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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가정 예배 설교 및 기도문


2023년 추석 추도예배 순서지 및 설교 는 첨부파일에도 있습니다. 다운 받아 쓰세요  
설교자가 사회를 겸하여 합니다. 
사회자- 지금부터 2023년 한 해동안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2023년 추석추도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다 함께 묵도하겠습니다. 
다 함께 사도 신경을 고백드리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다함께 555장 찬송하겠습니다.
우리 주님 모신 가정 복되고도 
복된 가정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를 
위해 살아가리 온식구가 모여 앉아 
즐거웁게 찬송하니 지금까지 
지내온것 주의 크신 은혜로다
주의 자녀 모여 앉아 주께 기도 
드리오니 가족들의 건강함과 
화목함을 주옵소서 슬플때에 
위로함과 괴로울 때 평안함을 험한 
세상 살아갈 때 환난에서 구하소서
주를 사모하는 가정 변치 않게 
하시옵고 이 가정에 주의 은혜 
넘쳐나게 하옵소서 사시사철 주의 
사랑 강물같이 흘러 넘쳐 따뜻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 주옵소서
다음으로 가족 간에 (한분이나 집례자)가 가족을 대표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추석 추도예배 기도문 예시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한해 무더위가 심하였습니다. 경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를 잃지 않고 잘 참고 견디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와서 시원하고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진전이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들도 다 건강하게 하시고 때로는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를 통하여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으로 화목하고 하나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시간 우리에게 추석 추도 예배를 통해서 한 해를 감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다음으로 성경 봉독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음으로 설교자가 아래 설교 내용을 참조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설교예시문)
우리가 감사제목이 있어서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감사제목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지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염려되는 것을 감사함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염려가 있을수록 더욱 감사기도를 해야합니다. 이런 사도바울의 권면은 사도바울의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를 개척할 때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자 여종의 주인이 점을 칠 수 없다고 바울을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옷을 벗기고 매를 맞고 쇠사슬에 묶여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도하다가 주님을 위해서 좋은 일하다가 주님처럼 매맞은 것을 생각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벗겨졌습니다. 바울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모든 가정을 구원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염려를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고 더욱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뭄으로 농사가 잘 안 되고 청년실업이 많고 자영업이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더욱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족도 한해동안 감사한 것을 찾아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집례자 기도-(예시문) 하나님 아버지 생각해보니 2023년 한해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아프게 하셨지만 그를 통해서 내적으로 성숙하게 하셨고 가정이 더욱 하나되게 하여주셨습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를 통하여 가족들이 서로를 더욱 관심 갖고 돌보게 하여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하여 한해동안 전쟁의 전운이 많이 사라지게 하여주셨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축구와 야구에서 우승하여 우리나라의 기쁨이 되게 하여주셨습니다. 한해를 지켜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은혜 나누기 -이번 2016년 추석을 맞이하여 한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또한 서로에게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찾아서 감사를 표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기도제목이 있으면 나누고 가족 중에 두 세명이 대표로 기도하고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으로 2023년 추석 추도(가정)예배를 마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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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3-35 
홍 기 
창조주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들 가인에게 처음으로 물으신 질문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을 심판대 앞에 세우시고 물으 
시는 질문 역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행한 것들 
을 기준으로 상과 벌을 내리신다. 그 뿐만 아니라 매 순간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 
문은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다. 하나님께서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계 
시는 이유는 우리를 참된 신앙의 소유자로 세우시려는데 있다. 우리 신앙인들이 매 순간 
마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어떤 대답을 준비하 
며 사느냐에 따라 ‘참된 신앙인’인가의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질문을 생활 속에서 들을 수 있는가? 모래 시계를 보듯이 자신 
의 날을 계수하며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날을 계수하는 사람이다.(시90:12) 우리는 우리 인 
생의 모래 시계를 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리 인생의 없어진 시간과 아직 남 
은 시간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기회는 아직 남은 시간들이다. 남은 
시간을 아름답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채우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의 소유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다. 우리가 남은 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채우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를 열고 “지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 
문을 듣고, 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적인 귀를 열고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네 
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자. 성공한 인생, 
복된 인생은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마다 “네가 무 
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며 사는 사 
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네가 무엇 
을 하였느냐?라는 질문을 듣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도 이 질문을 듣는 귀를 열고, 나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살되, 하루 하루를 
뜻있고 가치있게 살자. 거기에 하늘의 상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 가득한 
인생의 소유자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제주남원 

따라가라 그리하면 응답을 받으리라 
마 15:21-28 
김삼환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로 와서 애원을 합 
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 어머니 
는 자신의 딸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딸에게 들어간 흉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없 
었기에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님은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냉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갈기갈기 찢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개 취급을 받았던 이 여인이 주님에게 이런 엄청난 모욕과 저주를 받을 때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고침을 받는 길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애청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 
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여인 
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여자야 너의 믿음이 그렇게 클 수가 없구나. 너는 네 딸과 함 
께 행복하게 살 것이고 오늘 이 시간부터 네 딸에게 역사 하는 더러운 귀신은 나갈 것이 
니라.” 구원이 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저주가 물러가고 천 
국 같은 새로운 삶이 주님으로부터 이 가정에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 주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구원은 이렇게 얻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치료 
가 오고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지도 
자들은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주님 
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고치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따라가는 것은 내 몫입니다. 응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용기는 내 몫입니다. 결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 
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지만 물러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은 멸 
망을 당합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종교입니다. 움직이는 종교이며 살아 역사하 
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삶이 한없이 무겁고 곤궁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면 주님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고 길을 열 
어 주실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내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요 17:1-5 
김재남 

