었으니’는 현재 능동태이다. ‘맺을 것이다’가 아니다. 

예수와 함께 죽은 사람은 예수와 함께 부활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선언을 했다. 

현재완료 수동태이다. 거룩함을 이미 십자가에서 얻은 순간부터 지금도 거룩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믿는 순간 거룩해졌고 지금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4)
  
더욱더 놀라운 것은 한 번의 제사로 영원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음으로 영원히 완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씀도 ‘현재완료 능동태’이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순간 완전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계속 완전하다는 것이다.

십자가 복음이 믿어지면 이런 말씀들이 다 이해가 된다.

또한 십자가 복음의 핵심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믿어지면 주님이 내안에 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나의 자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할렐루야!

이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이것이 완전한 복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이 예수님을 이렇게 믿는다.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 내 죄를 용서해주세요! 

예수님의 피로 내 죄를 용서해주세요! 

내 죄를 용서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니까 죄가 실제로 죽지 않고 반복해서 죄를 짓게 된다.

 

죄 덩어리인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복음은 ‘불완전한 복음’이요 ‘반쪽짜리 복음’이다.

 

이렇게 믿어서는 죄는 용서함을 받을 수 있지만 죄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반쪽짜리 복음을 믿기 때문에 갈수록 죄를 짓는 것이다.

삶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이다. 

 

계속해서 미워하고, 혈기내고, 시기질투하고, 비방하고, 판단하고, 

용서하지 않고, 원망불평하고, 고집부리고, 음란 하고, 욕심내고,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못견뎌하고, 조금만 책망을 해도 시험 들고 등등의 것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 밑에 와서 무릎을 꿇고 내 죄 용서해 주세요!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고 계신 십자가로 ‘나도’ 올라가야 한다. 

 

나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하는 것이다. 

십자가만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 위에’ 올라가야한다.

 
 

십자가 밑에만 있지 말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혀야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참된 의미이다.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 내 죄 용서해주세요! 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얘야! 십자가 밑에서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지 말고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자!”라고 말씀을 하신다.

 

죄가 죽는 유일한 곳은 십자가 밖에 없다. 천상천하 어디에도 죄가 죽는 곳은 없다.

 

오직 십자가에서만 내 죄가 죽는다. 

십자가 밑에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만 죄가 죽는다. 이것을 깨닫기 바란다.

십자가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내 죄가 죽는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받을 수 있지만 내 죄는 죽지 않는다. 

십자가 밑에서는 아무리 해도 죄가 죽지 않는다.

십자가 위에서만 죽는다. 십자가에서 나도 함께 죽어야만 한다.

 



“십자가 밑에서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과 “십자가에 올라가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의 

차이점을 염소와 양을 모델로 설명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상태를 ‘염소’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된 상태를 ‘양’이라고 하자.

십자가 밑에 죄인인 ‘염소’가 와서 무릎을 꿇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한다. 보혈로 내 죄를 씻겨달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죄의 용서함을 받고 죄인인 염소에게 양의 가죽이 씌워진다.

 

이것이 십자가 밑에서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면은 겉은 양인데 속은 염소이다.

그러니 속에서는 염소의 속성이 그대로 나간다. 염소의 성품이 나간다.

내가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속은 염소이기 때문에 염소의 속성이 나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속은 염소이기 때문에 염소의 속성인 죄가 나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뿔로 받지 않으려고 해도 내 속에 염소가 있기 때문에 건드리면 뿔로 받는다. 

아무리 혈기를 안내려고 해도 십자가에서 혈기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참다가 참다가 혈기를 낸다.

혈기를 참는다고, 누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르다가 폭발하면 더 무서운 폭발이 일어난다.

 

이와 반면에 죄인인 ‘염소’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매달려 죽는다.

 

그러면 죄인인 염소는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죄인인 염소는 예수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장사된다. 

장사를 지낸다는 것은 확실히 죽었다는 것이다. 군대용어로 확인사살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 할 때 나도 함께 부활을 한다.

예수님과 부활 할 때 나는 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부활 할 때 염소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양으로 부활을 한다. 의인 ‘양’으로 태어난다. 

겉도 양이요 속도 양이다.

 



옛 사람인 염소는 십자가에서 죽고 새 사람인 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염소의 속성이 나오지 않고 

양의 속성이 나온다. 양의 성품만 나온다.

염소의 속성을 내려고 해도 안된다. 양에게는 염소의 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부활한 성도는 양의 속성만 나간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 밑에서의 구원”과 “십자가 위에서의 구원”의 차이이다.

 


오늘날 교인들이 양의 가죽을 쓴 염소와 같다.

 

 
그러니 계속해서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 있는 것이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회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회개를 외치는 강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너무나 슬픈 현실이다. 

오늘날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교회를 보고 피눈물 흘리고 계시는 것이다.

염소가 십자가에서 죽어야한다 그리고 양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해서 

새 사람이 되어서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십자가 복음만이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다. 

십자가 복음은 나도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 한 것을 믿는 것이다.

