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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말씀 : 마7:12

1.기독교의 황금율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황금율이라고 일컬어지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을 황금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3세기의 로마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라는 사람이 이 말씀에 감동을 받고 황금판에 새겨 서재에 걸어 놓고 늘 음미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람은 예수님을 잘 믿어서 이 말씀을 황금판에 새겨 서재에 걸어 놓고 이 말씀을 묵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교도 곧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말씀을 너무나 귀하게 여겨 황금판에 새겨서 걸어놓고 늘 묵상하며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나 재판을 할 때 이 말씀을 종종 인용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상숭배자가 이 말씀을 황금율로 여겼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해야 할까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주님의 말씀이 다 황금보다 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도 얼마나 지당하고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이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하며 서로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서로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이 선지자가 말씀하고 율법에 기록된 말씀의 근간이요, 핵심이라는 말씀이지요. 이것도 당연하지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아래로 사람들 간에 서로 사랑하며 귀하게 대접하면서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이게 말씀이 곧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2:37-40절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도 사실 같은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나 대접하는 것이나 같은 말씀이죠, 사랑하면 대접하고, 진실로 대접하면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말씀도 서로 대접하라는 말씀과 같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대접하는 것, 이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두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안다며 위로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섬기고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래야 합니까?

2.우리 모두가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대접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함께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전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유없이 해야 되지요. 안 그래요? 우주만물의 주권자시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명령인데 이유고 뭐고 따질 일이 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고 무조건 순종해야지요.

그러나 물론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을 때 왜 이유가 없겠습니까? 물론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 이 말씀 제일 앞에 보면 ‘그러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즉 앞에서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고 그런 이유로 어떻게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학생이다. 그러므로 공부해야한다. 나는 성도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와 같이 앞에 있는 내용이 이유가 되어 뒤에 있는 행동을 꼭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으니까 남을 대접해야 할 이유가 그 앞에 나와 있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앞의 말씀 1~11절 전체 말씀인데 특별히 2절과 11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먼저 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즉 네가 남을 비판하면 너도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니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남을 대접하지 않으면 남도 너를 대접하지 않을 것이니 네가 대접을 받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대접이란 먹을 것을 사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도 사랑받고 존중받고 귀히 여김받고 인격적인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가 남을 무시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겠습니까? 내가 욕하는데 상대방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겠습니까?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겠습니까? 내가 남을 비방하고 깎아 내리는데 누가 나를 높여 주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높여주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려면 서로 대접하되 내가 먼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11절에 보면 우리가 서로 대접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안다면 선한 나는 너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주겠느냐? 그리고 실제로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귀히 여겨서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 너희가 먹고 입고 잠자며 활동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거저 주었고, 나아가 독생자까지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귀하게 대접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 귀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거저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비롯해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을 삶고 있는 땅, 세상에 빛을 주고 따뜻하게 하여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태양, 물, 공기, 각종 동물이며 식물들, 지혜와 능력과 이성,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해주셔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뭐 잘나고 똑똑하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냥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아들 대접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공로없이 귀한 대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웃을 귀하게 여기고 높여주고 대접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올바른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한편으로는 서로 대접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리고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며 서로 대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며 주님의 영광 나타내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대접해야 합니까?

3.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대접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접해야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려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마22:37,38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여러분, 보십시오. 첫째 계명이 뭡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도 그냥 대충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이고 의무이며, 진정 영원하고 완전한 능력과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완전한 선과 진리와 의이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예우이며 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거룩과 의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우주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분이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간적으로 제법 똑똑하고 위대하고 선한 모습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정말 한없이 작은 자입니다.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한계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셔서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높고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찌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심지어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님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정말 그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섬겨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당연한 태도요, 이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릴 때 우리 인생은 비로소 올바른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동시에 사람을 귀히 여기며 서로 대접하며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올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생각 능력 지혜 경험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완전한 주권자이시며 능력자이시며 생명과 진리와 지혜가 되시는 하나님을 따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로 잘 달려가며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이웃을 사랑하며 대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사람을 바르게 귀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저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회만 열심히 섬기는 것만이 거룩한 삶이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그러한 삶은 거룩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지만 그렇게 예배드리고 말씀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알면 당연히 받은 은혜를 삶속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며 의롭고 깨끗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고 아래로 사람을 대접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경건이요, 거룩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마22:39,40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보십시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두 번째는 이웃사랑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은 레19:18절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거기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있는 레19장의 말씀은 한마디로 성도의 거룩한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즉 레19:2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즉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자녀다. 그러므로 너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러면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데 거기에 보면 ‘네 부모를 경외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헛것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를 드리라. 곡물을 거둘 때에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불의를 행하지 말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등등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거짓과 도적질과 불의를 버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곧 거룩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며 깨끗하게 진실하게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마땅한 태도이고 서로가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서로 사랑하고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야 하는데 특별히 여러분, 먼저 가족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서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가족은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귀한 이웃이 아닙니까? 그러면 먼 이웃도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면 가족은 얼마나 더 아끼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대접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물론 이웃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가족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대접함으로 서로에게 정말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족 못지않게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대접해야 할 이웃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겠습니까? 물론 성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형제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똑같은 아버지를 섬기면 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엡2:19절에서는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권속이요, 형제이면 얼마나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대접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교회에서 얼마나 주님의 향기가 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겠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또 얼마나 아름답게 이루어져가겠습니까?