토즈라고 하는 신학자는 자아발견의 제일조건으로 “내 소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 나의 소원이 고상한 것인가, 아니면 저급한 것인 
가? 남이 알아도 자랑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남이 알면 부끄러운 것인지 그것으로 자신 
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소원, 나의 기도 제목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거룩한 기도가 있는 자가 되라 
고 명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 
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절)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신학적 
으로는 이를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대제사장 기도라고 부릅니다. 왜 요한사도는 겟세마 
네 동산에서의 기도보다는 이 기도에 더 비중을 두고서 있을까요? 
그것은 이 기도가 지니는 독특한 힘 때문입니다. 그 힘은 다름 아닌, 눈앞에 닥친 엄청 
난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앞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기도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는 마가나 마태나 누가가 복음을 기록할 시대와는 사뭇 다른 핍박의 시 
대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생명을 잃을 처지에 누구나 노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보다는 마가 
의 다락방에서의 주님의 기도가 훨씬 당대에 크게 공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는 밀과 포도 농사가 주종을 이룹니다. 평지에서는 밀을, 산지가 많은 지방 
에서는 포도농사를 합니다. 산지는 특히 돌이 많습니다만, 오히려 그 돌 때문에 포도 농 
사가 더 잘 됩니다. 비가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그 건기에도 밤이면 공기 속에 있는 수증 
기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이슬을 만들고, 이 이슬들이 모여서 포도 성장에 필요한 수분 
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앞에서도 거룩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요? 그것은 
그 메마른 현실 속에서도 은혜의 이슬을 만들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 
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 
의 덫에 걸려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으로 거듭난 주 
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운동산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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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라 그리하면 응답을 받으리라 
마 15:21-28 
김삼환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로 와서 애원을 합 
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 어머니 
는 자신의 딸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딸에게 들어간 흉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없 
었기에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님은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냉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갈기갈기 찢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개 취급을 받았던 이 여인이 주님에게 이런 엄청난 모욕과 저주를 받을 때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고침을 받는 길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애청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 
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여인 
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여자야 너의 믿음이 그렇게 클 수가 없구나. 너는 네 딸과 함 
께 행복하게 살 것이고 오늘 이 시간부터 네 딸에게 역사 하는 더러운 귀신은 나갈 것이 
니라.” 구원이 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저주가 물러가고 천 
국 같은 새로운 삶이 주님으로부터 이 가정에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 주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구원은 이렇게 얻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치료 
가 오고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지도 
자들은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주님 
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고치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따라가는 것은 내 몫입니다. 응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용기는 내 몫입니다. 결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 
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지만 물러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은 멸 
망을 당합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종교입니다. 움직이는 종교이며 살아 역사하 
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삶이 한없이 무겁고 곤궁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면 주님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고 길을 열 
어 주실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따라가라 그리하면 응답을 받으리라 
마 15:21-28 
김삼환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로 와서 애원을 합 
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 어머니 
는 자신의 딸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딸에게 들어간 흉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없 
었기에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님은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냉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갈기갈기 찢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개 취급을 받았던 이 여인이 주님에게 이런 엄청난 모욕과 저주를 받을 때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고침을 받는 길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애청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 
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여인 
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여자야 너의 믿음이 그렇게 클 수가 없구나. 너는 네 딸과 함 
께 행복하게 살 것이고 오늘 이 시간부터 네 딸에게 역사 하는 더러운 귀신은 나갈 것이 
니라.” 구원이 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저주가 물러가고 천 
국 같은 새로운 삶이 주님으로부터 이 가정에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 주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구원은 이렇게 얻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치료 
가 오고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지도 
자들은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주님 
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고치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따라가는 것은 내 몫입니다. 응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용기는 내 몫입니다. 결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 
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지만 물러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은 멸 
망을 당합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종교입니다. 움직이는 종교이며 살아 역사하 
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삶이 한없이 무겁고 곤궁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면 주님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고 길을 열 
어 주실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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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제목 : 느혜미야인가?
말씀 : 느 1장 1~11절



느혜미야가 활동할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참으로 침울했습니다 
성벽은 훼파되고,성문은 불타버렸고 예루살렘 의 주민들은 능욕과
수치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느혜미야를 사용하셔서 이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느혜미야인가? 

첫째로,
그는 관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묻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살아갑니다. 
물으면 귀찮아지고 물으면  
머리 아프고 물으면 책임의식이 
생기니까 차라리 무관심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무관심은 세상의 죄악을
키우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불의가 
날뛰도록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내가 무관심하고 묻지 않는
사이에 하나님의 공동체는 병들어가고,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심의 사랑을 
사용하십니다
 

진리에 무관심한 체 나 하나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의 안녕에 깊은 관심을 
갖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둘째로 
그는 공감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4절) 
특별히 하나니의 마음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었습니다.
그래서 4절을보면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하나님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의 마음의 하나님의 마음과
이어져 있기 공감의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5절 이하) 
무엇보다 느혜미아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
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의 사람을 
사용하시고 이런 기도의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얻어지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스펄전은 "기도하지 않고 성공
했다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도하는 자로서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느혜미야와 같이 
관심의 사랑,공감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사시는 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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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설교] 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하나님의 지팡이

말씀 : 출4:17~20

1.믿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보면 때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건 우리 인생 누구나가 받아 들여야 할 숙명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광야와 같고 나나 너나 세상이나 다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와 무지와 악함과 추함과 왜곡됨 속에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는 아무도 여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제거할 것이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최대한 그런 것들을 피하고 최선을 다해 제거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아무리 피하고 제거해도 또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니까 이런 것들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이나 시험이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물론 천성적으로 성격이 낙관적인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보다 더 잘 이길 수도 있습니다. 또 성품과 의지가 강하거나 뭔가 능력도 있고 배경이 좋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좀 더 유리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건들이 승리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다 죄와 무지가운데 있고 게다가 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능력과 배경이 있더라도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그것을 자기 힘으로 이겨 낼 수 있습니까?