부활해서 새 사람이 된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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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한다(엡6:18)
 
 2.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킨다(계1:3)
 
 3. 찬미의 제사를 계속 드린다(히13:15)
 
 4. 복음을 전하기에 수고한다(살전2:9)
  
 5.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빌3:4)
  
 6. 가정을 잘 다스린다(딤전3:4)
 
 7.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고전2:16)
 
 8.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레19:18)
 
 9. 자기 몸을 쳐서 하나님 말씀에 복종시킨다(고전9:27)
 
10.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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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전도폭발 예화 


♣ 선행 - 친구의 선물 

영생은 순수한 선물처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공로를 쌓고 종교적인 행위로 어떤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것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중한 친구가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깜짝 놀래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즉시 지갑을 꺼내들고 선물 값 얼마를 갚기 위해 돈을 만지작거린다면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겠습니까! 선물은 값없이 거저 받아야만 선물입니다. 한푼이라도 지불을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죄의 정의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강도나 살인이나 간음 등을 염두에 둘 때가 많아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성미를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도 죄예요. 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않는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역시 죄예요.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정욕, 교만, 미움 등 생각과 말로도 짓게 돼요.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 하루 세번의 죄 예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열 번이나 다섯 번 혹은 단지 세 번의 죄만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그런 사람은 걸어다니는 천사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불친절한 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본분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처럼 선하다 할지라도 일년이면 그가 줄잡아 1천번의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70평생을 산다면 그가 하나님의 법을 7만번이나 어긴 범죄 기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사법원에서 7만번의 범죄기록을 가진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중형을 받겠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썩은 계란이 들어간 요리 예화 

우리가 싱싱한 계란 다섯개에 썩은 계란 하나를 섞어서 요리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들이 많이 들어 있을지 모르나 실상은 부패한 생각과 행위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리라고 기대할 수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완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언제든지 그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선생님)이나 저나 또 어느 누구라도 왜 행위를 가지고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시겠지요? 


♣ 은행강도 예화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5백 만원을 털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비밀 카메라가 그 현장을 포착했고 은행 직원들과 그 밖의 목격자들이 피의자를 확인했습니다. 판사 앞에 선 피의자는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죄를 졌습니다." 하고 자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판사님, 제가 강도 짓을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돈도 그대로 돌려드렸고 또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저를 이대로 풀어주신다면 다시는 은행을 털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판사가 만일 그를 풀어준다면 그가 과연 공정한 판사이겠습니까? 
판사가 지켜야 할 공정한 표준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강도를 풀어준다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은행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판사도 정의 때문에 범법자를 벌해야만 한다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죄를 벌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성경이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죄를 기록한 책 예화 

제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이 제 삶을 아주 상세히 기록해 둔 책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는 제가 지은 모든 죄와, 제가 한 모든 말과, 제 마음에 스쳐간 모든 생각과, 제가 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책을 들어 올린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제 죄가 (책을 왼손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왼손 손등을 가리킨다) 사랑하지만 제 죄는 (왼손 손바닥 위의 책을 가리킨다)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가 책을 든 왼손의 위치와 나란히 내려 놓는다.)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대목에서 단번에 분명한 동작으로 왼손의 책을 오른손에 옮겨 놓는다.) 라고 했습니다.(사 53 : 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 모든 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 : 24)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 계시다가 (책을 무릎에 내려 놓는다)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선생님)과 저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의 영생을 (선생님)과 저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 테텔레스타이 예화 

그런데 저는 부모된 입장에서 깜짝 놀랄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맞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진노 곧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죄값이 치러졌을 때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는 이 말이 흥미 있는 낱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테텔레스타이라는 상업 용어로서 "완불되었다, 빚이 다 갚아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천국문을 여는 열쇠 예화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선생님)도 이와 같은 열쇠꾸러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열쇠들은 다소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열쇠들을 가지고 우리 집 현관문에 가서 다 시험을 해보면 제 열쇠를 찾아야만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열쇠로도 문이 열릴것이라고 아무리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바른 열쇠라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여는 바른 열쇠는 구원 얻는 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줍니다. 그 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주리라고 아무리 진실하게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얻는 참 믿음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의 어떤 사실들에 대한 지식적 동의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들은 그가 실제로 이 땅 위에 살았던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으나 지금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 귀신예화 

성경은 말하기를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얻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 일시적/ 현세적 믿음 

사람들이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재정적인 문제로 주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재정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을 돌아보아 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은 가족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을 결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할 때 (선생님)은 여행믿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들이 일단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선생님)은 더 이상 그 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 이생의 것들, 곧 잠시 있다 지나갈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시적인 문제들을 위해서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선생님)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 경건생활의 동기 예화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나머지의 모든 생애는 단순히 그 날에 덧붙여진 하나의 덤으로서 ' 주님 그 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동기는 영생에 대한 감사에 있어요. 
*고후 5 :14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그리스도의 사역-인간이 처한 궁지의 해결책 

우리에게는 인간이 처한 궁지를 해결할 공식이 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답밖에는 안나온다. 우리는 마땅히 그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갚으셔야 했던 것이다. 