그런데 근간에 보면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높여주고 하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싸우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미워하시는 일이므로 우리는 절대로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귀하게 여기고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빛을 비추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며 섬기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귀하게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정말 서로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믿음안에서 한 형제자매된 성도들간에 정말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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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복된 만남을 위하여(눅10:3-37)

 

 

 
말씀 : 눅10:30-37

제목 : 복된 만남을 위하여

1.내가 먼저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태어나서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의하여 우리의 삶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도 잘 만나면 좋습니다. 돈과 명예와 사회적 지위와 게다가 인품까지 좋은 부모를 만나면 자식의 삶이 평안하고 부요하고 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술주정뱅이에다가 인품까지 고약한 부모를 만난다면 자식의 삶이 험난할 것입니다.

물론 배우자도 그렇죠. 그런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와 출중한 외모와 훌륭한 인품을 가진 배우자를 만난다면 당연히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쥐뿔도 없는데다 성품까지 고약한 배우자를 만난다면 당연히 삶이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물론 친구나 이웃도 마찬가집니다.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을 만나면 많은 유익과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피곤하고 힘든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므로 물론 다 기왕이면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을 만나야 되겠지만 그러나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못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면 속된 말로 도둑놈 심보가 아니겠습니까? 소위 황금율이라 불리는 마7: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당연하잖아요? 나는 남을 대접해주지 않으면서 나는 남에게 대접받으려고 한다면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내가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 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은 이웃, 좋은 친구로 대하겠습니까?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배우자에게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말 만남이 중요하므로 여러분도 좋은 분을 만나되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힘씀으로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만남이 되어 서로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2.남에게 끔찍한 불행을 준 사람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오늘 말씀에 보면 자기는 좋은 것을 누리려고 하면서 남에게 너무나 끔찍한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주는 아주 나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오늘 30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여러분,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고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입니까? 서로 생명을 살려주고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 무지 몽매한 강도는 돈 몇푼 얻으려고 다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리고 심지어 다 죽어가는 사람을 버리고 도망을 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강도는 잘먹고 잘살려고 이런 몹쓸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정말 행복과 기쁨과 가치를 가져다주겠습니까? 뭐 빼앗은 것을 사용할 때에 잠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그 심령이 평안할 리도 없고 성령 평생 그 짓을 해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할지라도 평생 동안 온갖 비난과 욕을 얻어먹고 손가락질 당하며 살아가는 더럽고 추하고 무가치한 인생에 불과한 것이요, 결국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너무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 이 강도를 당한 사람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는 어떻겠습니까? 물건을 빼앗겨 물질적으로 많은 손해를 본 것은 고사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엄청난 아픔과 상처를 받았고,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후의 삶도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즉 이 미련한 강도의 짓은 결국 자기도 죽고 남도 죽게 만드는 심히 어리석고 무지하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결코 이런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또 크든 작든 또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나 절대 남에게 상처와 아픔과 고통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하나님께도 책망듣고, 사람들에게 욕먹고 멸시당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무시당하는 어리석고 무지하고 더럽고 추하고 볼품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 해야 할 것은 내가 남에게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가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론 때론 불가항력적인 불행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정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그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구하며 그 말씀을 따라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데 기도도 하지 않고 말씀도 마음에 새기지 않고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자기 마음대로 왜곡된 길로 잘못된 길로 다니다가 마귀의 밥이 되어 봉변을 당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강도를 만난 사람도 사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에께 끔찍한 고통을 준 강도는 엄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죄인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닥 봉변을 당했는데 그 길은 본래 매우 험한 길이라서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우범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길을 가기를 꺼렸고 부득불 가야 할 때는 여럿이 함께 다니는 것이 상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대책도 없이 혼자 그 길을 가다가 그만 봉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우리 인생길 전체에서나 혹은 인생길의 어떤 한 과정에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든 나혼자 내 마음대로 하다가는 그런 불행한 일을 만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며 말씀 안에서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생길을 걸어가며 무엇인가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내 마음대로 자신만 믿고 자기 생각대로 주님께서 동행하지 않는 길로, 심지어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길로 가면 자칫하면 이런 봉변을 당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캄캄한 밤길, 으슥한 길에 숨어 있는 강도처럼 숨어 있다가 우리 영혼과 정신과 물질과 육신을 덮침으로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실패나 아픈 기억들이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삶을 영위했더라면 대부분은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아픔이 아니었을까요? 그냥 내 경험과 지식과 이성을 따라서 내 마음대로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길로 자기 마음대로 갔기 때문에 당했던 그래서 결국 스스로 자초한 불행과 아픔과 상처는 아니었을까요?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불행을 자초했던 것러첨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내 경험과 이성과 지식을 따라 내 마음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우리의 완전하고 유일한 보호자이시며 인도자이신 예수님과 온전히 동행해야 합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이 안전하고 그 길이 복되고 그 길이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자신의 생각과 능력과 경험만을 의지하며 자기 마음대로 다니지 말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그 뜻을 따라 겸손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사람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가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지나쳐간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31절, 32절을 보겠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여러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금 강도를 만난 사람은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때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가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레위인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도 역시 이 사람을 못 본척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강도 만난 사람이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당시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걸 접촉하면 자신도 부정하게 됨으로 피해서 갔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금방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아 아직 강도들이 근처에 있을 것으로 보고 서둘러 도망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무언가 급한 일이 있어 이런 일에 끼어들었다가 시간이 지체되거나 성가신 일이 생길까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경우든 그들의 행동은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상황이나 안위나 평안함만을 구하는 무지하고도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은 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안타깝게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강도만난 사람은 생명을 구함 받음으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고, 반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어가며 고통 받는 생명을 살림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복된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니 복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린 정도가 아니라 이건 제사장과 레위인으로서 아니 굳이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림으로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서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주는 것만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사람을 직접 해치거나 고통을 주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함으로서 간접적으로 아픔과 고통을 당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의 준엄한 경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적극적인 악만이 죄가 아니라 소극적 악, 즉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마땅히 선을 행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그래서 약4:17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여러분, 보세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잖아요. 선을 행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주는 것이 사람의 책임과 의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거나 아픔을 겪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죄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적극적으로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유익을 주어야 할 때에 수수방관함으로 결국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선과 진리와 의를 행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가져다주며 결국은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생명의 기쁨을 가져다 준 사람