그러면 어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물론 말할 필요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 온다해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그 모든 것들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심지어는 인생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까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따라서 이런 주님을 믿고 그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께서 능력과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나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와 담대함으로 우리 스스로도 잘 헤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8:37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등 우리 인생길 앞에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말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지혜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우리의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빽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돈도 권력도 능력도 지식도 과학도 그 어떤 우리의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하고 완전한 백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완전하고 영원하고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 주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우리로 하여금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일을 만나도 오직 주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이시며 구원자이시면 든든하고 완전한 후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또한 주님이 주신 능력과 은혜로써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며 천성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그런 담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유혹도 많고 도전도 많고 환난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서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무슨 지팡이를 짚고 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팡이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과 인도하심이 확실히 담보된 표징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마음속에 있든 혹은 어떤 특별한 은혜나 은사나 기적의 체험이나 사명이나 여하튼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고 하는 확실한 표징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도전과 유혹과 시련과 고난이 온다해도 그 하나님의 지팡이로 넉넉히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먼저 20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이 말씀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목동생활을 마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는 40년 전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죽인 후에 미디안 광야로 망명하여 40년간 목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아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당당하게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부터 이렇게 담대하게 애굽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도 그대로 믿고 따르지 않고 자꾸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출4:1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함께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바로는커녕 이스라엘 백성들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래, 그럼 좋다. 내가 누구인지를 너에게 보여주겠다.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분명한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뭐냐? 네, 하나님, 지팡입니다. 그래 그럼 그걸 던져 보거라. 그러자 모세가 던집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꼬리를 잡으니 도로 지팡이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물론 다른 몇가지 과정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모세를 보내시며 하신 말씀이 오늘 말씀 17절 말씀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라고 하였다고 해서 이 지팡이 자체가 무슨 능력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이 지팡이는 처음부터 무슨 특별한 지팡이는 아니었습니다. 이 지팡이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쓰던 그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이후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지팡이는 본래 모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팡이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하나님이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오,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표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지팡이만 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임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건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고, 모세는 이 말씀을 따라 이 지팡이를 들고 담대히 애굽으로 가서 결국 승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지팡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오,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지키셔서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돌아서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천성을 향해 달려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은혜를 받아도 외견적으로 갑자기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상황이나 조건이 좋은 상황과 조건으로 갑자기 바뀌고, 갑자기 장사가 잘 되어 수입이 확 늘어나고, 허약체질이 갑자기 근육질로 변하고, 갑자기 승진을 하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일확천금을 하고, 막혔던 혼사 길이 갑자기 확 열리는 등 뭔가 힘들고 어렵고 잘 안 풀리던 일들이 졸지에 사라져 버리고 갑자기 만사형통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뭐가 달라집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지팡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팡이가 뭡니까? 힘없고 약한 때 의지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뭔가 나를 위협하는 것을 물리치는 막대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뭔가 방향을 지시하는 도구가 되기고 합니다. 바로 이런 지팡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와 용기로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23편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러분, 다윗이 마냥 평안하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에게 수많은 인생의 풍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없어서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부족함이 있지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결국 다 해결될 것이고, 결국은 이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결국 하나님 안에서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처음에는 못한다고 안된다고 내가 뭘 하겠느냐고 나는 입이 둔하고 혀가 뻣뻣하다고 바로는커녕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몇 번씩이나 꽁무니 뺐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자 용감하게 애굽을 향해 가서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꼭 이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지팡이, 능력의 지팡이, 은혜의 지팡이를 꽉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를 가지고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왜곡되고 추한 것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3.하나님의 지팡이는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출4:2~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자 여러분, 잘 보십시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예, 지팡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걸 던져 버려라. 그랬습니다. 지팡이는 의지하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맹수를 물리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꾸짖고 책망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양을 몰 때도 사용합니다. 바로 그걸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네가 의지하고 네가 너의 보호자라고 여기고 너희 생활수단으로 여겼던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양을 칠 때에 사용하던 그런 지팡이는 이제 버리라, 더 이상 그런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라, 그런 것을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그런 너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있으니까 두려워하고 못한다고 하고 벌벌 떨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지팡이를 던지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뱀은 사탄의 상징입니다. 모든 거짓과 유혹과 죄와 독의 상징입니다. 즉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의지하고 보호자로 여기고 생활 수단으로 삼던 것들을 계속 의지하면 그런 것들이 너를 보호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의 삶에 조금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데는 도리어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약하고 무기력하고 악의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리라고 하였고, 그래서 버리자 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뱀이 되자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뱀의 꼬리를 잡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꼬리를 잡았다가는 뱀이 홱 돌아서서 손을 물어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필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뱀에게 물릴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함께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는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그 따위 것들에게 물릴 것에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 뱀 곧 사탄의 세력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기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고, 그것이 뱀이 되었을 때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꼬리를 잡았을 때 모세가 뱀에 물리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지팡이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뱀의 꼬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팡이를 그냥 계속 잡고 있으면 계속 우리의 지팡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걸 던져 버리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던져버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뱀의 꼬리를 잡아야 합니다. 즉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탄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은혜를 주십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은혜와 용기를 덧입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자신의 지팡이를 일단 던져 버리기 바랍니다. 자신이 의지하고 믿고 보호자로 여기고 내세우던 것을 던져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겁내지 말고 모든 죄와 유혹과 악한 것들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적당하게 타협하지 말고 그런 것들과 당당히 맞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주십니다. 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기게 됩니다. 감히 사탄이 대들지 못합니다. 혹 덤벼든다해도 하나님의 지팡이로 얼마든지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당당히 바로와 맞장 뜨기 위하여 애굽으로 갔고 결국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정말 내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던져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탄의 꼬리를 잡고 집어 던져 버리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팡이, 능력과 보호와 인도와 동행을 상징하는 믿음의 지팡이를 가지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힘차게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시련과 도전과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과 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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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주일오후설교