♣ 거지의 손 예화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 한 거지의 손과도 같아요. 이 거지는(저도) 수년 전에 깨끗하지 못하고 무가치한 손을 내밀어 영생의 선물을 받았어요. 
그 때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어요. 지금도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영생을 갖고 있어요! 은혜로 얻었어요! 
(가능하면 그 집안의 장식품 중 가까이 있는 것 하나를 예화 중의 선물로 사용한다.
 미리 그것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가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하는 대목에서 왼손을 내어민 다음 예화를 마칠 때 내밀고 있던 왼손으로 그 선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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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자를 위한 기도(Prayer for new believers)

저는 시냇가에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시편 1:3)
 

데임즈강이 있는 영국 런던입니다.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재판소의 뜰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포도가 영국에서 제일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그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조사를 

해보니 다른 포도나무와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된 나무이기에 이 포도나무의 열매가 다른 포도나무보다 

맛이 좋은 열매가 맺히는지 자세한 연구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구 결과발포에 의하며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테임즈 강 밑바닥

에까지 뻗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강 밑에 뻗어있으므로 웬만큼 가물어도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다른 곳에 있는 포도나무보다 더 많은 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맛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복 있는 사람이 되면 겉보기에는 여느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가짐의 사상과 삶의 철학과 신앙의 뿌리가 하늘 보좌에까지 

뻗어 있는 냐 없는 냐에 따라서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으로 구분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복이 있는냐 없는냐에 따라서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지진이 나며 기근이 

다가오고 이 세상에 변혁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나게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풍수지리설에서의 자연환경을 통하여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

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야웨)

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되면 

그가 사는 곳 마다 복이 넘치도록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

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로마서 8:31, 32)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가

날아오며, 바위가 갈라져 생수가 넘쳐흐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풍성한 기적의 

열매를 맺어 여러분 자신이 복을 누리고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부득히 한 사정으로 교회 가시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자 하시는 분.

2,교회 가시기 전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가시고자 하시는 분.

3,병원에서 교회를 못가시고 혼자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자 하시는 분.

4,위에 축복의 말씀을 읽고 나신 후 아래의" 제목 새 신자의 기도" 를 따라하시면

예수님을 영접 하였습니다.

5,그리고 난 후 집에서나 가까운 교회로 나가시면 됩니다.

 
새 신자의 기도
 
사랑하시는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천국 갈 때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치료함을 받아

새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축도 

고린도후서 13:13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라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축복의 선언입니다.
  
예배와 생활이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며

주의 뜻이 이 땅에 임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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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신 인물의 6가지 공통점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습니다.그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주님앞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뉘우치고  새해를 맞이 하면서 우리의 믿음 조상들이 
어떻게 믿음생활을 했는지 마가복음 22:34-40을 통해서 알아 봅니다.

하나님이 쓰신 인물의 공통점
(마 22:34-40)

1. 철저하게 자기 존재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스러기 마음을 가진 부스러기 인생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2. 상대적 가치보다 절대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헌신 이하의 것도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3. 겸손한 마음과 겸손한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우리는 항상 "부족합니다!"를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으로 신앙의 배수진을 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나는 하나님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5. 잘못했을 때에는 진지한 참회, 최대의 참회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잘못했을 때 참회하는 자세는 일상생활에서의 성실한 자세와 책임적 자세를 반증합니다. 

6. 정직하고 진실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사랑이란 행동으로 보여주고 생활로 나타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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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예수님만 바라보라


찬송: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288장(통 2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17장 1~8절

말씀: 한국교회가 가진 독특한 것이 있는데 새벽기도와 산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즐겨 하셨고, 산기도도 즐겨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졸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셨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된 모습이 원래 주님의 모습이요, 장차 하늘에 오르실 모습입니다. 이 영광스런 모습을 보아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확신과 용기가 생기겠기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되실 때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되니 졸던 제자들이 두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항상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습니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자리에 주연은 예수님이고 조연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동안 주연이신 주님과 함께 다녔으면서도 이러한 감동이 없다가 조연을 만나보고 감동을 한 것입니다. 주연을 잘 모셔야 합니다. 어떤 집은 남편에게는 매일 김치찌개나 해주다가 이웃집이 오거나, 남편의 직장 동료가 오면 메뉴가 바뀝니다. ‘아니 평소에 우리 아내가 저런 것을 만들 줄 알았나’ 할 정도로 신기한 것들을 막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주연이 남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그렇고, 오늘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구원을 얻는 일인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이나 명예의 축복을 주시면 감격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것에 비하면 조연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곳이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우리가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일로 시험을 받고 작은 일 때문에 신앙생활에 축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크리스천의 위기는 예수님이 희미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그 가운데 예수님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법을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풍랑이 있고 어둡던 세상이 밝아지고 분쟁이 있는 곳에 찬송이 넘쳐나게 되며, 세상에 끌려가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명철 목사(도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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