앞에서는 여러 가지 안타까운 모습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33~35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강도 만나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드디어 구세주와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하던 중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지체 없이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에 주막으로 데려다가 주고는 치료비까지 내어 주며 돌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자기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고 멋있는 사람입니까? 이 귀한 사람으로 인하여 강도 만나 다 죽어가던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음은 물론 비록 한편으로는 이 아픈 기억으로 말미암아 힘들 때도 있겠지만 이 귀한 사람으로 인하여 감사와 기쁨의 마음도 갖게 되고 새로운 희망과 소망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사람은 육체의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영적 정신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는 복되고 아름답고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또 사실 그 자신도 하나님께서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는 생명을 사랑하여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드려 살려 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게 되고 그래서 그 자신도 더욱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좋은 만남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주신 말씀을 상고해 보면서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났던 적이 있다면 환경이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먼저 스스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들어갔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구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 내 생각과 경험과 의지와 왜곡된 가치관을 따라 내 코가 석잔데 남에게 도움을 줄 여유가 어디있느냐며 합리화시키고 변명하면서 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이제 후로는 먼저 정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님과 온전히 만나 교제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과 환경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밀접한 만남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주님의 주시는 힘과 능력과 지혜로서 우리의 육신과 영혼과 마음을 공격하는 마귀사탄의 공격을 물리침으로 절대로 강도 만난 인생이 되지 않고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은총으로 영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강도를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주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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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첫주 예배 대표기도문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주의 은혜 가운데 보내게 하시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새해 첫 주일에 주의 택한 백성들이 주님께 나아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들의 예배를 기쁘게 흠향하여 주시고

올해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주의에 얽매이지 말게 하시고

남에게 받은 상처, 과거에 실패한 경험, 환난과 시련 당한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하옵소서.