제 목 : 겸손한 자가 받는 은혜
본 문 : 벧전5:5,6
1.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물론 믿음은 기본이고 믿음과 더불어 가지고 있어야 할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덕목은 무엇이냐하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예쁘고 재력있고 빽좋고 능력있는 사람 좋아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기준이고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이 올바른 사람, 특히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경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가 이루어지고 그러면 자신도 생명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남에게도 기쁨과 은혜를 주는 복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정말 낮은 자세로 자신을 한번 보십시오. 이 거대한 우주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저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십시오. 그전에 내 자신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신비합니까? 얼마나 굉장한 존재입니까? 그런데 그 굉장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반면에 내 안에 얼마나 죄되고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까? 우리 장로교의 창시자 존칼빈 선생은 “내 안에 들어있는 죄악의 1/100이라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롬3:10-12절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또 렘13:23절에서는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상대적인 선을 행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온전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그 마음 한 구석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겸손하게 엎드리지 않고 내가 다 안다고, 내가 의롭다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교만하게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기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겸손하게 엎드려 자신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그 은혜로 이웃과도 올바른 관계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5절 후반절에서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과 능력과 지혜를 생각하며, 반면에 우리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엎드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은 자신의 죄와 무지와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낮추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약함과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도 바르게 섬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올바르게 사랑하지 못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가보면 예수탄생교회가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약400평 정도 되는데 출입구는 단 하나 뿐이고, 게다가 그 문은 높이가 1.2m, 폭은 80Cm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좁은 문이라고 불리는데 그 교회는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한 사람씩밖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구부려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이성 경험 지식 명예 권세 자존심 내려 놔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무지합니다. 나는 약합니다. 도와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받아주세요. 하면서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만나고, 그렇게 예수님 만나면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4:6절에서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의 약함과 무지함과 한계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림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겸손한 사람은 열심히 기도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안 그래요? 기도가 뭡니까? 주님과 대화하는 거잖아요. 주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요구하는 것이잖아요. 또한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정말 바르게 사는 것입니까? 라고 묻는 거잖아요.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님 저는 무지해요. 어리석어요. 저는 약해요. 힘주세요. 능력을 주세요. 분별력을 주세요. 마귀사탄의 유혹을 이길 힘을 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님의 도우심이 별로 아쉽지 않다는 거지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거지요. 내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의롭게 살고 있다는 거지요. 선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그러니 얼마나 교만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세요. 우리 약함을 인정하고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절대로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26:41절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약함과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엎드려 기도함으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모든 약함과 무지를 이기고 은혜의 충만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4.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열심히 배웁니다.

겸손한 사람은 열심히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어찌 배우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지혜로우시고 그 안에 생명의 풍성한 은총이 있는데 어찌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말씀을 열심히 배우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다 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생명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나는 무지하고 연약한데 그래서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데 어찌 주님 앞에 엎드려 그 말씀을 경청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지식이나 문화나 기술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과 능력과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야 거짓에 속지 않고, 마귀에게 우롱당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우리 몸과 영혼과 마음을 지켜 주고, 힘과 평강과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행20:3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여러분, 열심히 배우십시오. 주님께 배우십시오. 그 말씀을 배우십시오. 그래서 지혜를 얻고 분별력을 얻고 능력을 얻어 그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5.겸손한 사람은 순종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순종하는 것이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따라 가는 것입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그냥 믿는 것입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아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성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순진하게 주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에도 그냥 순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고침 받으려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이성적으로는 정말로 웃기지도 않는 지시를 따랐을 때 문둥병에서 고침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빙빙 돌라는 웃기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따랐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적군 앞에 찬양대를 앞세워 찬양을 했을 때 적군이 전멸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어 밀었을 때 홍해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백배 천배 만배 수입억배 더 지혜롭고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사55:8,9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개역성경)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냥 주님 따라 가십시오. 설마 하나님이 우리만 못하시겠습니까? 설마하니 하나님께서 우리 사정과 형편을 모르시겠습니까? 다 알고 계십니다.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그냥 따라 가십시오. 거기 생명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순진하게 주님의 지시를 따라 온전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의 은혜 가득한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겸손한 사람은 높임을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낮추시고 비천하게 하시고 멸시당하고 천대받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높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요,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정말 약하고 부족하고 죄많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은혜와 사랑과 거룩과 선과 의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안에 거하면 그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그 안에 거하게 됩니까? 겸손한 자입니다. 교만한 자는 제멋대로 합니다. 제 생각대로 합니다. 제 소견에 좋은 대로 합니다. 그래서 죄의 길로 갑니다. 무지한 길로 갑니다. 그래서 결국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분별력을 갖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의 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습니다. 그래 존경 받고 그래서 높아집니다. 그래서 진정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23: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 오늘 6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의 죄와 무지와 한계와 연약함과 부족함고 미련함을 기억하며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그 분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며 기도하며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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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의 위력을 발하라

찬송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통 3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5절

말씀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온하게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 전날 주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놀라서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절)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했을 때 그 무화과나무가 주님을 거절하자 예수님께서도 그 나무를 거절함으로써 초래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믿음과 기도의 교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명령의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생기 있고 적극적인 믿음이 어째서 그들의 기도에 놀라운 권능을 불어 넣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통해서라면 어떠한 큰 어려움도 극복될 뿐 아니라 반드시 순조롭게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는 기대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주시는 권세를 지니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킨 것처럼 형식과 죄로 뭉쳐진 산을 깊은 바다에 던질 때 믿음으로 세상이 정복되고 사단의 맹렬한 공격은 마침내 잠잠해질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기 위한 기도의 전제 조건을 덧붙이셨습니다. 승리의 기도에 요구되는 조건은 곧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해주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25절) 우리는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의 적과 우리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용서가 부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대해 가지는 하나의 큰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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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설교 예수를 믿는 이유 

설교: 예수를 믿는 이유 


제 목: 지옥은 존재하는가? 
성 경: 계21:5~8

어느 극장에 코메디(comedy)를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그때 코메디언(comedian)이 나와서 침착하게 알리기를, 
"여러분, 이 극장에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으니 빨리 질서있게 나가 주십시요"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 잘 웃긴 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자 코메디안이 다시 나와서, "아니 여러분, 정말 이 극장에 불이 났으니 빨리 나가셔야 합니다." 하고 심각하게 말을 해도 여전히 웃기는 말로만 듣고 좋아하다가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가장 심각하게 들어야 할 설교가 지옥에 관한 설교인데, "지옥"하면 웃기는 말이나 농담으로 들으려고 하는 세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설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목사는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고 감칠맛 나는 설교만 할 수 는 없습니다. 
의사는 환자가 싫어해도 주사를 놓아야 할 때는 놓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해도 칼로 째야 할 때는 째고 수술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목사도 듣기 좋은 설교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기가 좋고 흥미가 없어도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 니다. 딕슨 박사(Dr.A.C.Dixon)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강단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더 많이 했더라면 우리 사회에서 지옥과 같은 현실이 더 적어졌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도덕적 질병이 잘로 심각해 지는 것은 지옥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옥에 관한 설교를 분명히 해주었더라면, 성도들이 더 많이 전도했을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과 교인들이 지옥의 존재를 분명히 믿고,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멸망받아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면, "교인 숫자만 많으면 무엇하느냐?"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결코 없으리라고 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기독교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확신을 갖고 전해야 됩니다. 

1.지옥은 존재하는가? 

사랑의 하나님의 어떻게 사람을 그 고통스러운 지옥에 보낼 수가 있느냐고 흔히들 말합니다. 지옥은 애초에 사람을 위해 예비된 곳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천사장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마귀들을 위해서 예비된 곳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를 쫓아가다가 함께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양있는 여자가 목사님께, "나는 지옥의 사상 같은 것은 싫어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 말씀을 듣고, "옳습니다. 사람들이 형무소를 싫어하고 전기의자나 교수형 같은 사형을 싫어하지만, 어쩔수 없이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임과 같이 죽은 후에 심판이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름주고, 김 매고, 비료줘서 농사짓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을에 반드시 타작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때가 있는 것과 같이, 최후에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셔서 지옥의 형벌을 주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100년 후에는 성경이 다 없어진다고 호언장담하며 무신론의 책자를 많이 출판했는데, 도리어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은 성경을 보급하는 성서공회가 되어 성경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볼테르는 죽어갈 때,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였구나! 의사여, 나를 6개월마 더 살게해 주십시요. 그리하면 내 보물의 절반을 주겠고"하고 말했습니 다. 그때 의사는, "당신은 6주간도 못 살겠소"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병중에서 죽음에 임박하자 극도로 고민하여 흉하게 떨어서, 돌보던 의사가 정신을 못차렸다고 합니다. 그는 최후에, "나는 지옥에 가노라"고 스스로 말하며 죽었습니다. 프랜시스 뉴톤(Francis New- ton)이라는 무신론자는 임종시에,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내가 받았노라"고 말하며 절명했습니다. 토마스 스코트경(Sir Thomas Scott)은 죽을 때에 말하기를, "나는 이때 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는 줄 알았노라! 나는 전능자(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멸망으로 들어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페리콜드(Perigold)라는 무신론자는 임종시에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나는 영원한 정죄 받은 자의 고통을 받으면서, "나는 영원한 정 죄 받은 자의 고통을 받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상의 예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거짓없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여러차례 강조해서 지옥의 실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더 많습니다. 성경에 한두번 말 씀하셨어도 반드시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많이 강조하신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지옥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환란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여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지옥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옥이 없다고 말해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을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법을 어긴 자들을 위하여 감옥과 사형과 형벌이 있음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들을 위해서 형벌과 지옥이 있다는 것은 옳고 당연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뒤 5분도 못되어 그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2.지옥은 어떤 곳인가? 어떤 사람은 지옥은 한낱 묘사요, 그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인간의 말로 표현한 것보다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곳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실제는 그림이나 묘사보다 뜨겁습니다. 지옥은 어떤 말의 표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뜨거운 곳입니다. 지옥에서 고 통당하는 자의 기억이 더 뜨겁게 할것입니다. 강도는 지옥에서 그가 죽인 희생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투전꾼은 자기가 속여먹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한 사람은 믿을 수 있었던 기회를 기억하고 더 괴로워 할 것입니다. 죄는 불의 뜨거움을 더할 것입 니다. 야심 또한 불의 뜨거움을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1)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으며, 벌레 한마리도 죽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5:22계20:10,14,15218,막9:48,사66:24).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슬피 울 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25:30). 설혹 육신적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은 육신의 고통 못지 않게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길레 정신적 고통으로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음부에 떨어진 부자는 너무너무 목이 타고 고통스러워서, 자기 집에서 얻어먹던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만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사정했으나, 그나마도 허락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어차피 이 고통스러운 곳에 왔지만 집에 남아있는 다섯 형제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이곳에 오지 않도록 증거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얼마나 뜨겁고 목이타고 고통스럽길래 그랬겠습니까? (2)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지나간 주간에 부흥회 인도하러간 교회의 목사님이, "피곤 한데 사우나 목욕이나 가서 땀을 좀내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말 한마디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뜨거운 도크에 들어가서 땀을 내다가 너무너무 뜨거워서 참다 못해 뛰어나가면서, "예이, 여기서는 참다 못 참으면 뛰쳐 나갈수나 있지,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아무리 뜨거 원도 나갈수도 없으니..... 그것도 영원히"라고 하는 말에 큰 은혜를 받고, 그 고통스러운 곳에 안가도록 지옥에 대한 설교를 또 한번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는 죽음으로 가능하지만, 지옥에서는 출구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세상이 괴롭 다고 자살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후라이판이 뜨겁다고 영원한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Sanfrancisco)의 금문교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한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에 감옥이 있습니다. 왜 그곳에 감옥을 지었느냐 하면, 종신형을 받은 사람 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곳에 지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탈출한다고 해도 물살이 세서 헤엄을 못치고, 헤엄을 쳐도 물이 차서 심장마비가 걸리거나, 아니면 헤엄쳐 나오다가 상어밥이 되기 때문에 탈출한 생각을 못한답니다. 그래도 그 감옥 창설이래 한 사람인가가 탈출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도망칠 수 있는 문도, 길도 영원히 없습니다. (3)끝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젠가는 속박의 생활이 끝나리라는 소망을 가졌고, 후에 실제로 모세가 나타나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감옥에 힌 사람도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며, 병원의 병자도 회복될 희망을 가지고, 또 회복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어떤이는 " 이 짧은 생애 동안에 지은 죄로 영원한 형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하지만, 그러나 형벌 은 죄의 성질에 따라서 부과하는 것이지, 그 죄를 범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떤 강도는 삼초동안에 살인하고, 어떤 강도는 세시간 걸려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시간에 따라 죄와 형벌이 작거나 커지지 않습니다. 모든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태평양의 바닷물을 참새 한 마리가 입으로 한모금씩 옮겨 대서양을 채운다고 합시다. 태평양의 물이 다 마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영원에 비하면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지옥에서 영원히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4)모든 종류의 사람이 섞여서 지냅니다. 지옥에는 모든 계급, 모든 종족, 모든 피부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저급한 인간을 상대하지 않던 사람도 지옥에서는 최하급 저질의 인간과 함께 지내며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지옥사회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의 술객들과 우상숭배 들과 모든 거짓말하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러분, 혹시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믿지 않는 자"도 극악한 죄인들과 함께 불못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크게 보이는 죄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산 사람은, 세상적인 표준에서 훌륭해 보여도 지옥에 참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챤 아내를 가진 사람도, 좋은 크리스챤 부모를 가진 사람도,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배척하고 진심으로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모르고, 자기의 선행과 공적을 의존했던 사람은 다 지옥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고 영접하지 않은채 죽으면 오늘의 설교가 마지막 초청의 기회가 될른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아 한 사람도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 천국이요, 안 믿으면 멸망이요, 지옥입니다. 일찌기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크게 들어쓰신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지옥불을 바라보며, 멸망해가는 영혼을 하나라도 더 구원하려고 불타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믿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천구과 지옥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신앙 때문에 우리 교회가 끊임없이 부흥되고, 없는 가운데서 세 계적인 성전을 건축하게 되고, 국내 외에 쉴 새 없이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반드시 예수 믿으라고 할 필요도 없고 목사노릇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을 속히 속히 구원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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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설교 : 유혹 앞에서