 
또한 지난 한 해 동안 주님 앞에 잘 했던 일,

남에게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일, 남보다 앞서서 봉사하고 헌신했던 일들

옛날에 잘 믿으면서 은혜 받았던 일도 잊어버리게 하옵소서.

 
또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통해, 같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잊어버리게 하옵소서.

나에게 상처를 준 형제, 나를 힘들게 한 형제, 나에게 허물을 보인 형제들

또 그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들을 다 용서하고

깨끗하게 잊어버리게 하옵소서.

 
지난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만을 기억하며

우리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로 풍족해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성도님들의 생업에 축복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우리 교회 재정이 풍성하게 하여 넘치게 하여 주심도 감사드리며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들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심을 기억하며 감사 드립니다.
 

이제부터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 출발을 하게 하옵소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제부터 한해동안 광야에 대로를 내시며, 사막에 강을 내시어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해에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불신앙이 확신으로 바뀌게 하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어려움과 시험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성령님께서 친히 도우사 이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옵소서.

우리 믿음이 발목 잡히지 않게 하시고

건강 때문에 우리의 봉사가 손길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고.

더욱 더 거룩하심을 닮아 가는 복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번 특별 새벽 기도 동안에 저희들이 받았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님을 섬겨서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당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영혼 구원의 목표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이웃을 섬기며,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목사님께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마다, 심방하실 때마다,

우리 교인을 만나실 때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온 교회가 회개하고 새로운 한 마음으로

새로운 역사가 써여져 가는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올 한 해 동안 교회를 위해 봉사할 직분자들에게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찬양대원, 주차 및 차량봉사위원, 식당봉사위원

새가족부로, 구역장과 권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잘 한 일이든지, 잘 못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하시고

이제 새로운 열정과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시고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봉사하는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지러운 정국들이 잘 수습될 수 있도록 위정자들을 깨우쳐 주시고

신앙으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시고

억압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이제 성가대의 찬양과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은혜 받게 하시고

힘들고 지친 영혼들이 마음의 평강을 얻으며

새로운 힘을 받아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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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과 칼슘이 가득한 견과류인 호두의 이로운 점 알아보기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선정된 호두는 견과류 가운데 영양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현재는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품종입니다.

호두는 단백질, 불포화지방산, 칼슘과 비타민 B, 비타민 E 등 우리 몸에 필수적인 여러가지

영양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고,

머리털을 검게 하는 등의 효과이 써져있을 정도로 몸에 좋은 견과류 입니다.

콜린과 오메가 3가 많이 함유하고 있어 치매예방, 건망증 치료 등 뇌 건강에 효과적이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려주기 때문에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인데요
 

오늘은 호두의 이로운 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화예방

 

다른 견과류와 비교했을 때, 호두에는 항산화 성분이 2배 정도 더 많이 들어있으며,

비타민 E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노화를 유발하는 몸속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노화예방에 보탬이 된다고 합니다.
 

 

 

 

남성 활력 강화

 

플라보노이드와 항산화제,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혈액순환을 촉진시켜주는 효과가 있고

비타민 E의 일종인 토코페롤이 다량으로 함유되어있어

남성의 활력을 강화시켜주어 자신감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뇌 건강

 

성장기 어린이들의 뇌를 똑똑하게 하기 위해 엄마들이 필수로 먹이는 것 중에 하나가 견과류.

그 중 호두를 많이 먹는것이 좋은데

호두는 오메가3지방산과 항산화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있고

뇌신경세포를 생성하고 성장하며 보호하는데

보탬을 주고 학습력과 기억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인 콜린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뇌 건강을 지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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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친밀감을 방해하는 요인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또는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 부부사이의 친밀감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부부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염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 친밀감에 대한 열망을 이루지 못한 채 고민합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부부사이에 고백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간음이나 폭행이나 사기처럼 눈에 띄는 범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지요.

부부사이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 서로 감추는 것, 거짓말하는 것, 또는 서로에게 경솔하고 자상하게 대하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들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이해심을 갖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대해야만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베드로사도의 가르침의 원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부부사이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는

 

 

첫째, 그 죄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반복했던 잘못된 욕망과 습관을 내어놓고 회개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먼저 하나님과의 석연치 못했던 관계를 회복시켜야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죄를 짓게 만드는 잘못된 열망과 욕구대신 하나님이 주신 선한 욕구로 다시 채워주시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성품의 변화를 위한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쉬지 않고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꼭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서로의 잘못을 상대 배우자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고백할 수 있지만 배우자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일 때는 주변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찾아가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지요.