제목 : 유혹 앞에서

성경 : 마4:1-11

1.유혹 앞에 서 있는 인생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영성을 유지하며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주변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문화가 급속히 발달하고, 물질이 풍성해짐으로써 질적, 양적으로 더 높고 더 많고 더 다양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고, 아는 게 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는 말도 흔히 합니다. 맞습니다. 차라리 안 보고 모르면 갖고 싶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을 텐데 자꾸만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옷, 좋은 집들이 보이고, 번쩍번쩍 빛나는 차들이 돌아다닙니다. 더 크고 더 좋은 냉장고 텔레비전 휴대폰 카메라 컴퓨터 등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눈이 높아지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가전제품도 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나은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아니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에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원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번영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고 넉넉하고 마음 껏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는데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외형적으로 풍성해진만큼 그렇게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만족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었습니까? 사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엊그제 뉴스에 보니 살인 강도 강간 등의 흉악범죄는 해마다 증가일로에 있다고 합니다. 묻지마 폭력이 증가하고 결혼도 잘 하지 않으려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도 잘 낳지 않으려고 하고 이혼율도 세계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또 사회적 갈등은 왜 그렇게 많습니까? 툭하면 싸우고 헤어지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머리에 띠 두르고 결사반대, 결사 항전을 외치며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일들이 많은지... 

옛날에는 어렵고 힘들어도 잘만 살았는데 요새는 왜 그렇게 갈등이 많고 참 이상하지 않나요? 이만큼 풍요롭고 넉넉하게 되었으면 마음도 좀 더 넉넉하고 서로 받아주고 이해하며 갈등없이 살 만도 한데 말입니다.

그게 다 왜 그렇습니까? 소유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올바르고 가치있게 사용하여 인간의 행복을 위한 보조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도리어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니까 자꾸만 사회가 삐그덕거리고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가장 큰 유혹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까먹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르고 예민한 영성으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배격할 것은 배격하며 우리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15,16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런 어그러지고 왜곡된 가치관이 만연된 세상속에서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올바른 영성을 가지고 모든 왜곡된 가치관과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예수님의 시험-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포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감히 마귀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물론 예수님이 그 시험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마귀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의 선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가 들어왔고, 죄가 들어옴으로 인간에게는 고통과 사망이 왔습니다. 결국 인간의 고통은 사단의 시험에 짐으로써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고통과 사망권세를 물리치려면 사탄의 유혹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망권세를 비롯한 모든 어둠의 권세가 쫓겨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일부러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고, 보기 좋게 물리치심으로써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해 오는 마귀사탄의 도전을 우리가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마귀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는 분이므로 그 안에서 사탄 권세를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물리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분별력을 가지고 사탄의 흉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이 왜곡되고 유혹많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게 뭐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고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누가 우리 스스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겠습니까? 누가 스스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죄의 유혹을 이기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스스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권세와 싸워 이기지 않는 한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도로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풍성해 진다해도 사단의 세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물질도 생명도 과학도 지식도 진정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들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처럼 문명이 발달하고 풍성한데도 오히려 더 불평과 불만과 갈등과 걱정근심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은혜임을 압니다. 함께 나누어야 함을 압니다. 서로 존중함을 압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압니다. 위로부터 평안과 기쁨과 자유와 은혜가 쏟아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진정으로 행복을 원하신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온전히 안기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잣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잣대로 삼아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어둠과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물질적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그렇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물질적인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여 주리신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 있는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보라는 유혹을 합니다. 그러면 배도 불러서 좋고, 동시에 너의 권능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한마디로 비록 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비록 배가 고파 떡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하나 그러나 너 따위의 말은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주려서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그래서 떡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육적인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요구도 중요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설령 내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악의 존재의 말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질은 분명히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물질인 육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물질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물질이 우리의 욕구 중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 주지만 그러나 우리는 결코 물질을 하나님과의 사람의 관계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이게 뒤바뀌어져 있습니다. 물질지상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물질이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보다도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 때문에 싸우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물질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 때문에 이웃과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가 파괴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은총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누려야 할 사랑과 기쁨과 은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자신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하면 바로 거기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도 너도 하나님도 행복한 파라다이스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 여러분께서는 결코 물질을 앞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고, 물질 때문에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앞세우고, 이웃과의 관계를 앞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앞세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더욱 온전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명예적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

1차 유혹에서 실패한 마귀는 겁 없이 다시 도전합니다.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고, 그러면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웅대접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였느니라.’(마4:7)하시며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뛰어 내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정말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 주는 일이라면 뛰어 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님께 있어서 그까짓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뛰어 내릴 때가 아닌 것입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뛰어내리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이 때에 뛰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참람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설령 뛰어 내려도 끄떡없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을 수 있다할지라도 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죽음의 장소라도 가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위한 것이라면 불속에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엉뚱한 일에 용감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일에 용감해서는 안됩니다. 쓸데없는 영웅심리로 혹은 뭔가 좀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무언가 인정받기 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명예를 얻기 위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하거나 무슨 직분을 얻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야말로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를 얻으려는, 인기를 얻으려는, 뭔가 튀는 행동을 통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왜곡된 방법을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정석대로 성실하게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그 방법도 올바르게 되고 결국은 결과도 나타나게 됩니다. 설령 결과가 더디 나타나거나 혹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해도 언젠가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실하게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디 이루는 한이 있어도, 아니 세상에서 비록 명예를 얻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그저 진리 안에서 성실하게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명예나 영광보다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인정과 상급과 영광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영적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이 실패로 끝나자 마지막으로 사단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높은 산으로 가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천하만국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하시며 호통을 치며 마귀의 교활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교활한 종교적 시험이었습니다. 자신에게 경배하기만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눈한번 질끈 감고 절을 하면 세상만국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이 그럴만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까짓 게 무슨 그런 권세가 있습니까? 그저 예수님이 지금 40일동안이나 전혀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약해져 있으니까 어떻게하든 이 약해진 틈을 노려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술책을 쓰고 있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사탄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에게 절하라. 나가 누굽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이 뭡니까? 죄의 세력입니다. 죽음의 권세입니다. 지옥의 권세입니다. 오늘날 그런 게 뭘로 나타납니까? 때로는 돈으로 나타납니다. 권세로 나타납니다. 과학지상주의, 물질지상주의, 개인이기주의로 나탑니다. 물론 돈이나 과학이나 이성이나 이런 것들 자체가 사탄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할 때는 사탄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들을 돈에게 무릎을 꿇게 합니다. 권력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향락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개인이기주의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편의주의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러면 너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속삭입니다. 마치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했던 수작과 똑 같은 것입니다. 따 먹어라. 따 먹어라. 그러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그 소리에 속으면 안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향락이나 세상의 가치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할 대상은 오직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뿐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이렇게 교묘하고 다양하게 다가오는 마귀의 흉계를 간파하고 절대로 거기에 현혹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말씀 묵상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시험을 이기고 온전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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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불행에 관한 예화 모음

▣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

  오리건의 엘리자베스 코넬리 여사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나는 국방성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가 전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축 늘어졌습니다. 내 마음은 쓰라리고 미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직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편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몇 년 전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카가 내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조카는 나를 위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특히 더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주머님은 이겨 나가실 것입니다. 저는 항상 웃으며 모든 일을 남자답게 대하라고 하신 아주머님의 말씀을 늘 기억할 것입니다.' 마치 내 옆에서 '아주머니, 저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웃으면서 헤쳐 나가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도 보내고 성인 교육반에도 나갔습니다. 과거의 쓰라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마치 내 조카가 바랬던 것처럼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조지 5세는 버킹검 궁전에 있는 그의 도서실에 "저버린 달 때문에, 쏟아진 우유 때문에 울지 않게 가르쳐주소서"라는 좌우명을 걸어놓았다.   

▣ 불행의 변수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소설이며 시의 결정들을 가차 없이 서로 비평했다. 그것은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한편 여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혹평은 일절 피하고 좋은 부분만 칭찬했다. 10년 후,그 여학생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유망하던 남학생들 중에서는 단 한명의 뛰어난 작가도 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보통 95%의 좋은 점과 5%의 좋지 않은 점을 갖고 있다. 100%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95 %의 좋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5%의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5%를 보고 사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산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 수도 없다. 상대방의 5%쯤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채워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행복하다. 
[국민일보]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 불행한 미국 가정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하루에 9,077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282명은 사생아이고,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는데 그 중 1,986쌍이 이혼을 한다. 또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가출하고, 하루 69,493명의 십대들이 성병에 감염된다. 강간은 매 8분마다, 살인은 매 27분마다, 강도는 매 78초마다 일어나며, 자동차는 매33초마다 분실된다. 그리고 2,740명의 10대 소녀들이 임신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 가정의 최대 불행은 75퍼센트가 십계명중의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피티릿 소로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결혼 25건중 1건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우, 1,015건의 결혼 중 단 1건의 이혼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아도 행복한 가정은 주님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그 가정에 모시지 않고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 불행한 황태자비 다이애나 

  지난 1997년 8월 31일 새벽0시35분(현지시각·한국시각 31일 낮12시35분) 36세로 마감한 '세기의 신데렐라' 다이애나 황태자비, 그녀는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애정입니다.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챨스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았습니다. 승마교수와 염문, 황태자와 이혼,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마지막 남자 도디 알 파예드(42)와 프랑스 남부 생 트로페즈에 있는 파예드의 아버지 소유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 뒤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안전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메르세데스 벤츠 600. 그러나 도로 중앙 분리대에 한 차례 부딪힌 뒤 다시 터널 벽에 충돌한 벤츠 600은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습니다. 라디에이터가 자동차 앞좌석까지 깊숙이 처박혔고 차량 운전사와 다이애나의 애인 도디는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량 속에서 다이애너를 구출, 응급조치를 취하다 새벽2시쯤 파리 동남쪽의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으로 후송,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새벽 4시쯤 결국 폐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현대판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행복과 불행 

  1968년 6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 교수팀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길거리에 지갑을 떨어뜨린 후 그 속의 신분증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약 45%의 신분증이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6월4일은 단 하나의 신분증도 주인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바로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로버트 케네디가 괴한에 의해 암살당한 날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사람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은 전염성이 강해서 금방 전체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든다. 또한 좋은 소식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인간의 삶은 그 출발점을 ‘부정’과 ‘긍정’중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불행과 행복은 항상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 탐욕의 종점은 불행과 죽음 