어떻습니까? 이 같은 방법의 중요성을 깨달으셨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서두르십시오.

부부의 친밀감이야말로 부부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가장 필요한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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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위한 아버지 의 역할

 

 

1. 부모는 수리공이 아니라 정원사

아이가 '가수가 되고 싶다'면 그런 생각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가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가치와 사명을 설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조심스럽게 가지를 쳐주는 정원사가 되어,

아이가 잠재력을 발현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2. 보호자가 되기보다는 코치가 되라

보호자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주는 부모 곁에서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은 키워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시자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믿음을 가져라.

그러려면 아이의 사소한 행동도 예리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이 나이에 맞는 코칭이 이뤄져야 한다.

또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끔 해줘야 한다.

이 모든 것에는 아이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 돼야 한다.

3. 질문은 강요보다 힘이 세다

“학교에서 뭐 했어?”라는 말보다

“오늘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게 배운 게 뭐니”라는 말이 효과적이다.

‘게임 그만해“, ”숙제 해놔“라는 말보다

“게임하기 전에 숙제를 해두면 어떨까?”,

“내일 학교에서 배울 부분을 미리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겠니?”라는 질문이 낫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말투를 바꿔나가는 노력은

좋은 아버지로 변신하는 첫걸음이다.


이 같은 질문을 해야 아이들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엄마나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4. 차이를 인정해야 독립이 온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소극적 의미의 차이보다는,

적극적 의미에서 차이를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 내지 공유점을 확인함으로써 안정감을 갖기도 하지만,

반대로 차이를 확인하면서 정체성을 찾는다.


아이들을 다른 형제나 부모, 타인 생각과 가치관에 맞춰 한정시키려 하기보다는,

아이 생각과 개성을 인정해서 차이를 존중하는 편이

독립심을 기르는 방법이다.


5. 끊임없이 가족의 의미와 목적을 점검

매년 『가족사명서』라는 것을 써 보라.

가족 사명서에는 주로 가족의 목적과 존재 이유, 지향점 등을 함께 정해서 적고

구성원이 모두 각자 서명을 남기도록 해 보라.

가족의 의미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족 사명서를 가족생활을 위한 헌법이라고 생각하면,

여러 세대에 걸쳐 가족 구성원을 결합하고 지탱해 줄 것이다.

6. 어린 자녀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라.

부모의 부족한 면이나 단점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아이들 의견을 들으려 노력하라.

부모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누구나 사람에겐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그래야만 아이들도 자기 단점에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아이들도 자신이 가족의 중요한 일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질 수 있게 된다.

 

 

 

7.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가 존중받으며 산다

부모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아이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아이들이 판단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일 뿐이다.

그 생각에는 아이에 대한 아무런 존중이 담겨 있지 않다.

아이가 “뭐야?”, “왜?”, “어떻게” 등 질문을 던질 때는

“크면 다 알게 돼”, “피곤하니까 그만하자”는 대답보다,

“너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등 질문을 통해,

오히려 부모가 더 적극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아이는 나름대로 스스로 해답을 갖고 있다.

 

8. 아홉 개 약점 버리고 한 가지 강점 키워라

아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이는 열등감으로 커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기 잘하는 것이 있단다”,

“잘하는 것을 발전시키면서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는 것을 얘기해주자.

열 중 아홉이 약점이라면 얼마든지 버리고,

강점 한 가지를 찾아 더 크게 키워주자는 신념이 필요하다.

 

 

 

 

9. 머리보다 몸과 마음을 먼저 살찌워라

주입식 교육과 배움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축구, 야구, 예술 활동 등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도모하라.

새벽 2시까지 학원 강의와 과외 등,

사교육 순례를 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2~3시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누구나 두뇌가 피로해진다.

하물며 세상에 관심이 많은 10대 아이들을

책상에만 묶어 놓는 일은 비정상적이다.

 

10. 부모가 변해야 아이가 변할 수 있다

이 세상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를 처음 낳아 보고 길러 본다.

처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다.

부모 자존심과 자랑거리를 위해

자녀에게 자기 바람과 희망을 투영시키려 했다면,

『자녀는 부모 자존심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가 변하지 않는 이상,

교육을 통해 자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어려서부터 신(神 : God)을 알게 하라.

창조주를 알게 해야 진정한 애인(愛人 : 사람을 사랑함)을 하게 된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을 해도 좌절(자살)하지 않고 재물을 제대로 쓸 줄 안다.

神을 모르고 국제적인 신사가 될 수 없다.