  한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 제법 넓은 농지를 갖게 됐다. 그는 항상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괴로웠다. 그런데 일정액의 돈을 내면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부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곳으로 갔다. 과연 그 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평야갸 펼쳐져 있었다. 광야의 추장은 농부에게 말했다.“당신이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만큼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소.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단 한평의 땅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중얼거리며 마라톤 선수처럼 광야를 질주했다. “내 땅….해가 지기 전에…” 그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에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다. 태양이 막 대지에 얼굴을 묻을 무렵, 그는 출발점에 도착했으나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의 종점에는 ‘불행’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 불행한 사람들의 몇 가지 공통점 

  불행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첫째,완벽주의자는 불행하다.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둘째,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셋째,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아무도 이런 사람과는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그래서 늘 고독하다. 넷째,작은 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섯째,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섯째,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사람은 더불어 살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삶의 과정을 통해 참행복을 누린다.행복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다.오늘의 삶이 비록 구차하게 여겨질수 있으나 사실은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숨어 있다.영화의 결론을 알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인생도 마찬가지다.오늘에 충실한 사람이 행복의 열매를 수확한다.   

▣ 내가 불행한 이유 

  "왜 난 이렇게 불행할까? 릴라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서일 거야. 

그럼 왜 나는 이렇게 작아진 거지? 그거야 내가 불행하니까. 결국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군."   

▣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행복할 때는 타인의 호의를 쉽게 살 수 있고 우정도 도처에 넘친다. 이는 불행할 때를 위해 저장하는 것이 좋다. 그때를 위해 지금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라. 지금은 높이 평가되지 않는 것이 언젠가는 귀하게 여겨지리라. 미련한 사람은 행복할 때 친구를 두지 않는다. 지금 행복할 때 친구를 모르면 불행할 때 친구가 그대를 알지 못할 것이다.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 불행한 공전 

  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꼬리를 뒤쫓으며 저것만 붙잡으면 뭔가 대단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개는 강아지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불행한 공전이다. 너는 꼬리를 잡기 위해 뛰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위해 뛴단다. 내가 마땅히 내 할 바를 좇아가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 
 자기 꼬리를 붙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어린 강아지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을 나로 잡아서는 결코 꼬리를 붙들 수 없는 어린 강아지처럼 아무리 나를 위해 살아도 진정한 행복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보통 행복을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착각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창조 목적대로 돌아간 삶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베토벤 

  어느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합니다.거기다가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아이는 낙태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다네!” 그 임신된 생명은 바로 베토벤이었다.그를 낳은 어머니는 결국 그가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어머니를 여읜 베토벤은 11세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예술을 시작했다.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불행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는 그 불행의 조건을 오히려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조적 조건으로 승화시켰다.시편 기자도 고난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한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 '불행'과 '사망'의 씨앗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원주민들은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열매를 넣은 조롱박을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조롱박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다. 원숭이는 조롱박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런데 원숭이는 조롱박의 구멍이 너무 작아서 열매를 움켜쥔 손을 빼내지 못한다. 사냥꾼들이 몰려오면 자신이 쥐고 있는 과일을 놓고 도망을 가야 하지만 원숭이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다. 결국 원숭이는 한 손을 조롱박에 넣은 채 사람들에개 붙잡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사람이 재물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재물을 숭배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재물로 변화된다. 진정 행복을 얻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욕은 ‘불행’과 ‘사망’의 씨앗이다.   

▣ 불행한 가정생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와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불행한 가정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허물을 깨닫고 자기가 남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그 자식들 앞에서 자인하고 자기의 행한 일들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통하게 고백하였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난폭하고 무례한 자기 부인에게 어쩔 수가 없어서 가정을 점점 멀리하고 여관에서 외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 불행한 조건에서도 귀하게 살다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그 저자 디포가 감옥에 있을 때 쓰여졌다. 하루에 자기의 시력을 5분씩밖에 쓸 수 없었던 나쁜 시력의 프레스코트는 위대한 역사가가 되었다. 거의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고 그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찼던 그때에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들을 작곡, 완성했다. 모짜르트도 불치의 병으로 희망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의 불후의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존 칼빈은 육신의 병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는 생활 중에서 위대한 신학 저술을 했다. 「천로역정」이라는 영구히 빛나는 책도 그 저자 존 번연이 눈썹에 곰팡이가 슬 정도의 음침하고 습기찬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쓴 것이다. 원수들이 자기의 생명을 노리고 찾아다니는 동안에 발트부르크의 성 안에 숨어 있던 마르틴 루터는 유명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여 농부나 평민이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드디어 펴낸 것이었다. 평생을 소경으로 살아야 했던 크로스비 여사는 영감이 충만한 수많은 찬송들을 써서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불구자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내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걸어 다닐지라도, 나의 굽힘 없는 영혼은 저 하늘의 독수리마냥 드높은 창공으로 오릅니다!" 이것은 하늘을 한번 보지도 못했고, 독수리의 소리를 한번 듣지도 못했던 위대한 사람의 말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탄이나 열등감, 불행한 조건 등에 얽매여 사는 패배자의 생활을 하지 말자. 당신은 축복을 받았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귀중한 인생이다. 당신은 넉넉한 승리를 거둘 사람이다. 안심하자! 확신하자! 그리고 기뻐하자!(목사, 윤영준)   

▣ 철학이 없는 유산은 자녀를 불행하게 한다.

  미국 조지아주 중서부에서 대부호로 명성을 떨친 레스터가(家)가 있었다. 레스터는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주변의 농토들을 모두 사들여 담배농사를 지었다. 레스터의 땅을 밟지 않고는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토바코 로드(담배의 길)로 불렀다. 레스터는 후손들에게 엄청난 땅과 돈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런데 레스터의 3대 후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3대손인 지이터가 소작농으로 전락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1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5명은 일찍 사망했다. 9명은 가출했다. 이 부부는 고향을 지키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지이터 부부가 잡초더미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에 옮겨붙어 타죽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과 ‘전통’을 유산으로 남겨준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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