神을 모르고 국제적인 예술가가 될 수 없다.

神을 모르고 국제적인 문학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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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 느끼는 시기는 언제부터 일까요?

 

 

첫임신때 첫 태동 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첫 태동을 느꼈을때
정말 기분이 이상하신가요?

태동이 신기하기도 했고
뭔가 울컥해서 눈물도 나구요!

오늘은 태동 느끼는 시기랑
태동느낌이나 같이 알아두면 좋은것들
같이 공유해볼게요!

태동 느끼는 시기는 언제부터일까요?

태동은 뱃속에서 태아가 건강하게
잘있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어요.

아기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죠!

태동 느끼는 시기는 사람마다가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임신 16~23주에 느낄수 있답니다.

태동 느끼는 시기는
20주 전후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임신20주 이후에는 태동뿐만 아니라
성별까지 확인이 가능해지는 시기라고 할수 있죠!

태동 느끼는 시기의 경우
첫 임신 혹은 출산 경험의 여부에 따라서도
느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고
임산부의 체형,체질에 따라서도
느끼는 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첫 임신, 태동을 느껴보지못한 산모라면
태동 느끼는 시기에 배안의 움직임이 낯설어
태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
임신20주 이후가 태동 느끼는 시기가 되고

경산모라면 태동느낌을 인식하고 있을 뿐더러
이전 출산으로 복벽이 늘어져
태아의 움직임이 더 쉽게 전달되기때문에
조금 더 빨리느 껴
임신 16~18주 쯤이 태동 느끼는 시기가 되겠죠!

 

 

 

 

그리고 평소 민감하신 임산부시면
초산이더라도 12주 가량부터
태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해요.

간혹 태동 느끼는 시기가 혹시
태아의 성장발달과는 관계가 있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태아의 성장발달과는 관계가 없기때문에
태동 느끼는 시기 너무 걱정하지않으셔도 됩니다.

태동 느낌과 주의사항들!

태동 느끼는 시기가 다른만큼
태동 느낌도 다양하게 느끼실수 있답니다!

배에서 뽀그르르 거리는 가스차는 느낌
배에서 기포가 터지듯 퐁퐁 거리는 느낌 등
아기가 몸전체를 움직이면 물결처럼 움직이는 느낌이 들고

처음에는 약하게 조금씩 나타나지만
아기가 커지면서 태동도 활발해져요.

규칙적인 태동은 태아 딸꾹질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태아 딸꾹질은 건강하다는 증거기때문에
불안해하지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태동이 약하거나 느껴지지않는다면
우선 천장을 바라보고 태동을 느끼려고 해보시고
약한태동이라도 전혀 느껴지지않는다면
병원을 방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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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부의 입덧 임신 14주 입덧 완화방법!
 

 

 

 

오늘은 임신 14주 입덧과
임신 14주 두통 증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14주 입덧 증상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라지셨을텐데요.

혹시 아직 임신 14주 입덧 증상이 있으신분들위해
정보 자세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14주 입덧이 사라지지않아요

보통 임신중 입덧은
빠른분들의 경우 4-5주부터
대부분 6주이후부터 나타나게 돼요

이렇게 시작된 임산부 입덧은
임신 13주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답니다.

하지만 임신 14주 입덧이
임신초기부터 시작해 아직까지 사라지지않는다면
걱정되실수 있는데요

임신초기초기부터 시작해
임신 14주 입덧이 계속해서
사라지지않고 더욱 심해진다면
입덧증상이 아닐수도 있다고 해요ㅠㅠ

입덧증상이 악화되어
영양,신경계,심혈관계,신장 등에
장애가 나타난 임신 오조 증상일 수 있어

식도,내장기관이 손상되거나
태아에게 영향에 미칠수 있기때문에
계속해서 임신 14주 입덧이 심해진다면
병워늘 방문해 확인하시는것이 중요합니다.

임신 14주 입덧, 어쩌면..?

임신 14주 입덧은 사람에 따라
임신초기에 나타나지 않다가
점차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답니다.

 

 

 

 

그래서 우선 병원을 방문해
확인해주시는것이 가장 좋고
정상적인 입덧증상이라면
입덧이 악화되지않도록 주의해주셔야겠죠!

임신 14주 입덧, 완화방법!

임신 14주 입덧을 예방하기위해서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나 튀긴음식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섭취를 피해주세요

물론 섭취하고 싶으시다면
섭취해주시는것도 좋겠지만
자극적인 음식은
소화기능을 떨어뜨리고
입덧을 더욱 심화시킬수 있어 주의하시도록 하세요

그리고 유자,모과,레몬, 포도, 귤과 같은
신음식을 섭취해주거나
아이스크림,동치미과 같은 찬음식이
입덧을 완화시켜줄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임신 14주 두통 증상은?


임신 14주 두통은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것같거나
지끈지끈 한쪽에 맥박이 띄는게 느껴지거나
편두통이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특히 누웠다가 앉을때,
앉았다가 일어날대 두통이 나타나고
어지러움,현기증이 동반되기도 해요

임신 14주 두통 왜 나타날까요?

임신 14주 두통은 입덧처럼
임신중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랍니다

임신 14주 두통은
입덧처럼 임신 호르몬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증상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 시기부터는 자궁으로 혈액이 쏠려
빈혈이 동반될수 있기때문에 주의해주셔야합니다.

 

 


임신 14주 두통, 완화방법은?

임신 14주 두통 완화방법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을 해주시고
이마에 따뜻한 수건, 차가운 수건을 얹어주고
두통에 좋은 국화차를 마시는것도
좋은 방법이랍니다.

그리고 임신 14주 두통이 정말 심할때는
병원을 방문해서 약을 처방받거나
임산부 타이레놀 2알정도는 괜찮다고하니
확인해서 섭취해주세요!

임신 14주 두통, 너무 심할때는
억지로 참는것이 더욱 위험해요!


임신 14주 입덧과 임신 14주 두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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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흡연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고민? 
 

 

요즘 중학생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특히 중학생들은 정말 유해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에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말씀도 많이하시네요

그래서 자녀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책이나
교육등을 해드리는데요 특히 핸드폰 중독이나 게임 중독
남학생 흡연등에 대한 고민이 많네요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역할/흡연 자녀의 부모교육


 최근 30일 동안 1일 이상 흡연한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을때
중1~고3 나이의 우리나라 청소년 흡연률이 2015 평균 7.8%
그 중 남학생이 11.9%이고 여학생은 3.2%라고 합니다
담뱃값 인상과 금연 교육 강화 등으로 전년 대비 감소된 수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흡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인들보다 더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흡연을 할 경우
각종 질병이나 중독에 더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지 않도록,
시작했더라도 금연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욱박지르고 금지 시키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의 흡연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청소년 흡연 왜 시작하고
어떨 때 금연을 결심하나

자녀 교육에서의 부모의 역할/흡연 자녀의 부모교육

현재 흡연을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처음 담배를 피는 이유를 물어보니
호기심 때문이 52%(친구의 권유 27%, 스트레스 해소 7%)로
대부분 청소년들이 나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의 역할과 대화가 너무 중요하다.


특히 부모님들은 대화를 통해서 자녀에게 흡연의 안좋은 점을
생각해 보게 하고 담배없이 스트레스 해소 법을 같이 효과적으로 찾아봐야 합니다.
실제로흡연을 하는 청소년이 금연을 시도하는 이유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서
30.3% 흡연으로 몸이 안좋아져서
25.8%등으로 건강과 관련해서 스스로 인식했기 때문에 금연을 시도 합니다
즉, 아무리 어른들이 무조건 나무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담배의 나쁜 영향을 인식할 때
그 효과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 : 2015년 총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통계)

청소년 흡연의 부작용은 어떤점이 있나

실제로 15세 이전에 시작한 흡연자와 25세 이후에 시작한 흡연자를 비교했을때
 암발생률 차이가 무려 4배나 된다고 합니다. 또한 흡연은 노화와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을 지연시킬 수 있다

담배의 유해 물질이 혈액 내 헤모글로빈과 산소 결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흡연 중 인체
조직에서 산소 공급률이 떨어지고 대표적인 담배 속 유해 물질인 니코틴은 혈관을 수축
시켜서 성장판의 혈관을 좁아지게 하고 칼슘 흡수율도 떨어뜨려 근육이나 골격 발달에
저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뇌세포가 파괴되어 기억력 및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
학업 성취도가 낮아진다 합시다. 호기심과 스트레스
때문에 흡연을 시작하는 청소년이 있다고 하는데
흡연 시 키도 안크고 건강도 나빠지고
 성적도 떨어질 수 있다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악순환만 이뤄진다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의 흡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첫째, 부모님이 흡연자라면, 금연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 부모님이 담배를 피우는 가정의 자녀가 흡연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가 나쁜 것이라고 말한 들 자녀가
 그 말을 공감할 수 없습니다.

둘째, 금연을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자녀 앞에서는 보이지 말아라.
 

  -  자녀 앞에서 흡연을 모습은 공공연하게
 스스로 해도된다는 원칙을 깨는 모습이니
     몰래하거나 숨기는 모습, 가족들에게 미안해 하는
 모습은 보이는게 좋다. 또한 간접흡연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다른 장소에서 피는 매너를 지키는
 모습이 주위에 피해는 줄 수 것에 대한 예의를 말해준다,

셋째, 담배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흡연 시 나쁜점은 어떤 것이 있을지
 이야기해 보세요

  -  담배를 피울때 부작용에 대해서 부모님부터
솔직하게 털어놓고, 호기심을 가지고
 시도하기 전에 안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시키는 것이 더 좋습니다.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흡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경우
     부모님 청소년 자녀의 반항심을 불러 일으킬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7명 중 1명이 흡연 심각

우리 00이가 담배를 피운다니 엄마는 속상해, 하지만 너도 이제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오늘은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담배를 피우면서 너는 어떤 점이 좋았니?
다른 방법으로 그 좋은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까?
반대로 불편하거나, 담배 피우니 나쁘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니?

학생들이 처음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상황을 이해하
고 다른 방향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나
방법을 찾아주고 흡연 이후에 올 수 있는 손해나
 더 큰 스트레스를 대화로 알게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학생들은 어리석지 않다
이성적인 설명과 대화로도 얼마든지 해결해
갈수 있는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대화로 풀어가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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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서로를 섬기는 교훈

 

 

우리들의 행복은 부부가 서로 신뢰하며 섬김에 있음을 생각하면서 은혜가 되자.

 

1.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자기를 만나야 한다

 

우리들의 만남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만남과 그렇지 않은 만남이 있다.

 

가장 중요한 만남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둘째는 부모님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만남은 하나님과 부모님의 축복 속에 만나는 배우자이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은 만남에는 거역한 값을 치루며 산다.

  

우리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눈이 원죄로 인하여 희미해졌는데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 이제 믿음안에서 찾고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까?

 

자신의 성숙함과 준비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야 된다.

 

무조건 배우자를 선택하고 난 후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지 말고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이상적인 자가 된 후, 기도해야 한다.

 

내 생각 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를 위한 기도! 그 배우자를 확실하게 지켜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만나서 결혼 하면 서로 섬겨야 한다

 

부부의 원리가 무엇인가?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하나 된 후 서로 섬기는 것이다.

 

결혼 생활과 행복의 원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섬김이다.

 

서로가 최선을 다하여 상대의 빈 곳을 채워주고 좋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영원한 곳까지 가야 한다.

 

나와 다른 면을 지적함 보다 나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를 찾고,

 

채워줄 수 있는 부부가 되기를 힘쓰자.

 

내가 힘들고 쓰러질 때 하나님은 어떻게 맞추셨을까?

 

나는 왜 안 될까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우면서 존경까지 해보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고 부활로 재림의 소망도 주셨으니

 

은혜에 감사하며 섬기는 것이 예수님 닮아 가는 길이다.

 

자기주장 보다 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섬김에 본을 보이자.

3. 결혼 생활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의 혼수품은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다.

 

유명한 철학자가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행복하다고 했다.

 

부부는 서로서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서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때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한다.

 

부부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에로스의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으로 성화된다.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을 모시면서 하나님 섬기듯이 실천해 보라!

 

육적인 사랑이 영적인 사랑으로 변한다. 이상적인 부부로서 행복한 삶의 열쇠는

 

예수님을 대신할 모델을 배우자로 알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반듯이 행복할 것이다.

 

나를 생각하기보다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준비된 나를 믿음으로 준비하고 예수님께 하듯이

 

서로 섬기며 도우심을 바발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은 예수님께 영광이 돌려질 것이다.

 

배우자에게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배우자를 사랑함이 배우자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한 것임을 알고 실천에 옮겨 에덴의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자.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부모님을 통해 성장하면 반쪽인 나를 만나야 한다.

 

그 반쪽이 없으면 병신과 같다.

 

자립할 수 있는 생활도 안 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산도 없다.

 

그리고 만난 후에는 어느 한 쪽이 귀족이 되면 안 된다.

 

모든 문제를 서로가 협력하여야 한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혼수품으로 사랑이 풍성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도 사랑만 있으면 이긴다.

 

이 사랑은 조건이 없으므로 마지막이라는 순교도 할 수 있다.

 

둘의 사랑 속에 자녀 양육이나 어떤 어려움이 이기는 삶의 비밀은 서로 섬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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